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페미니즘
Veganism + Feminism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의 관련성
비건-페미니즘: 캐롤 J. 애덤스
캐롤 J. 애덤스는 애덤스는 1970년대부터 수십년 동안 페미니즘과 비거니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이자 활동가다. 애덤스에 따르면 육식의 성정치란 여성을 동물화하고 동물을 여성화하는 태도이자 실천을 말한다. 육식의 성정치란 또한, 남자에겐 고기가 필요하고 육식을 할 권리가 있으며 육식은 남성의 정력virility과 관계된 남성적 활동이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믿음 체계와 그 실천은 가부장적 사회와 이 사회에서 남성에게만 차별적으로 부여하는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동물의 살을 음식으로 보는 관념에는 가부장적 태도가 담겨 있다. 목적에 따른 수단의 정당화, 다른 존재에 대한 대상화가 삶의 필수 요소라는 믿음, 폭력은 감춰질 수 있고 마땅히 감춰져야 한다는 믿음 등이 그렇다.
폭력적 지배 이데올로기: 멜라니 조이
멜라니 조이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육식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문제가 없다”는 신념 체계를 육식주의로 명명하고 이는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비롯한 다른 모든 폭력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들도 동일한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육식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경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멜라니 조이가 소개하는 폭력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몇 가지 특징은 이렇다.
- 체계 자체를 ‘보이지 않게’ 만들어서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인식할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비가시화)
- 다른 존재를 물건으로 보기(대상화)
- 다른 존재를 개별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범주로 묶어서 취급하기(비개별화)
- 우리와 그들 사이를 구분하고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서 쉽게 비난하고 착취할 수 있게 만들기(이분법)
공리주의: 피터 싱어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운동은 공리주의를 근거로 하는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공리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여권 신장을 주장해 왔다.
- 공리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레미 벤담은 완전한 성평등을 주장했다.
- 벤담의 제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은 저명한 초기 페미니즘 저작 중 하나이자 동시에 밀의 공리주의 사상을 잘 담아낸 저작으로 평가된다.
-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에서 여성 해방이 합당한 이유를 근거로 하여 동물 해방 역시 합당하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역사적 교류
전통적으로 동물 운동, 여성 운동, 흑인 민권 운동의 리더들은 겹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각각의 사회 운동 사이에는 다양한 교류가 있었다.
캐롤 J. 애덤스는 육식의 성정치에서 18세기 이후 베지테리어니즘, 비거니즘, 페미니즘 사이의 수많은 교류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피터 싱어도 동물 해방 6장에서 이러한 교류를 일부 소개하고 있다.
- RSPCA의 창시자 W. Wilberforce와 F. Buxton은 영제국의 노예제 폐지를 위해 함께 싸웠다.
- 여성의 권리 옹호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동물권에 대한 글들도 써왔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의 배우자인 윌리엄 고드윈은 윤리적 채식주의자였으며, 그의 딸 메리 셀리는 채식주의와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담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썼다.
- L. Stone, A. Bloomer, S. B. Anthony, E. C. Stanton 등 초기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베지테리안 운동에 동참했다. 이들은 노예제 폐지론자인 H. Greeley와 함께 “여성의 권리와 베지테리어니즘”을 외치기도 했다.
비건-페미니즘은 암컷 동물만을 고려한다는 오해
비건-페미니즘은 암컷 동물만을 고려한다는 오해를 간혹 접하는데 이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수학적 교집합(intersection)으로 여기는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교차성이라는 말을 고안한 법학자 K. W. 크렌쇼우에 따르면, 교차성이란 여러 억압받는 정체성을 섞어서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또다른 종류의 정체성 정치가 아니다.
… 어떤 이들은 종종 교차성을 그저 다중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 여긴다. “내 정체성은 세 개”, “너는 여섯 개” 등. (중략) 적어도 나는 교차성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교차성은 일차적으로 정체성 자체가 아닌, 사회 구조가 특정 정체성들을 취약성에 이르는 수단으로 만드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교차성에 대하여On Intersectionality 중
블랙 페미니즘이나 교차성 페미니즘에 대한 이같은 오해에 대해, 블랙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 바바라 스미스와 크렌쇼우는 이런 대화를 나눈 바 있다.
바바라 스미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현실을 무시하자고 말한게 아닙니다. … 특정 정체성을 가졌는지 여부만 따지면 충분하다는 주장도 아닙니다. 블랙 페미니즘은 실천에 대한 것입니다. (후략)
킴벌리 크렌쇼우: 저는 종종 (콤바히) 선언문에 대한 의도적 오독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블랙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교차성 등 블랙 페미니즘에서 파생된 모든 것에 대한 의도적 오독이 있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블랙 페미니즘에서 하는 얘기라면 이미 다 알고 있고, 블랙 페미니즘과 관련된 얘기라면 완전 무시해도 괜찮아”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후략)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의 교차성이 그저 동물이라는 정체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의 교집합을 만들어서 암컷 동물에 대한 운동만 하자는 뜻이라는 주장은 교차성에 대한 왜곡이다.
내가 이해한 비건 페미니즘의 교차성이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 기제와 인간에 의한 동물 억압 기제의 유사성에 주목하자는 의미를 포함한다. 또한 교차성 페미니즘은 겹쳐지는 정체성들의 교집합을 만들며 대상을 점점 더 좁히는 배제적 이론이 아니다. 오히려, 가려진 억압 기제들 사이의 연결점과 구조를 드러내어 상호 분절된 피억압 집단들의 경험을 이어내는 포용적인 페미니즘이다.
애덤스는 왜 비건 페미니즘인가라는 짧은 글에서 암컷 동물이 겪는 억압을 강조한 바 있고 육식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암컷 동물 착취도 중요한 주제임은 분명하지만, 육식의 성정치에 담긴 애덤스의 페미니즘-비거니즘 연결성 분석이 표면적인 정체성 교집합이나 암컷 동물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