채식주의자 (소설)

소위 “고통 3부작”을 엮은 책. 스포일러 주의.

2016년 맨부커 수상 당시에 유행따라 한 번 읽었었는데, 2024년 노벨상 수상 기념으로 (또 유행따라) 읽었다. 그 사이에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을 조금 공부한 덕인지 당시보다는 아주 조금 더 이해한 것 같다. 10년 뒤엔 더 많은 걸 느낄 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비건 페미니즘 관점, 즉 가부장제의 폭력과 육식주의의 폭력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읽으며 나름대로 감상을 적어봤다. 1부와 2부는 이 관점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것 같은데 3부는 난해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작중 영혜의 목소리는 다층적인 폭력에 의해 침묵 당하는데, 어쩌면 이게 핵심 주제 중 하나인 것 같다.

  • 영혜는 스스로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부장제육식주의라는 폭력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침묵당한 집단’은 지배 구조가 허용하는 양식에 맞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놓이기 때문이다(지배-침묵 이론). 작가는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서 밖에는” 폭력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1 (3부 “나무 불꽃”에 이르면 영혜 스스로도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세상으로부터, 심지어 자신의 몸으로부터도 멀어져간다.)
  • 작중 인물들은 영혜의 말을 틀어 막는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말을 막고, 자신의 말로 덮어쓰고, 폭력을 쓰고, 가두고, 약을 먹인다. 영혜의 남편에 비해 형부가, 형부에 비해 언니가 영혜를 조금 더 이해하는 듯 하지만 아무도 영혜의 생각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 작가는 고통 3부작 전체를 영혜의 시점에서 전개하지 않는다. 독자는 작중 인물들의 왜곡된 관찰과 간혹 나오는 독백을 통해 영혜의 생각을 조금씩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된 설계다. 주인공은 영혜이지만 “계속 대상으로” 남아 있다.1
  • 국가권력은 작품을 검열하고 가부장적 한국 사회는 작가와 작품의 메시지를 왜곡한다. 이로써 국가와 사화는 의도치 않게 ‘다층적인 폭력’이라는 작품의 주제에 기여(?)한다.2

제1부.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

창작과비평 2004년 여름호에 실린 작품. 일인칭, 화자는 영혜 배우자인데 중간중간 영혜의 독백이 나온다.


도입부. 영혜가 특별하지 않아서 결혼을 했다는 남편.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Before my wife turned vegetarian, I’d always thought of her as completely unremarkable in every way. … However, if there wasn’t any special attraction, nor did any particular drawbacks present themselves, and there was no reason for the two of us not to get married. … The paunch that started appearing in my mid-twenties, my skinny legs and forearms that steadfastly refused to bulk up in spite of my best efforts, the inferiority complex I used to have about the size of my penis - I could rest assured that I wouldn’t have to fret about such things on her account.


아내의 가슴 크기가 남편의 사회적 체면이다. 왜냐하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고, 남성 사회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구체적 방식(예: 가슴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그 가치가 부여되며, 이에 따라 좋은 재산(가슴 큰 아내)을 가진 남성은 사회적 체면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그녀의 가슴에 노브라란 사실이 어울리지도 않았다. 차라리 두툼한 패드를 넣은 브래지어를 하고 다녔다면 친구들에게 보일 때 내 체면이 섰을 것이다.

I would have preferred her to go around wearing one that was thickly padded, so that I could save face in front of my acquaintances.


영혜에게 언어 폭력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너무 당연한 듯 ‘다려놓은 와이셔츠’를 찾고 ‘뒷바라지와 배웅’을 안 해줬다며 투덜거린다. 아내가 자신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여기는 태도, 남편은 마음대로 분노를 발산할 수 있고 아내는 그걸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고 보는 태도, 아내의 ‘뒷바라지’가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는 태도. (참고: 아주 친밀한 폭력 4장).

“뭐 하는 거야, 지금!” 나는 마침내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질렀다. 어젯밤과 똑같이 나의 존재를 무시하며 그녀는 계속해서 고기 꾸러미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

“당신 제정신이야? 이걸 왜 다 버리는 거야?” …

“와이셔츠 다려놓은 거 없어?” 대답이 없었다.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욕실 앞의 빨래통을 뒤져 어제 던져놓은 셔츠를 찾았다. … 결혼 오년 만에 나는 처음으로 아내의 뒷바라지와 배웅 없이 출근해야 하는 것이었다.

“미쳤군. 완전히 맛이 갔어.”

“What the hell are you up to now?” I shouted. She kept on putting the parcels of meat into the rubbish bags, seemingly no more aware of my existence than she had been last night. …

“Have you lost your mind? Why on earth are you throwing all this stuff out?” …

“Haven’t you even ironed my white shirt?” There was no answer. I splashed water on myself and rummaged in the laundry basket, searching for yesterday’s shirt. … In the five years we’d been married, this was the first time I’d had to go to work without her handing me my things and seeing me off.

“You’re insane! You’ve completely lost it.”


영혜가 냉장고의 고기를 버리는 장면. 남편은 이게 고기를 좋아하는 본인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행동이며 ‘고작 꿈’ 때문에 비싼 고기를 버리는 게 ‘비이성적’이며 따라서 ‘사춘기 소녀’나 할만한 행동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영혜에게 ‘고기’란 인간들이 죽이고 토막 낸 동물의 시체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폭력성을 바탕으로 유지되면서도 그 폭력을 적극적으로 감추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식주의 사회 또한 동물에 대한 폭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면서도 ‘동물 시체’를 부르는 수많은 단어들(고기, 삼겹살, 회 등)을 고안하여 그 폭력을 적극적으로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진짜로 자기중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은 영혜가 아니라 남편이다. 그 와중에 남편은 아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남편은 아래 발화에서 종차별, 성차별, 연령차별을 한 번에 담아낸다.

“기가 막히는군. 나까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거야?”

“냉장고에 그것들을 놔둘 수 없어. 참을 수가 없어.”

도대체 저렇게 자기중심적일 수가. … 저렇게 비이성적인 여자였다니. …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살을 빼겠다는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치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악몽 한번 꾸고는 식습관을 바꾸다니.

“This is unbelievable. You’re telling me not to eat meat?”

“I couldn’t let those things stay in the fridge. It wouldn’t be right.”

How on earth could she be so self-centered? … Who would have thought she could be so unreasonable? … but surely not even impressionable young girls take it quite that far. As far as I was concerned, the only reasonable grounds for altering one’s eating habits were the desire to lose weight, an attempt to alleviate certain physical ailments, being possessed by an evil spirit, or having your sleep disturbed by indigestion.


남편은 영혜의 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기에 더 묻지 않는다. 부인 및 회피. 멜라니 조이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3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현실 왜곡 방법은 부인이며 회피는 부인의 한 형태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여위는 건 채식 때문이 아니었다. 꿈 때문이었다. … 그것이 어떤 꿈이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다시 어두운 숲속의 헛간, 피웅덩이에 비친 얼굴에 대한 얘기 따위를 듣고 싶지 않았다.

I was convinced that there was more going on here than a simple case of vegetarianism. No, it had to be that dream she’d mentioned; that was bound to be at the bottom of it all. … I never inquired as to the nature of this dream. I’d already had to listen once to that crazy spiel about the barn in the dark woods, the face reflected in the pool of blood and all the rest of it, and once had been more than enough.


영혜의 회상.

비좁은 공간에 감금하여 기르다가 죽인 동물(참고: 공장식 축산)의 시체를 토막 내서 얼려놨다가 더 작은 조각으로 써는 걸 육식주의 사회에서는 ‘음식 준비’라고 부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음식 준비’는 당연히 여성의 역할이므로 남편은 옆에서 빨리 하라며 당당하게 지랄한다. 남편이 억압적으로 아내에게 일을 전가하고 있는데 그 일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에 의한 동물 억압이다. 식칼의 이가 나가며 손가락을 베이면서 죽은 동물의 살과 살아있는 인간의 피가 뒤섞이고, 남편은 이미 죽어서 토막 난 동물을 먹다 말고 칼조각 때문에 죽을 뻔했다며 날뛰고, 남편이 영혜에게 가하는 폭력은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과 겹쳐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혜는 폭력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감추려고 애썼던 모든 걸 알아차리고, 그다음 날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영혜의 아버지는 18살까지 영혜의 종아리를 때렸고, “나무 불꽃”에 나오는 언니 인혜의 회상에 의하면 영혜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 ‘손찌검’에 시달려왔으며 아홉 살 때 언니와 우연히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돌아가지 말자고 말했던 적이 있다(개를 학대하고 잡아 먹었던 사건도 아홉 살 여름의 일이었다). 영혜는 어릴 때부터 가부장제의 폭력을 온몸으로 느껴왔기 때문에, 자신이 가부장제의 피억압자인 동시에 가부장제와 꼭 닮은 육식주의의 억압자임을 깨닫는 순간 더 큰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개를 학대하고 잡아먹었던 일화 등을 떠올리며 점점 더 큰 죄책감을 느낀 걸까. 그게 꿈에 나오는 걸까. 한편, 두 폭력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공통점을 깨달으며 아버지와 남편과 사회가 본인에게 가해 왔던 억압에 대해서도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됐을까?

그 꿈을 꾸기 전날 아침 난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지. 당신이 화를 내며 재촉했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

알지, 당신이 서두를 때면 나는 정신을 못 차리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대고, 그래서 오히려 일들이 뒤엉키지. 빨리, 더 빨리. 칼을 쥔 손이 바빠서 목덜미가 뜨거워졌어. 갑자기 도마가 앞으로 밀렸어. 손가락을 벤 것, 식칼의 이가 나간 건 그 찰나야.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리자 붉은 핏방울 하나가 빠르게 피어나고 있었어. 둥글게, 더 둥글게. 손가락을 입속에 넣자 마음이 편안해졌어. 선홍빛의 색깔과 함께, 이상하게도 그 들큼한 맛이 나를 진정시키는 것 같았어.

두번째로 집은 불고기를 우물거리다가 당신은 입에 든 걸 뱉어냈지. 반짝이는 걸 골라 들고 고함을 질렀지.

뭐야, 이건! 칼조각 아냐!

일그러진 얼굴로 날뛰는 당신을 나는 우두커니 바라보았어.

그냥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죽을 뻔했잖아!

왜 나는 그때 놀라지 않았을까. 오히려 더욱 침착해졌어. 마치 서늘한 손이 내 이마를 짚어준 것 같았어. 문득 썰물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미끄러지듯 밀려나갔어. 식탁이, 당신이, 부엌의 모든 가구들이. 나와, 내가 앉은 의지만 무한한 공간 속에 남은 것 같았어.

다음날 새벽이었어. 헛간 속의 피웅덩이, 거기 비친 얼굴을 처음 본 건.

The morning before I had the dream, I was mincing frozen meat - remember? You got angry.

“Damn it, what the hell are you doing squirming like that? You’ve never been squeamish before.”

If you knew how hard I’ve always worked to keep my nerves in check. Other people just get a bit flustered, but for me everything gets confused, speeds up. Quick, quicker. The hand holding the knife was working so quickly, I felt heat prickle the back of my neck. My hand, the chopping board, the meat, and then the knife, slicing cold into my finger.

A drop of red blood already blossoming out of the cut. Rounder than round. Sticking the finger in my mouth calmed me. The scarlet color, and now the taste, sweetness masking something else, left me strangely pacified.

Later that day, when you sat down to a meal of bulgogi, you spat out the second mouthful and pickd out something glittering.

“What the hell is this?” you yelled. “A chip off the knife?”

I gazed vacantly at your distorted face as you raged.

“Just think what would have happended if I’d swallowed it! I was this close to dying!”

Why didn’t this agitate me like it should have done? Instead, I became even calmer. A cool hand on my forehead. Suddenly, everything around me began to slide away, as though pulled back on an ebbing tide. The dining table, you, all the kitchen furniture. I was alone, the only thing remaining in all of of infinite space.

Dawn of the next day. The pool of blood in the barn … I first saw the face reflected there.


남편은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아서 걱정이라며 처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처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사과를 한다. 물건을(영혜를) 팔았는데(시집 보냈는데) 물건에 결함이 있다고(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항의를 하니(걱정을 전하니) 고객에게(사위에게) 사과를 하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장모와의 통화. 장모가 “면목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은 영문판에서 “우리 딸이 왜…” 정도로 완곡하게 바뀌어 번역됐다.

“고기를 안 먹는답니다.”

“뭐라고?”

“고기를 전혀 안 먹고 풀만 먹고 삽니다. 여러 달 됐어요.” …

”…그애가 왜 안 하던 짓을…… 자네한테 면목이 없네.”

“The thing is, she’s stopped eating meat.”

“What did you say?”

“She’s stopped eating any kind of meat at all, even fish—all she lives on is vegetables. It’s been several months now.” …

”…How can that child be so defiant? To think that a daughter of ours…”

이번엔 장인 어른. 사과와 함께 A/S를 약속한다.

생전 전화하는 법 없던 장인까지 아내에게 호통을 폈다. 흥분한 고함소리가 수화기 밖으로 새어나와 나에게도 들렸다.

“뭐 하는 짓이냐, 너는 그렇다 치고 한창 나이에 정서방은 어쩌란 말이냐?” …

부엌의 국냄비가 끓었으므로 아내는 말없이 수화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부엌으로 갔다.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 없이 애처롭게 고함치고 있는 장인을 위해 나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아니야, 내가 면목이 없네.” 가부장적인 장인은 지난 오년간 들어본 적없는 사과조의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

”……그러잖아도 내달에 올라갈 테니, 그때 앉혀놓고 얘길 해보겠네.”

He’d never once called me himself, and I could hear his excited shouts emerging from the receiver.

“What d’you think you’re playing at, hey? Acting like this at your age, what on earth must Mr. Cheong think?” …

A pan of soup was boiling on the stove, so my wife put the receiver down on the table without a word and disappeared into the kitchen. I stood there for a moments listening to my father-in-law raging importently, unaware that there was no one on the other end, then took pity on him and picked up the receiver.

“I’m sorry, Father-in-law.”

“No, I’m the one who’s ashamed.” It shocked me to hear this patriarchal man apologize—in the five years I’d known him, I’d never once heard such words pass his lips….

“In any case, we’re coming up next month so let’s sit her down and have it out then.”


사장 부부와의 식사 자리. 고급 식당에서 우아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이들이 먹고 있는 ‘음식’은 도축장에서 살해하고 토막 낸 동물의 시체이며, 이들의 대화는 육식주의 사회가 가하는 폭력이다. 육식이 가득 올라간 식사 자리에서 육식인들이 질문을 가장한 비난, 비판, 조언을 하며 채식주의자들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참고: 육식의 성정치 3장과 4장). 채식주의 또는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보다 본인이 더 고민을 많이 해봤으리라는 믿음,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라고 가정해버리는 자연주의적 오류, 육식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필요하다는 주장(육식 정당화의 3N). 물론 이들에게 악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고기를 아주 안 먹고 살 수 있나요?” 사장 부인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 화제는 자연스럽게 채식주의로 흘러갔다.

“얼마 전 오십만년 전 인간의 미라가 발견됐죠? 거기에도 수렵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육식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But surely it isn’t possible to live without eating meat?” his wife asked with smile. … The conversation naturally continued on the topic of vegetarianism.

“Do you remember those mummified human remains they discovered recently? Five hundred thousand years old, apparently, and even back then humans were hunting for meat — they could tell that from the skeletons. Meat eating is a fundamental human instinct, which means vegetarianism goes against human nature, right? It just isn’t natural.”


식사 장면 계속. 영혜의 말을 막아버리는 남편. 지배-침묵 이론에 따르면 침묵당한 집단은 지배구조가 허용하는 양식에 맞춰 자신의 믿음을 전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영혜에겐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남편이 말을 아예 막어버리고 그 역할을 지맘대로 대신 해버렸기 때문. 사람들은 영혜의 육식 거부를 불편해한다. 이 자리에서 영혜는 억압을 당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육식을 재정의하고 제한하고 힘을 빼앗으려는 억압자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인종차별 사회에서 흑인은 백인 경찰들을 억압하고, 육식주의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들은 육식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며, 가부장제 사회에는 언제나 ‘기 쌘 부인’ 때문에 ‘매 맞고 기죽는’ 남편이 있다. 인간이 고통을 느끼고 표현하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행위는 그 사회의 권력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꿈을 꿨어요.”

나는 재빨리 아내의 말끝을 덮었다. “집사람은 오랫동안 위장병을 앓았어요. 그래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죠. 한의사의 충고대로 육식을 끊은 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I had a dream.”

I hurriedly spoke over her. “For a long time my wife used to suffer from gastroenteritis, which was so acute that it disturbed her sleep, you see. A dietitian advised her to give up meat, and her symptoms got a lot better after that.”

Only then did the others nod in understanding.


강간을 해놓고 섹스를 했다고 착각하는 일반적 패턴(참고: 아주 친밀한 폭력 6장).

회식이 있어 늦게 들어온 밤이면 나는 술기운에 기대어 아내를 덮쳐보기도 했다. 저항하는 팔을 누르고 바지를 벗길 때는 뜻밖의 흥분을 느꼈다.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낮은 욕설을 뱉어가며, 세번에 한번은 삽입에 성공했다. 그럴 때 아내는 마치 자신이 끌려온 종군위안부라도 되는 듯 멍한 얼굴로 어둠 속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So yes, on nights when I returned home late and somewhat inebriated after a meal with colleagues, I would grab my wife and push her to the floor. Pinning down her struggling arms and tugging off her trousers, I became unexpectedly aroused. She put up a surprisingly strong resistance and, spitting out vulgar curses all the while, one time in three I would manage to insert myself successfully. Once that had happened, she lay there in the dark staring up at the ceiling, her face blank, as though she were a “comfort woman” dragged in against her will, and I was the Japanese soldier demanding her services.


폭력을 써서 억지로 동물 시체를 먹이는 장인과 그걸 보며 “가슴 뭉클한 부정”을 느끼는 남편. 동물에 대한 인간의 통제인 육식주의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인 가부장제는 둘 다 폭력적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육식주의의 상징인 동물 시체 조각(탕수육)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의 ‘주인’인 남성들이 폭력을 써서 억지로 영혜의 입에 집어넣고 있다. 육식주의와 가부장제가 겹쳐진 이중의 폭력. 하지만 남편의 관점에서 탕수육은 음식에 불과하고 영혜는 ‘맞을 짓’을 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아내나 딸을 가르칠 가부장의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참고: 아주 친밀한 폭력 4장).

… 장인은 탕수육을 아내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먹어라. 애비 말 듣고 먹어.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거냐.”

가슴 뭉클한 부정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뺨을 감싸쥐었다. …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아내의 입술에 장인은 탕수육을 짓이겼다. 억센 손가락으로 두 입술을 열었으나, 악물린 이빨을 어쩌지 못했다. 마침내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이 한번 더 아내의 뺨을 때렸다. … 처형이 달려들어 장인의 허리를 안았으나, 아내의 입이 벌어진 순간 장인은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My father-in-law stooped slightly as he thrust the pork at my wife’s face … “Eat it! Listen to what your father’s telling you and eat. Everything I say is for your own good. So why act like this if it makes you ill?”

The fatherly affection that was almost choking the old man made a powerful impression on me, and I was moved to tears in spite of my self. …

“Father, I don’t eat meat.” In an instant, his flat palm cleaved the empty space. My wife cupped her cheek in her hand. … My father-in-law mashed the pork to a pulp on my wife’s lips as she struggled in agony. Though he parted her lips with his strong fingers, he could do nothing about her clenched teeth. Eventually he flew into a passion again, and struck her in the face once more. … Though In-hye sprang at him and held him by the waist, in the instant that the force of the slap had knocked my wife’s mouth open he’d managed to jam the pork in.


영혜의 독백 혹은 생각: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히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수거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No matter how deeply I inhale, it doesn’t go away.

Yells and howls, threaded together layer upon layer, are enmeshed to form that lump. Because of meat. I ate too much meat. The lives of the animals I ate have all lodged there. Blood and flesh, all those butchered bodies are scattered in every nook and cranny, and though the physical remnants were excreted, their lives still stick stubbornly to my insides.


마지막 장면에는 죽은 새가 나오는데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 다른 자아가 자신을 ‘먹어버린’다고 생각하곤 했는데(“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올라와 나를 먹어버린 때”), 이런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 같다.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에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I prized open her clenched right hand. A bird, which had been crushed in her grip, tumbled to the bench. It was a small white-eye bird, with feathers missing here and there. Below tooth marks that looked to have been caused by a predator’s bite, vivid red bloodstains were spreading.

제2부. 몽고반점 Mongolian Mark

문학과사회 2004년 가을호에 실린 작품. 영혜의 형부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1부는 일인칭이었는데 2부와 3부는 삼인칭이다.


예술가인 형부는 예술을 한답시며 영혜를 성적 대상화하고 엉덩이의 ‘몽고반점’ 등 신체 부위별로 파편화한 뒤 시각적/육체적으로 소비(consume)하는데, 이는 캐롤 J. 애덤스가 육식의 성정치에서 말한 대상화, 파편화, 소비의 순환과 일치한다.

그의 스케치 속의 여자는 얼굴이 잘려 있을 뿐 처제였다. 아니, 처제여야 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처제의 알몸을 상상해 처음 그리고, 작고 푸른 꽃잎 같은 점을 엉덩이 가운데 찍으며 그는 가벼운 전율과 함께 발기를 경험했다. … 그렇다면, 여자의 목을 조르듯 껴안고 좌위로 삽입하고 있는 얼굴 없는 남자는 누구인가.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Though her face was missing, the woman in his sketch was undoubtedly his sister-in-law. No, it had to be her. He’d imagined what her naked body must look like and began to draw, finishing it off with a dot like a small blue petal in the middle of her buttocks, and he’s got an erection. … And so who was the faceless man with his arms around her neck, looking as if he were attempting to throttle her, who was thrusting himself into her? He knew that it was himself; that, in fact, it could be none other.


그는 처제 영혜를 상상하며 자위행위를 한다. 영혜가 피투성이가 되었던 응급 상황까지도 성애화하고 있는데, 캐서린 맥키논과 앤드레아 드워킨이 말하는 ‘포르노그래피’의 정의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여성에 대한 비-인간화, 신체적 가해, 신체 부위(엉덩이의 몽고반점)로 환원, 피를 흘리는 상황을 성적으로 묘사하기 등.

두달 가까이 아내와 섹스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성기가 부풀어 오른 것은 아내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오래전 아내와 함께 들렀던 처제의 자취방을, 거기 웅크려 누워 있을 처제를, 그보다 오래전 피투성이로 그의 등에 업혔던 처제의 몸을, 고스란히 전해져왔던 가슴과 엉덩이의 감촉을, 그리고 바지 한겹만 벗기면 낙인처럼 푸르게 찍혀 있을 몽고반점을 상상한 순간, 온몸의 피가 거기 모였던 것이다.

물컹물컹한 환멸을 씹으며 그는 선 채로 자위를 했다.

He was aware that he hadn’t had sex with his wife for close on two months. But he also knew that his penis’s sudden rigidity was nothing to do with her.

He’d pictured to himself his sister-in-law’s rented studio apartment, the one she’d shared with his wife back when they were young, pictured her curled up there on the bed, then switched to remembering how it had felt to carry her on his back, her body pressed up against his and staining his clothes with her blood, the feel of her chest and buttocks, imagined himself pulling down her trousers just enough to reveal the blue brand of the Mongolian mark.

He stood there and masterbated.


아래 인용에서 영혜의 배우자(동서)는 채식주의는 ‘비정상’이고, 영혜가 채식주의를 고수하여 ‘가족과의 마찰’을 일으켰으며, 결과적으로 남편인 자신이 피해자이고, 따라서 이혼의 귀책사유는 영혜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영혜의 형부는 이 주장이 “전혀 틀리다고는 할 수 없었”다며 수용하고, 영혜의 언니조차 영혜를 변호하기보다는 영혜가 문제인 것은 맞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할 뿐이다. 폭력적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이데올로기의 수혜자는 피해자로 둔갑하는 일은 육식주의, 가부장제, 인종차별 등 다양한 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 와중에, 영혜의 형부는 본인 스스로도 영혜를 성적 대상화하고 있으면서, 동서가 처제를 망가진 시계나 가전제품 버리듯 버리고자 했다는 사실(즉, 대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당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처음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가족과도 마찰이 있었고 모든 이상한 행동들 — 토플리스까지 — 이 뒤따라온 것이었으므로, 아랫동서는 그녀의 채식이야말로 그녀가 조금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

그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그의 동서가 마치 망가진 시계나 가전제품을 버리는 것처럼 당연한 태도로 처제를 버리고자 했다는 것이었다.

“나를 비열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대의 피해자는 나라는 걸 세상사람들이 다 압니다.”

동서의 말이 전혀 틀리다고는 할 수 없었으므로 그는 아내와 달리 중립을 지켰다. 아내는 정식 이혼만은 미루고 경과를 지켜보자며 동서에게 애원했으나, 동서는 냉담했다.

The only thing that was especially unusual about her was that she didn’t eat meat. This had been a source of friction with her family from the start, and since her behavior after this initial change had grown increasingly strange — culminating in her wandering around topless — her husband had decided that her vegetarianism was proof that she would never be “normal” again. …

What threw him was the way that his brother-in-law seemed to consider it perfectly natural to discard his wife as though she were a broken watch or household appliance.

“Now don’t go making me out to be some kind of villain. Anyone can see that I’m the real victim here.”

Unable to deny that there was at least a measure of truth in this, he, unlike his wife, kept a neutral position on the matter. She, on the other hand, begged Mr. Cheong to hold off on the formal divorce proceedings and wait to see how things would pan out, but he remained unmoved.


무슨 꿈을 꾸었는지 처음으로 묻는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영혜와 섹스하는 상상으로 꽉 차있고 영혜도 그가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는 거지? 언제나 궁금했는데, 묻지 못했어.” 그녀는 숙주나물을 집던 젓가락을 멈추고 그를 건너다보았다. “대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돼.” 여전히 머리 한편에서 진행되는 성적인 영상들과 싸우며 그는 말했다.

“아니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실 테니까.” 그녀는 담담히 말하며 나물을 씹었다. ”……꿈 때문에요.”

“꿈?’ 그는 되물었다.

“꿈을 꿔서…… 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 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

“얼굴?”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그를 향해 그녀는 낮게 웃었다. 어쩐지 음울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고 했잖아요.”

“Wht is it you don’t eat meat? I’ve always wondered, but somehow I could’t ask.” She lowered her chopsticks and looked across at him. “You don’t have to tell me if it’s difficult for you,” he said, fighting all the time to suppress the sexual images that were running through his head.

“No,” she said calmly. “It isn’t difficult. It’s just that I don’t think you’d understand.” She raised her chopsticks again and slowly chewed some seasoned bean sprouts. “It’s because of a dream I had.”

“A dream?” he repeated.

“I had a dream…and that’s why I don’t eat meat.”

“Well…what kind of dream?”

“I dreamed of a face.”

“A face?” Seeing how utterly baffled he was, she laughed quietly. A melancholic laugh. “Didn’t I say you wouldn’t understand?”


이 대화(?)는 영혜와의 섹스 뒤에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듣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다. 대화가 아니라 영혜의 독백에 가깝다.

“꿈? 아, 얼굴 …… 그래, 얼굴이라고 했지.” 서서히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말했다. … “고기를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그녀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차츰 그의 눈은 감겼다. … 앞뒤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을 자장가 삼아, 그는 끝없이 수직으로 낙하하듯 잠들었다.

“Dreams? Ah, the face…that’s right, you said it was a face, no?” he said, feeling drowsiness slowly creep through his body. … “I thought all I had to do was to stop eating meat and then the faces wouldn’t come back. But it didn’t work.” He knew he ought to concentrate on what she was saying, but he couldn’t stop his eyes from gradually falling closed. … With her words sounding in his ears like a lullaby, one he could make neither head nor tail of, he plunged over the edge of consciousness and into a seemingly bottomless sleep.

제3부. 나무 불꽃 Flaming Trees

문학 판 2005년 겨울호에 실린 작품. 영혜의 친언니 김인혜의 시점.


영혜는 점점 더 나무를 동경하며 스스로도 나무가 되어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영혜의 모든 관심은 완전히 나무에만 쏠려 있고 누가 뭐라고 말을 시키건 간에 나무 이야기만 한다.

아래 묘사에서 영혜는 가정을 파탄 내고 부모를 병들게 한 주범이고 영혜의 친언니 인혜는 본인이 아닌 남편의 잘못으로 인해 친부모와 연이 끊어진다.

돌연 병로해진 부모는 더이상 둘째딸(영혜)을 보려 하지 않았고, 짐승만도 못한 사위를 연상시키는 큰딸과도 연락을 끊었다. 막냇동생 내외도 마찬가지였다.

Their parents, whom the whole sorry saga seemed to have grealy aged, didn’t make any further effort to visit Yeong-hye, and even severed contact with their elder daughter, In-hye, who reminded them of their animal of a son-in-law. The two sister’s younger brother, Yeong-ho, and his wife were no different.


어릴 적 영혜에 대한 회상.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때의 영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으니 아버지도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뼈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영혜.

……언니도 똑같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아무도 날 이해 못해…… 의사도, 간호사도, 다 똑같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약만 주고, 주사를 찌르는 거지.

“You’re just the same,” she whispered, her voice barely audible.

“What are you talking about? I…” / “No one can undertand me…the doctors, the nurses, they’re all the same…they don’t even try to understand…they just force me to take medication, and stab me with needles.”


동생인 영혜가 자신보다 좀 더 빠르게 나아간 것일까.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The feeling that she had never really lived in this world caught her by surprise. It was a fact. She had never lived. Even as a child, as far back as she could remember, she had done nothing but endure. … This pain and insomnia that, unbeknownst to others, now has In-hye in its grip — might Young-hye have passed through this same phase herself, a long time ago and more quickly than most people?

새로 쓴 작가의 말

마지막에 “나무 불꽃”을 쓰면서 ‘고통 3부작’이라는 파일명을 붙였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말

10년 전의 이른 봄,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 이 소설이 출발한 것은 그곳에서 였다.

Footnotes

  1. KBS 인터뷰 2

  2. 오직, 한강을 만날 시간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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