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대상화
동물 대상화에는 다음과 같은 행동이나 태도가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동물을 죽여서 그 시체를 먹는 행위
- 동물을 가둬놓고 인간의 재미를 위해 구경하는 행위
- ‘귀여운 동물 이모티콘’ 등 동물을 삶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그저 ‘귀여운 존재’로 환원하여 바라보는 행위
- ‘동물은 인간과 달리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동물은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는다’ 등 동물을 미화하거나 신격화하는 행위
- ‘쥐새끼 같이 배신한다’, ‘돼지처럼 더럽다’ 등 동물에 대한 인간의 차별적 편견을 강화하고 비유로 쓰는 행위
동물 대상화가 무슨 뜻인지, 왜 나쁜지, 어떤 행동이나 태도가 동물 대상화일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보기 위해, 대상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 인간에 대한 대상화와 동물에 대한 대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 동물권 논의와의 관련성 등에 관해 정리했다.
개요
대상화objectification란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을 오로지 도구로만 취급하는 태도나 행위를 말한다. 이는 이후에 페미니즘 이론가 캐서린 맥키논과 앤드레아 드워킨에 의해 확장되며 주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관점에서 논의된다. 맥키논과 드워킨이 모든 대상화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면 마샤 누스바움은 대상화의 다양한 특성, 대상화가 일어나는 맥락 등을 고려할 때 긍정적 대상화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칸트, 캐서린 맥키논, 앤드레아 드워킨, 누스바움의 논의는 주로 인간에 대한 대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칸트는 인간이 동물에 대한 직접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칸트 이론에 기반한 기존의 대상화 논의들을 동물로 바로 확장하여 적용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둘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페미니스트이자 동물권 활동가인 캐롤 J. 애덤스는 저서 육식의 성정치에서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동물에 대한 대상화 사이의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도덕철학자이자 동물권 운동가인 톰 리건은 저서 동물 권리의 옹호에서 칸트의 이론을 확장한 권리론에 기반하여 동물권을 옹호한다. 반면,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은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칸트의 [[Deontology|의무론]에 기반을 두는 대상화 논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적다.
이 글은 아래 순서로 구성된다.
- 칸트의 대상화 논의
- 칸트의 영향을 받은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 진영의 대상화 논의 (맥키논, 드워킨)
- 칸트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나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동물에 대한 대상화의 교차성을 분석한 ‘육식의 성정치’ 논의 (애덤스)
- 대상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나 칸트의 이론을 확장하여 동물권에 적용한 동물 권리론 (리건)
- 긍정적 대상화의 가능성, 대상화가 일어나는 맥락의 중요성 (누스바움)
마지막으로, 위 논의들를 참고하여 동물 대상화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했다.
칸트의 대상화
현대의 대상화 논의는 철학자 칸트에서 시작된다. 칸트는 “오로지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개인을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이를 인간성 정식이라고 명명한다. 인간성 정식의 근거는 이렇다.
- 대부분의 인간에겐 이성이 있고 이성에 따라 자신의 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추구할 능력이 있다. 이러한 인간human을 개인person이라고 칭하고, 인간 개인만이 갖는 이러한 특성을 인간성humanity이라고 칭한다.
- 모든 개인은 인간성을 갖기에 다른 동물과 달리 존엄성dignity을 지니며 모든 개인은 동등하게 존엄하다.
- 인간성과 존엄성을 가진 개인은 다른 개인에게 존중받을 권리와 다른 개인을 존중할 의무를 동시에 가진다.
- 다른 개인을 그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것은 개인을 동물이나 사물 등 개인보다 못한 무언가로 취급하는 것과 같고 이는 그 개인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당하다.
대상화에 대한 칸트의 견해는 인간성 정식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칸트가 1775년에서 1780년 사이에 진행한 강의를 제자들이 정리한 책 “윤리학 강의Lectures on Ethics”에 따르면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성애적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성욕의 대상으로 만든다. 욕구가 사라지는 순간 착즙한 레몬 버리듯 그를 치워버리게 된다. … 다른 이의 성욕의 대상이 되는 순간 도덕적 관계를 가능케 하는 모든 동기가 작동하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이의 성욕의 대상은 사물로 취급되며 다른 누구나 같은 목적으로 이용하고 취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대상화란 인간 개인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사물/도구로만 여기기에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고 인간 이하의 무언가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다. 칸트는 일부일처제 혼인 관계 외의 성애적 사랑은 상대를 오로지 수단(성욕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 칸트는 또한 이론적으로는 모든 성별이 대상화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실질적으로는 거의 항상 여성이 대상화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칸트에 따르면 성매매는 인간의 몸을 돈과 교환하는 행위이며 이러한 행위는 반드시 인간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말한다. 다만 칸트는 스스로의 몸을 도구로 만든 “판매자”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성노동론 지지자나 반대자에게 모두 비판 받을 입장이다.
맥키논과 드워킨의 성적 대상화
대상화에 대한 칸트의 견해는 캐서린 맥키논, 앤드레아 드워킨 등 포르노그래피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의 대상화 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칸트는 성적 대상화에 대한 해결책이 일부일처제 결혼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맥키논과 드워킨은 대상화가 모든 형태의 이성애적 관계에서 나타나며 결혼을 포함한 어떠한 이성애적 관계에도 예외는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적 불평등이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결혼 제도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남성들의 포르노그래피 소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성적대상화는 대상화를 당하는 당사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뿐 아니라, 여성을 바라보고 대하는 사회적 시선 혹은 태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광범위한 간접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맥키논은 포르노그래피를 이렇게 정의한다:
글 또는 사진/그림을 기반으로 한 된 여성 종속을 생생하며 성적으로 분명하게 묘사한 글, 사진, 그림. 다음을 포함: 1) 성적 대상, 사물, 공공재 등으로 비-인간화된 여성, 2) 고통이나 능멸이나 강간을 즐기는 여성, 3) 묶이거나 베이거나 절단되거나, 멍이 드는 등 신체적 가해를 입는 여성, 4) 성적인 복종, 노예 상태, 진열 상태의 자세를 취하는 여성, 5) 신체 부위로 환원된 여성, 6) 사물이나 동물에 의해 삽입 당하는 여성, 7) 비하되거나 상해를 입거나 고문을 당하는 시나리오의 소재로 쓰이는 여성, 8) 더럽거나 저열하게 묘사된 여성, 9) 피를 흘리거나 멍이 들었는데, 그 상황이 성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여성
위 정의에 따르면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강화하는 대표적 문제다. 맥키논과 드워킨은 가부장제 사회는 돈을 매개로 여성의 선택을 제약하고 강요한다는 점에서 합의에 의해서 포르노그래피를 촬영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진정한 의미의 합의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 대상화와 동물 대상화의 연관성: 육식의 성정치
칸트, 캐서린 맥키논, 앤드레아 드워킨의 논의가 인간에 대한 대상화 문제에 주목했다면, 캐롤 J 아담스는 저서 육식의 성정치에서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동물에 대한 대상화 사이의 관련성을 분석한다.
대상화, 파편화, 소비의 순환: … 대상화는 억압자가 다른 존재를 사물로 취급하도록 허용한다. 억압자는 대상화된 존재를 물건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존재를 침해한다. 예를 들면 마치 아니라고 말할 자유가 없는 존재인냥 여성을 강간하거나, 살아 숨쉬던 존재인 동물을 도살하여 죽은 물체로 만들어버린다. 이 과정은 다시 파편화 또는 가혹한 훼손을 가능케 하고 최종적으로 그 존재를 소비할 수 있게 만든다. 간혹 남성이 말 그대로 여성을 먹는 경우도 있으나(영어의 consume은 소비라는 뜻과 먹는다는 뜻을 모두 가진다), 우리는 모두 여성의 시각적 이미지를 시도 때도 없이 소비한다. 소비는 독립된 개체에 대한 억압 및 의지 소멸을 완수하는 일이다.
애덤스가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의 중첩을 다루며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부재 지시대상이다. 인간은 동물을 도축하여 더이상 동물로써는 존재할 수 없고 음식으로만 존재하게 변환하고, 동물 시체의 각 부위들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동물은 언어적으로도 지워버린다. 육식이라는 맥락에서 동물은 부재 지시대상이다.
부재 지시대상이 된 동물은 다른 존재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고깃덩이가 된 느낌이었어요”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 은유에서, 동물이 겪는 죽음은 여성이 겪는 삶으로 변환된다. 반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있어서는 여성이 부재 지시대상이 되며, 이에 따라 강간 또한 다른 존재의 경험에 대한 비유로 활용되곤 한다. “자연에 대한 강간, 유린” 같은 표현이 그렇다.
이와 같이 어떤 용어는 특정 집단에 대한 억압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이 용어를 다른 대상에 전용하는 발화는 착취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강간”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하게 연결되고 “도축”은 동물에 대한 폭력과 연결된다. 애덤스는 “동물 강간”이나 “여성 도축”이 이런 의미에서 문제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드워킨 등이 문제의식 없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며 비판한다. 애덤스에 따르면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동물에 대한 폭력을 여성 경험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로만 활용하며 그 결과 동물의 경험을 지워버린다. 이러한 담론은 동물에 대한 억압을 가부장제에 대한 분석의 틀에 통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며, 페미니즘과 비거니즘 사이의 강력한 연결고리를 놓치고 있다고 말한다.
칸트의 인간성 정식을 확장하기: 톰 리건
칸트는 인간은 동물에 대한 직접 의무를 가지지 않으며 오로지 간접 의무만 가진다고 주장했다. 옆집에 사는 동거 동물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할 간접 의무가 있다는 말은 그 동거 동물은 옆집 사람의 재산이고 재산을 손상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에 옆집에 사는 동물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칸트의 이론에 따르면 동물에 대한 대상화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애덤스가 발견한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 사이의 관련성을 칸트 전통의 대상화 논의와 접목시키려면 칸트의 인간성 정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톰 리건은 저서 동물 권리의 옹호에서 칸트의 이론을 확장한 권리론을 주장한다. 칸트의 인간성 정식에 따르면 수정란, 배아, 태아, 초기 몇 년 간의 영아, 혼수상태의 인간 등 어떤 인간은 이성에 따라 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추구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human이되 개인person은 아니며 따라서 인간성과 존엄성이 없고 그러므로 존중받을 권리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게 리건의 견해다.
리건은 칸트가 정의한 “인간” 개념은 너무 넓고 “개인” 개념은 너무 좁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고, 대안으로 삶의 주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안한다.
리건의 권리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어떤 생명이건 지각perception, 기억memory, 욕구desire, 믿음belief,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 의도intention, 미래에 대한 감각sense of future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명은 삶의 주체다.
- 모든 삶의 주체는 도덕적으로 동등한 내재적 가치inherent value를 갖는다.
- 삶의 주체 중 일부는 이성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이에 따라 실천할 능력이 있는 도덕적 주체moral agent이고 일부는 그러한 능력이 없는 도덕적 객체moral patient다. 모든 도덕적 주체는 모든 삶의 주체를 존중할 직접 의무를 지닌다. 모든 삶의 주체는 도덕적 주체이건 객체이건 상관 없이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다.
- 다른 삶의 주체를 그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것은 삶의 주체가 가지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부당하다.
정리하자면 리건의 권리론과 칸트의 차이점은 이렇다.
- 칸트의 개인 범주와 달리 리건의 삶의 주체 범주에는 어느 정도 성장한 인간과 포유 동물이 포함된다. (다만 수정란이나 배아, 상당수의 무척추 동물 등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다.)
- 칸트의 인간성 정식에서는 권리와 의무가 항상 결합되어 있으나, 리건의 권리론에서는 이 둘이 분리된다. 도덕적 주체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지니는 반면 도덕적 객체는 의무 없이 권리만을 갖는다(도덕적 객체를 “도덕 무능력자”로 번역하곤 한다). 따라서 권리론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에 대한 직접 의무를 가진다.
리건은 인간이나 동물의 웰빙이 심각하게 저해되는 것을 위해harm라고 부른다. 위해에는 고통infliction과 박탈deprivation이 있다. 이 중에서 박탈은 위해를 당하는 주체가 위해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통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평생 갇혀만 살다가 죽는 동물은 자유로운 상태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으나 이는 박탈이므로 위해의 일종이다. 따라서 단순히 인간의 어떤 행위가 동물의 어떤 권리를 박탈하는지에 대해 해당 동물이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주장만으로는, 그 행위가 그 동물에게 가해진 위해가 아니라고 바로 단정할 수 없다.
한편 애초에 없던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 인간이 가지는 권리와 동물이 가지는 권리는 그 종류가 다르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리건은 이렇게 말한다.
동물에게 투표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시민권을 변경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관점은 터무니없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는 공직 선거에 출마할 권리인 피선거권이 있다.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걸 모르더라도 그 권리가 이유없이 박탈되었다면 이는 위해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적어도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공직을 수행할 지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에 따라 공직 선거에 출마할 권리도 없으며, 동물이 출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동물에 대한 위해라고 할 수 없다.
요약하면 이렇다.
- 도덕적 주체인 인간은 삶의 주체이자 도덕적 객체인 동물에 대한 직접 의무를 지닌다.
- 동물에 대한 위해에는 고통 뿐 아니라 박탈도 있다. 권리를 박탈당한 동물이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이는 위해에 해당한다.
- 동물과 인간이 동등한 내재적 가치를 지니더라도 동등한 권리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위해인 행동이면 항상 동물에게도 위해라고 할 수 없으며, 동물에게 위해인 행동이면 항상 인간에게도 위해라고 할 수 없다.
대상화의 다양한 측면과 맥락: 누스바움
칸트, 캐서린 맥키논, 앤드레아 드워킨은 주로 타자를 도구 또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문제에 집중했다면 마샤 C. 누스바움은 1995년에 게재한 논문 대상화에서 맥락에 따라 긍정적 대상화positive objectification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한가지 예시로 누스바움은 세 가지 가상의 상황을 제시한다. 어떤 여성 W가 중요한 채용 인터뷰를 보기 위해 도심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한 남성 지인 M이 “꼭 갈 필요가 있을까. 사진이나 몇 장 보내요”라고 말했다. 이 발화는 대상화일까요 아닐까?
- 만약 M이 W의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이 발언은 거의 확실하게 대상화라고 볼 수 있다. 채용에 있어서 W의 전문성이나 태도 등은 중요치 않고 얼굴이나 몸만 의미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만약 M이 W의 연인이며, 침대에 함께 누워서 그 말을 했으며, W와 M이 서로 깊이 존중하고 있고, W의 채용 인터뷰는 모델 채용 인터뷰였으며, M은 W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말하려는 의도 및 W와 좀 더 함께 있고 싶은 의도에서 그 발화를 했다고 가정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모호한 면이 있지만, 전자의 상황과 상당히 다르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 만약 M과 W가 친한 친구 사이이고, W는 M이 자신의 신체적 매력을 알아봐주길 원하고 있었던 상황이라면 어떨까? W는 M의 발언을 듣고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다.
인간이란 이토록 복잡하기 때문에 어떠한 대상화가 부정적 대상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맥락을 따지지 않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게 누스바움의 주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상화 (논문) 참고.)
앞에서 살펴본 칸트의 인간성 정식 역시 미묘한 지점이 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을 오로지 수단으로만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일상에서 다른 인간을 항상 수단으로 이용한다. 음식점에서 돈을 내고 음식을 사먹는 행위는 음식점의 요리사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돈 냈으니까 시키는대로 음식이나 가져와” 등의 말을 했거나 그러한 태도로 상대를 대했다면 이는 인간을 오로지 수단으로만 대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다.
김원영은 저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대상화의 이러한 미묘함을 잘 설명한다.
지난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은 장애인복지시설에 찾아가 장애 아동 목욕 봉사를 했다. 장애가 있는 남자 청소년은 벌거벗은 채 욕실 바닥에 누워 있었고, 나의원은 그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도왔다. 그 모습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우연히 카메라에 잡힌 것은 물론 아니다. 문 열린 욕실 앞에는 카메라 기자들이 진을 쳤고 한편에는 조명판이 놓여 있었다. 정치인의 활동 대부분이 그렇듯 잘 기획된 퍼포먼스였다. …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이고, 그 도움이 타인에게 일정한 이득이 될 수 있다면 때로 ‘공연’에 동원될 수도 있다. … 이러한 공연에 장애인이 참여하는 경우를 모두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행위자인 장애인도 당연히 공연에 참여해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공연에서는 자신이 그 동연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역할도 없이, 개성이나 존재감도 없이 특정 집단(장애인, 노인, 환자, 빈자, 노숙인 등)이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만 도구처럼 활용된다. 이런 종류의 공연에서 이 집단은 철저하게 추상화, 익명화, 기호화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쌍함’을 전달하는 요소들, 즉 빈곤함의 정도, 장애의 심각성,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연으로만 존재가 설명된다.
종합 및 결론
위 논의를 종합해보면, 동물에 대한 부정적 대상화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 대상화와 마찬가지로 직간접적 위해를 가하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 어떠한 행동이 동물에 대한 부정적 대상화인지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점들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 동물을 오로지 수단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며 삶의 주체인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나? (칸트, 리건)
- 인간의 권리가 아닌 당사자 동물의 권리에 비추어 따져본 결과, 당사자인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권리를 박탈하는 직접적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가? (맥키논, 드워킨, 리건)
- 인간의 권리가 아닌 당사자 동물의 권리에 비추어 따져본 결과, 동물에 대한 인간들의 태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 동물의 권리를 간접적으로 침해하는 단기적/장기적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가? (맥키논, 드워킨, 리건)
- 여성이나 유색인종 등 다른 집단이 겪는 억압의 경험을 동물 억압의 비유로 사용하여 그 결과 한 집단의 경험을 지워버리고 대상화하고 있지는 않는가? (애덤스)
- 위 모든 맥락을 고려할 때 부정적 측면에 비해 긍정적 측면이 충분히 크다고 말할 수 있나? (누스바움)
즉, 수단으로만 취급하지 않고(1), 동물에게 직접 피해를 입히자 않고(2), 동물에게 간접 피해를 입히지 않고(3), 다른 이의 억압 경험을 비유로 사용하지 않고(4), 종합적으로 긍정적 영향이 충분히 큰 경우에는 아마도 괜찮을테고,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부적절하다고 봐야겠다.
다음은 예시:
- 동물 이모티콘 사용하기: 강아지나 고양이 등 흔히 ‘애완동물’로 여겨지는 동물 스티커를 단순히 ‘귀여워서’ 사용하면 1번, 3번, 5번에 위배되는 것 같다. 한편 흔히 ‘축산동물’로 여겨지는 동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소나 돼지 스티커를 활용하면 1번에 위배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그 스티커가 소나 돼지를 어떻게 묘사하는지에 따라 여전히 3번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고 만약 3번에 위배된다면 결과적으로 5번에도 위배될 가능성도 있겠다.
- 착취 당하는 동물 이미지에 말풍선 붙이기: 공장식 축산 시스템 하에서 착취당하고 살해당하는 동물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이들의 이미지에 “살고 싶어요” 또는 “새끼를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암소)” 같은 말풍선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1번이나 2번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3번과 4번에 위배될 여지가 있는데(따라서 5번도), 특히 “살고 싶어요” 보다도 “새끼를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같은 메시지가 더 그렇겠다. “살고 싶어요”는 미묘한데, 굳이 문제점을 찾아보자면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등 이성에 호소하기보다 개별 동물의 비참한 상황에 주목하게 하여 일시적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한다는 점에서 3번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더 다듬어볼 여지들도 많고 위 기준만으로 동물에 대한 부정적 대상화인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언제나 명확히 가려내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유익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