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억압과 차별이 정당화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유전자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네 가지 두려움 중 한가지. 스티븐 핑커빈 서판에서 주장.

The mismeasure of man을 비판하며 IQ 개념을 옹호:

놀랄 정도로 많은 지식인들이 특히 좌파 지식인들이 선천적 재능 특히 지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Stephen Jay Gould는 1981년 베스트 셀러 The mismeasure of man을 발표했는데, 이 책을 쓴 목적은 “지능을 하나의 실체로 독립시키고, 뇌 안에 그 위치를 정하고, 각 개인을 IQ라는 하나의 숫자로 평가하고, 그 숫자를 이용해 사람의 가치를 단일한 등급으로 배열하면서,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집단 - 인종, 계급, 성 - 이 선천적으로 열등하며 현재의 지위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

지능의 존재를 부인하는 학자들의 글을 읽으면 참으로 초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지능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학생의 입학을 고려할 때 교수진과 직원을 고용할 때, 특히 남의 결점에 대해 험담을 주고 받을 때 끊임없이 지능을 거론한다. 국민이나 정책 결정자들도 그들의 정견에 상관없이 지능을 무시하지 못한다. IQ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IQ가 64인 살인자를 처형하는 문제나, 어린이의 IQ를 5점 떨어뜨리는 납 성분이 든 페인트를 추방하는 문제나, 조지 부시가 대통령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로 넘어오면 즉시 IQ를 들먹인다. 어찌됐든 오늘날 지능은 개인의 안정된 자질이고, 뇌의 특징들(전체적 크기, 전두엽의 회색질의 양, 신경 전달의 속도, 대뇌의 포도당 신진 대사 등)과 연결될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 개인들 간에 유전되고,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삶의 성과에 있어 어느 정도 차이를 예측하게 해 준다는 증거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선천적 재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사회 다윈주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선천적 차이가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요소일 가능성이 유일한 요소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더욱 중요한 것은 유전적 재능이 사회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성공이 도덕적 의미에서도 당연한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267-268

개인들 간의 선천적 차이를 진지하게 다루어야만 실제적 평등에 다가갈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동일하게 출발하지만(see 빈 서판) 결국에는 일부가 나머지보다 더 부유해진다고 한다면,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분명 더 탐욕스럽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자칫 재능을 죄악으로 추락시켜 그 해결책을 재분배가 아닌 복수에서 찾을 수도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잔학 행위가 평등주의의 이름으로 전개되었는데, 성공을 범죄의 증거로 여기고 부유층을 공격했다. …

존 롤스 식의 좌파는 평등을 위해 자유의 일부를 희생시킨다. 자유주의 우파는 자유를 위해 약간의 평등을 희생시킨다.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도 최고의 흥정 결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지만, 흥정이 전혀 없는 척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태도이다. 다시 말해, 개인들 간에 존재하는 선천적 차이에 대한 발견은 억눌러야 할 금단의 지식이 아니라, 이 취사 선택을 지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추진하고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이다. —p272-273

발생학적 오류 지적:

나치가 생물학을 이용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비뚤어진 사상이 소름끼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지식인들에게는 자신의 사상이 사악한 목적으로 악용되지 않게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학문적 논쟁에서 수사학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나치즘의 공포를 이용하면서 그 끔찍한 충격을 범상한 것으로 끌어내리는 행위는 지식인의 책임에 포함되지 않는다. … 개념이란 나치가 악용했다고 틀리거나 사악해지지 않는다. —p275

결론: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이 사악한 이론이 아닌 것처럼, 빈 서판를 사악한 이론이라고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두 이론 모두 지지자들이 저질렀던 악한 행동과는 거리가 아주 멀기 때문에 그 가치를 평가할 때에는 반드시 실제적 조건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내 의도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과 20세기 도덕적 재앙과의 얄팍한 연계성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그 관계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건전한 욕구를 가로막고, 역사적 재앙의 원인을 이해할 필요성을 저해한다. 그 원인이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어떤 측면과 관계가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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