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적 오류
- 2024-09-08 (modified: 2025-09-14)
오로지 무엇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그게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논리적 오류. 도덕주의적 오류는 자연주의 오류의 역(converse).
좀 더 일반화하면,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무엇이 “옳다” 혹은 “좋다”고 주장하는 오류. 참고: 사실-가치 구분
사례
“자연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성애는 죄악이다.”
- “자연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동성애는 옳지 않다”는 당위를 이끌어내고 있으므로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 동성애는 자연 상태의 다양한 종에서 흔하게 발견되기 때문에 “자연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명제는 ‘틀린 사실 명제’다. ‘사실 명제’란 사실인 명제라는 뜻이 아니라 맞거나 틀릴 수 있는 사실에 대한 명제를 말하며, 사실 명제가 맞았건 틀렸건 간에 사실 명제만을 근거로 당위를 도출하면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자연에 실제로는 동성애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 주장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실제로 동성애가 존재하건 안하건 간에 잘못된 주장이라는 뜻.
“인간이 어떠어떠하게 진화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게 맞춰 먹어야 몸에 좋다”는 류의 주장 (참고: 인간 진화사에 기반한 식이 제안들)
- 인간은 구석기 시대에 특정 방식으로 진화했으므로 그 방식에 맞춰 식사를 해야 건강에 좋다는 주장.
- 하지만 진화적 적응은 인간의 번식 및 번식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에 맞춰져 있을 뿐, 인간의 장기적 웰빙에 맞춰져 있지 않다. 구석기 시대의 식이 패턴은 인간이 다른 이유로 죽지 않을 경우 약 50세까지 그럭저럭 살 수 있게 해주는 수준에 최적화되어있을 뿐이다. 참고로 현대의 산업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기대 수명은 80세를 넘긴다.
오해
전제에 사실 명제가 하나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오류라는 오해
최훈은 동물을 위한 윤리학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사실에서 규범을 도출하려는 시도는 아주 흔하다. 쾌락 또는 고통을 증진시키는 것에서 도덕적인 옮음과 그름을 찾으려는 공리주의도 자연주의적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리든 진화론이나 신경과학을 이용하는 순간 그것은 자연주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위 주장은 자연주의 오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다. 전제에 사실 명제 섞여 있는 상황에서 가치 명제를 도출하는 건 그 자체로 오류가 아니다. 전제에 “오로지” 사실 명제만 있는 상황에서 가치 명제를 도출하는 게 자연주의적 오류다.
최훈의 주장에 따라 공리주의가 자연주의적 오류이려면 논증이 다음과 같아야 한다.
- 전제: 어떤 개체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이익관심을 가진다.
- 결론: 그 개체의 이익관심은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위 논증은 전제에 오로지 사실 명제만 있는 상태에서 가치 명제인 결론이 도출되므로 오류이다. 하지만 공리주의의 실제 논증은 다음과 같다.
- 전제1: 어떤 개체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이익관심을 가진다. (고전공리주의가 “쾌락” 공리주의인 이유)
- 전제2: 어떤 개체가 이익관심을 가진다면 이 개체의 이익관심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 (공리주의의 동등 고려의 원칙)
- 결론: 쾌고감수성을 가지는 개체의 이익관심을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위 전제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되는 결론)
위 논증에서 전제1은 사실 명제이지만(“-이다”) 전제2는 가치 명제이다(“-여야 한다”). 결론의 가치 명제가 “오로지 사실명제만으로” 도출되지 않으므로 이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아니다.
최훈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동물권 옹호 주장을 “자연주의적 오류로부터 구해”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사실은 애초에 오류에 빠진 적이 없고 구해낼 필요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전제에 “잘못된 사실 명제”가 있어야만 오류라는 오해
자연주의적 오류가 오류인 이유는 전제에 담긴 사실 명제가 “거짓”이기 때문이 아니다.
전제에 담긴 사실 명제가 참인 사실 명제이건 거짓인 사실 명제이건 간에 상관 없이, 오로지 사실 명제만으로 가치 명제를 유도하면 오류이다. 따라서 논증이 자연주의적 오류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굳이 전제에 담긴 명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