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서판 (책)
머릿말
제1부. 빈 서판, 고상한 야만인, 기계 속의 유령
제1장. 공식 이론
현대 사회에 만연하는 신성한 미신적 이론들:
제2장. 실리퍼티
행동심리학 유머:
심리학에 오래된 농담이 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는 사랑을 나눈 후 이렇게 말한다. “당신 참 좋았어. 나는 어땠지?” —p52
제3장. 최후의 성벽
생물학과 문화를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를 제시
- 인지과학
- 신경과학
- 행동유전학
- 진화심리학
첫번째 다리. 인지과학:
생물학과 문화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는 마음의 과학인 인지과학이다. … 다음은 우리가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을 혁신시킨 인지 혁명의 다섯가지 개념이다.
제1개념: 정신 세계는 정보, 연산, 되먹임의 개념을 통해 물리적 토대를 가질 수 있다.
제2개념: 마음은 결코 빈 서판이 아니다. 빈 서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3개념: 마음 속의 유한한 조합 프로그램에 의한 무한한 행동이 산출될 수 있다.
제4개념: 다양한 문화에 산재하는 피상적 차이 밑에는 보편적인 정신 메커니즘이 놓여 있다.
제5개념: 마음은 상호작용하는 여러 부분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체계이다. …
마음이 보편적이고 생성적인 연산 모듈들의 체계라는 인지 혁명의 개념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쟁들을 통해 수세기 동안 정립되어 왔던 문제 제기 방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 인간은 유연한 존재인가 미리 설계된 존재인가, 행동은 보편적인가 문화에 따라 다른가, 행위들은 학습되는가 선천적인가, 우리는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등의 문제 제기는 오늘날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이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은 미리 설계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마음에는 무제한적인 생각과 행동을 생성할 수 있는 조합 소프트웨어가 갖추어져 있다. 행동은 문화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을 생성하는 정신 프로그램들의 설계는 다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적 행동을 성공적으로 학습하는 것은 그 학습을 가능케 하는 선천적 체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선한 동기와 악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똑같은 행동으로 전환하지는 않는다. —p72-86
두번째 다리. 신경과학:
마음과 물질을 잇는 두 번째 다리는 신경학, 특히 인지와 감정이 뇌에서 어떻게 실행되는가를 연구하는 인지신경과학이다. 프랜시스 크릭은 뇌에 관한 책 놀라운 가설에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 기쁨과 고통, 꿈과 소망이 뇌의 심리적 활동에 달려 있다는 개념을 시사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개념에 넌더리를 내던 신경학자들은 그의 책을 비웃었지만, 크릭은 옳았다. 그 가설을 잠시라도 숙고한다면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우리는 누구나 모든 것을 관리하는 단 하나의 ‘나(Self)‘가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뇌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 낸 착각이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 영역이 마치 전 범위의 세부적 측면들을 풍부하게 보여준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
통일된 자아가 착각임을 보여주는 가장 극정인 증명 가운데 하나는 신경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와 로저 스페리의 손에서 나왔다.(See Split-brain) —p87-91
세번째 다리. 행동유전학:
생물학과 정신을 잇는 세 번째 다리는 유전자가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는 행동유전학이다. —p95
네번째 다리. 진화심리학:
생물학과 문화를 잇는 네 번째 다리는 마음의 계통 발생적 역사와 적응 기능을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어떤 신비적 의미나 목적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연 세계에 널리 퍼진 공학적 성격의 의미에서, 마음의 설계 또는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공학적 증거를 모든 곳에서 - 상이 맺히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눈에서, 혈액을 뿜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심장에서, 하늘을 날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날개에서 - 본다. —p105
사랑, 의지, 양심은 영혼의 특징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직무 내용에 포함되어, 항상 ‘생물학적인’ 기능에 불과한 것들의 정반대 편에 놓였다. 만약 그 기능들도 ‘생물학적’이라면 - 즉, 뇌 회로에서 실행되는 진화적 적응의 특성이라면 - 유령(기계 속의 유령)은 할 일이 더욱 없어져 연금을 받고 영원히 은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p116
제4장. 문화의 탐욕
재밌는 구절:
(인간 문화는) 부모가 다섯 살 된 자식들의 결혼을 미리 정하는 등의 변태적인 성적 관습을 인정한다. —p118
문화의 많은 부분은 특정 지역 내에서 축적된 지혜에 불과하다:
이른바 문화라는 것의 많은 부분은 단지 특정 지역 내에서 축적된 지혜 - 공예품의 제작 방법, 음식의 선택, 횡재한 이익의 분배 등 - 에 불과하다. 마빈 해리스를 비롯한 일부 인류학자들은 복권만큼이나 원칙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관행들도 실은 생태학적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인도에서 소는 신성한 동물인데, 소가 음식(우유와 버터), 연료(쇠똥), 동력(쟁기질)을 공급하므로 소를 보호하는 관습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고 싶은 유혹을 눌렀다는 것이다. —p125
환원주의 변호. (See Praise of reductionism)
마음의 연구에도 환원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살아 있는 육체가 원형질의 운동이 아니라 시계처럼 정밀한 분자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새가 물리적 법칙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풍부해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 우리의 마음이 빈 서판나 무정형의 덩어리나 불가사의한 유령이 아니라 사고, 감정, 학습을 위한 복잡한 신경 회로들로 구성된 것임을 발견함으로써 풍부해질 수 있다. —p140
제5장. 서판의 마지막 항전
빈 서판을 지지하는 듯 한 근거들:
학습을 위한 메커니즘이 없다면 학습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논리로 말하자면, 학습을 위한 선천적 메커니즘 없이 학습은 존재할 수 없다. … 학습력 이론 - 학습의 수행 원리에 대한 수학적 분석 - 에 따르면, 학습자가 유한한 입력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일반화의 수는 무한하다고 한다. —187
제2부. 두려움과 혐오
제6장. 정치과학자
“정치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인” 과학자:
인간은 얼마나 야비해질 수 있는가? 생대방의 성생황을 조롱하는 것은 학자의 삶에 대한 사악한 풍자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스티븐 로즈, 리차드 르원틴, 레온 카민은 여성이 타인의 감정을 조작하는데 능숙하다는 사회학자 스티븐 골드버그(AnswerMe)의 견해를 끄집어내며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그로 인해 골드버그가 유혹에 약하다는 애처로운 사실이 얼마나 극명하게 드러나는가!” 후에 그들은, 모든 사회에서 성은 대개 여성의 봉사 또는 호의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도널드 시먼스(AnswerMe)의 선구적인 책 인간의 성적 진화(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의 한 장을 겨냥한다. 그러고는 “사회생물학을 읽을 때에는 저자의 자전적 회고록을 엿보는 관음증 환자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고 평한다. 로즈는 이 농담이 너무 즐거웠는지 14년 후 자신의 책 “생명선: 결정론을 넘어선 생물학(Lifelines - Biology beyond determinism)“에 다시 그 말을 인용한다. —p210-211
제7장. 성삼위일체
제3부. 인간의 얼굴을 한 본성
현재의 도덕 관념은 생물학적 사실에 따라 수정될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다음의 100년 동안에 그랬듯이, 우리의 도덕 관념도 생물학적 사실에 따라 수정될 것이다. 사실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빈 서판의 도덕적 자격증이 가짜이기 때문이다. —p251
인간 본성에 대한 걱정은 네 가지 두려움으로 요약된다:
-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억압과 차별이 정당화될 것이다. See 불평등에 대한 두려움
-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부도덕하다면 인간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은 무익할 것이다. See 불완전성에 대한 두려움
- 사람들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자유 의지는 신화가 될 것이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다. See 결정론에 대한 두려움
-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질 것이다. See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제8장. 불평등에 대한 두려움
See 불평등에 대한 두려움
제9장. 불완전성에 대한 두려움
See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
제10장. 결정론에 대한 두려움
See 결정론에 대한 두려움
제11장.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See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제4부. 너 자신을 알라
제12장. 현실과의 조우
제13장. 수렁 밖으로
교육 정책에 대하여: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 직관의 비극적 단점을 치료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교육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교육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시에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직관적 도구와는 거리가 가장 먼 인지적 도구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이 장에서 목격했던 그 위험한 오류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교과 과정에서 예를 들어 경제학, 진화생물학, 확률과 통계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것이다. —p414
인간 인지의 한계:
마음이 현실을 내다보는 창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학적 기관이라면, 말 그대로 생각이 도달할 수 없는 진리들이 있을 것이고 우리가 과학적 발견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는가에도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제14장. 고통의 여러 뿌리들
생물학적 이타주의의 두 종류:
- 혈연적 이타주의
- 호혜적 이타주의
자기 기만의 진화:
때때로 부모는 자식에게 그들의 행위가 자식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어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기가 탐욕스러운 것이 아니라 궁핍하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어하며, 연인들은 서로에게 자기가 항상 진실하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어하고, 비혈연자들은 서로에게 자신이 협력자로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어한다.
그들의 견해는 완전한 허구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미화된 것들이어서, 당사자는 더듬거리거나 진땀을 흘리거나 자가당착에 빠지는 실수로 상대방의 레이더 망에 걸리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믿어야 한다. 물론 뻔뻔스런 거짓말쟁이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는 노골적인 거짓말을 하고도 별 탈 없이 넘어가겠지만, 그런 식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어떤 친구도 그들의 약속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해 보이는 얼굴의 대가는 솔직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어서,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일부가 자신의 광고를 믿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마음의 또 다른 일부에는 그 자아상이 현실과 어긋나지 않을 만큼의 객관적 사실이 등록된다. —p463
고통의 중요성:
우리 마음 속에 풍부하고 강렬한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삶 속에서 그들(가족과 친구)과의 결속이 얼마나 귀중하고 깨지기 쉬운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의 가능성이 없어진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조화롭고 완벽한 행복이 아니라 의식의 결핍인 것이다. —p470
제15장. 신성한 체하는 동물
The moral emotions by Jonathan Haidt
제5부. 주요 쟁점들
제16장. 정치
제17장. 폭력
고상한 야만인 이론과 달리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See Violent nature of human
잔악행위를 야기시키는 비인간화 전술:
종종 잔학 행위에는, 경멸적인 이름 붙이기, 생활 조건을 열악하게 만들기, 굴욕적인 옷 입히기, 고통을 깔보는 “냉혹한 농담”을 유포하기 등의 비인간화 전술이 수반된다. 이 전술들은 우리의 정신적 스위치를 건드려서 “인간”을 “비인간”으로 재분류하고 그래서 우리가 바다 가재를 산 채로 삶듯이 누군가가 그를 고문하거나 죽이는 것을 쉬운 일로 만든다. …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web.archive.org/web/20060106153536/http://jania.pe.kr/wiki/jwiki/moin.cgi/PhilipZimbardo)는 일류 대학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비인간화 전술이 사용되면 한 개인을 다른 사람의 도덕적 범위에서 쉽게 몰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see Stanford prison experiment) …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과 인종 대학살에 가담한 폭도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그들은 종종 즐겁게 살인을 하고, 때로는 “짜릿한 기쁨”이나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살인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p561-563
인간의 폭력성을 인정해야한다:
많은 지식인들이 폭력의 진화론적 논리를 외면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을 수용하거나 승인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고상한 야만인이 던져주는 안락한 망상을 추구하면서, 폭력이 학습의 임의적 산물이거나 외부에서 침투한 병원균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폭력의 논리를 거부하면 폭력이 얼마나 쉽게 고개를 드는지를 잊기 쉽고, 폭력에 불을 붙이는 마음의 기능들을 무시하면 그 불을 끌 수 있는 마음의 기능들을 간과하기 쉽다. 우리의 많은 관심사들처럼 폭력의 경우에도 문제는 인간 본성에 있고, 해결책도 인간 본성에 있다. —p588
제18장. 성
차이와 불평등은 다르다:
왜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의 마음이 모든 측면에서 동일하지 않다는 생각을 그렇게 두려워할까? 정말로 우리 모두가 양성적 존재라면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사람들의 두려움은, 차이가 곧 불평등을 의미한다는 것, 즉 양성이 어떤 면에서든 다르다면 남자들이 더 낫거나 더 지배적일 것이고 그들이 모든 재미를 독점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남성의 몸을 갖는 것과 여성의 몸을 갖는 것은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똑같이 좋은 전략이다. … 비비 수컷 크기에 15센티미터의 송곳니를 갖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비비 암컷의 크기에 송곳니를 갖지 않는 것이 낫겠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즉시 그 무의미함을 깨닫게 된다.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수컷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컷의 적응특성을 갖는 것이 낫고, 암컷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암컷의 적응특성을 갖는 것이 낫다고.
젠더 평등 문제에 대한 세 가지 사실:
첫째, 여성들이 자신의 포부를 펼치는 것을 방해하거나 성을 기초로 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어디서든 즉시 금지되어야 할 불공정 행위이다. 둘째, 과거에 여성들이 광범위한 차별에 시달렸으며 그러한 차별이 오늘날에도 일부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셋째, 여성이 과학자, CEO, 국가 지도자, 그리고 모든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문제는 여러 해 전에, 남성의 경우와 똑같이 여성의 경우에도 일부는 능력이 있고 일부는 능력이 없다는 해답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
유일한 문제는 능력있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동등해야 하는가이다. —p618-619
양성 균등 비판:
곳프레드슨(AnswerMe)은 이렇게 지적한다. “양성 균등을 사회적 정의의 수단으로 이용하겠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다수의 남녀를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직업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으로 떠미는 것이 된다. —p627
강간이 섹스와 무관하다는 주장(see Against our will)에 대한 비판:
현대의 지식 세계에서 강간을 분석할 때 최우선으로 주어지는 도덕적 명령은, 강간은 섹스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 주문은 강간이란 주제가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 1960년대 이래로 대부분의 교양인들은 섹스를 수치스럽다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섹스는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섹스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강간은 나쁘다. 따라서 강간은 섹스가 아니다. 강간의 동기는 인간 본성이 아니라 사회 제도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
나는 강간이 섹스와 무관하다는 주장이 언젠가는 기이한 대중적 착각과 군중의 광기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겉으로만 보아도 터무니없고, 지금처럼 신성시될 가치가 없으며, 수많은 증거와 모순되고, 강간과 관련된 유일한 도덕적 목표인 강간 퇴치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생각해보자. 첫 번째 명백한 사실은 남자들은 종종 그들과 섹스를 하고 싶지하지 않는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기술 - 구애, 유혹, 아첨, 거짓말, 토라짐, 지불 등 - 을 동원한다. 두 번째 명백한 사실은 어떤 남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고통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 만약 어떤 남자들이 섹스를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수만 가지 사실과 모순되는 정말로 유별난 사실이 될 것이다.
이제 남자들이 강간을 통해 전체 남성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생각에 상식을 적용시켜 보자. 강간범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여자의 손에 상처를 입을 위험이 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여자쪽 친척들의 손에 고문, 신체절달 ,죽음을 당할 위험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장기형에 처해질 위험이 있다. 그런데도 강간범들이 얼굴도 모르는 수십 억의 모든 남성을 위해 그런 위험을 무릅쓴단 말인가? … 모든 남자가 모든 여자를 상대로 야만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은, 남자들에게는 어머니, 딸, 누이, 아내가 있으며 그들은 다른 남자들이 아니라 그 여자들을 소중히 보살피며 살아간다는 간단한 사실 앞에서 즉시 물거품이 된다. 이것을 생물학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각 개인의 유전자는 다른 사람들의 몸 속으로 전해지는데, 그 절반이 자신의 반대 성이다. …
강간범의 동기에 섹스가포함되는가라는 더욱 기본적인 문제는 어떠한가? …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에게는 성행위 도중 어느 때라도 싫다고 말할 권리가 있으며, 그래도 남자가 고집한다면 그것은 성폭행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 경우 남자의 동기가 갑자기 섹스를 하는 것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말인가? —p628-641
여성의 옷차림:
모든 여성은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는 완벽한 세계에서 여성들이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하면 여성들의 안전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행여 그들이 남성들의 엉뚱한 반응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하라고 제안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어서,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 여성들에게 “성폭행은 성적 만족을 노린 행동이 아니다”라거나 “외모와 매력은 강간과 무관하다”라고 가르치는 성폭력 방지 프로그램에 세뇌당한 사람이 아니라면 -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p645
결론:
여성운동은 정치적, 사회적 평등을 위한 운동으로서는 중요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괴벽스런 교의에 몰두하는 학문적 파벌로서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뒤바뀔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선택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여성이 모든 직업의 50%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성폭행을 근절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강간범이 전체 남성의 공모 하에 강간을 저지른다는 이론은 중요하지 않다. —p648-649
제19장. 어린이
유전자 얘기만 나오면 생물학 결정론을 떠올리는 경향:
유전자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은 갑자기 이성을 잃고 50%와 100%, “어떤”과 “모든”, “영향을 미친다”와 “결정한다”를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이런 지적 장애의 진단은 간단하다. 만약 유전자의 영향이 신학적인 이유로 0이어야 한다면, 0이 아닌 모든 값들도 똑같이 이단적일 것이다. —p662
행동유전학의 세 가지 법칙:
행동유전학의 세 가지 법칙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일 것이다. … 세 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 제1법칙: 인간의 모든 행동 특성은 유전적이다.
- 제2법칙: 한 가족 내에서 양육되는 것의 효과는 유전자의 영향보다 작다.
- 제3법칙: 복잡한 행동 특성들의 편차 중 상당 부분은 유전자나 가족의 영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p652
세 법칙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전자 50%, 공유 환경 0%, 단독 환경 50%(조금 양보하자면, 유전자 40-50%, 공유 환경 0-10%, 단독 환경 50%). 이것을 기억하는 간단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란성 쌍둥이는 함께 자라든 따로 자라든 50% 비슷하다. —p666
환경 결정론 비판:
프로이트 학파는 젖떼기, 용변 훈련, 같은 성을 가진 부모와의 동일시 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경험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이론을 세웠고, 아기를 부모의 침대에 재우면 성적 욕구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들 모두는 여러 가지 심리적 장애가 어머니 탓일 수 있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가령 자폐증은 어머니의 냉담함 때문이고, 정신 분열증은 어머니의 이중 구속 때문이고, 신경성 무식욕증은 완변학 딸을 바라는 어머니의 압력 때문이라는 식이었다. 자긍심 부족은 “유해한 부모” 탓이었고, 그 밖의 모든 문제들이 “불우한 가정” 탓이었다. 심리 요법을 받는 환자들은 유년의 갈등을 떠올리기 위해 50분 동안 빈둥거리고, 전기 작가들은 성공과 불행의 뿌리를 찾기 위해 주인공의 유년을 파헤치곤 한다. —p668
유아 교육에 대한 미신:
조지아 주지사와 미주리 주지사는 모든 산모에게 모차르트 음악 CD를 배포한다는 계획 하에 주 의회에 수백만 달러를 요청했다. (그들은 유아의 뇌 발달에 관한 실험과, 모차르트 음악을 몇 분 감상하는 것이 성인들에게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의심스런 실험을 혼동하고 있었다.) …
인지신경과학의 전문가 John Brewer는 The myth of the first three years에서 그렇게 놀라운 주장들에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어떤 심리학자도 인지 발달이나 언어 발달의 어떤 과정이 세 살에 완성된다고 보고한 적이 없다. 그리고 동물에게서 자극을 박탈하면 (눈을 꿰매거나 단조로운 우리에 가두는 방법으로) 뇌 발달을 저해할 수는 있지만, 특별한 자극(정상적인 서식 환경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극)이 뇌 발달을 촉진시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p676-677
결론:
모든 사람이 운명이나, 유전자, 또래 집단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한 어머니는 “시카고 트리뷴”에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내가 그 아이에게 쏟아 붓는 이 모든 사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다.” 인간 본성에 관한 다른 발견들을 접할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신에게 기도한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의 소망과 무관하고 때로는 그 소망에 의지하도록 우리의 등을 떠밀기도 한다.
사실 아이가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없다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자녀들의 특성을 미리 지정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모든 아이가 예기치 않은 재능과 성공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가? 사람들은 인간 복제를 두려워하고 부모가 유전 공학을 통해 자식을 설계할 수 있다는 미심쩍은 약속을 끔찍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가 양육을 통해 자식을 설계할 수 있다는 환상과 얼마나 다른가? 현실적인 부모라면 오히려 시름을 덜 수 있다. 아이를 자극하고 사회화하고 아이의 성격을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동화 책을 읽어줄 때도 그것이 뉴런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에 마음이 넉넉해질 것이다. …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내가 우리 아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물론 부모의 양육은 매우 중요하다. 해리스는 독자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다.
첫째, 부모는 자식에게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고,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의 행복에 대한히 중요하다. 양육은 무엇보다 윤리적인 책임이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거나 무시하거나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크고 강한 사람이 작고 힘없는 존재를 그렇게 다루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
둘째, 부모와 자식은 인간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배우자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신혼 부부 외에는 어떤 사람도 “그렇다면 내가 우리 남편이나 아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보살피는 것은 상대방의 인성을 원하는대로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고 만족스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남편이나 아내의 성경을 개조할 수 없다는 말에, “내가 그(혹은 그녀)에게 쏟아 붓는 이 모든 사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다.”라고 대꾸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 대한 행동은 서로가 맺는 관계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사람들은 아이들을 빈 서판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p696-699
제20장. 예술과 인문학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예술과 인문학 분야에서는 마음의 작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술과 인문학에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필수적이다.
한 가지 이유는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가의 진정한 매개물은 인간의 정신적 표현물이라는 것이다. 유화, 조각, 인쇄된 말은 인간의 뇌를 직접 관통하지 못한다. 예술 작품은 감각 기관을 시작으로 사고, 감정, 기억에 이르는 계단식 신경활동을 촉발한다. 인지과학과 인지신경과학은 그 계단식 과정을 정밀하게 밝혀 냄으로써 예술 작품의 탄생 과적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시각 연구는 그림과 조각의 비밀을 해명할 수 있다. 심리음향학과 언어학은 새로운 음악 연구의 장을 개척하고 있다. 언어학은 시, 은유, 문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심상 연구는 이야기체 산문의 기법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마음 이론(직관 심리)은 허구의 세계를 즐기는 우리의 능력을 조명한다. 시각적 주의와 단기 기억에 대한 연구는 영화적 경험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진화 미학은 이 모든 지각 행위에 수반되는 미와 즐거움의 감정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또 다른 접점이 있다. 결국 우리를 예술 작품으로 이끄는 것은 매개에 대한 감각 경험과 함께 그 정서적 내용과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이다. 이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곤경 - 우리의 필멸성, 유한한 지식과 지혜, 서로 간의 차이, 친구/이웃/가족/연인과의 이해 다툼 - 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모두가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에서 다루는 주제이다. —p730-731
제6부. 인류의 목소리
인간 본성을 인정한다는 것의 의미:
인간 본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 세계관을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 자리에 추천할 만한 다른 것이 없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지식 세계가 이중의 생활을 접고 다시 과학과 결합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과학의 도움을 받아 상식과 재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 세계는 점점 더 인간 세계와 멀어질 것이고, 지식인들은 위선에 빠질 것이고, 그 밖의 모든 사람이 반지식인으로 돌아설 것이다. …
세련된 관객들은 뻔한 줄거리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안이한 희극에 조소를 보낸다. 인생은 그런 것이 결코 아니므로 사람들은 예술이 인간 조건의 고통스런 딜레마를 다루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똑같은 관객들이 과학에 대해서는 눈물나는 감상을 요구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성과를 비판할 때에는 오직 “비관주의”만이 올바른 비판으로 통하고, 과학적 이론은 감상적 고양의 수단으로 간주된다. —p739-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