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유전자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네 가지 두려움 중 한가지. 스티븐 핑커빈 서판에서 주장.

도덕 관념은 진화의 산물이며, 종교적 가치에 우선한다(우선해야 한다):

(도덕 관념은) 인류와 함께 진화해 온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충분하다. 생후 1년 반 된 아이는 자발적으로 장난감을 주고, 도움을 제공하고, 우울해보이는 어른이나 다른 아이들을 위로한다. 어떤 문화에서든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부분하고, 공정함을 따지고, 서로 돕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강간, 살인, 특정 형태의 폭력을 금지한다. 이 정상적인 감정의 존재는 우리가 정신병질자라 부르는 특별한 개인들을 통해 더욱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만약 하느님이 인간에게 관대하고 친절하기보다는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살라고 명령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는가? 종교에서 가치를 구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도덕 관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로써 우선권을 부여할 가치는 우리의 도덕 관념에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p335, 빈 서판

종교의 부작용:

종교의 역사를 보면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이기적 행동과 잔인한 행동을 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디언 사람들을 학살하고, 마녀를 태우고,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살해하고, 신교도들을 창 밖으로 던지고,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약을 쓰지 못하게 하고, 낙태 시술 의사를 총으로 쏘고, 샐먼 루시디를 저격하고, 시장을 폭파하고, 고층 건물을 향해 비행기를 몰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히틀러도 자기가 하느님의 의지를 수행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악행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것이 우연한 도착 행위가 아님을 말해준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전지전능한 권위자는 성전의 전사들을 끌어 모으는 사악한 지도자들에게는 아주 쓸 만한 후원자다. …

영혼이 육체보다 오래 산다는 교의는 결코 옳지 않다. 필연적으로 지상에서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잔 스미스는 어린 두 아들을 호수 바닥으로 던질 때 “우리 아이들은 가장 좋은 곳에서 살 자격이 있고 이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합리화로 자신의 양심을 속였다. 행복한 사후 세계는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빼앗으면서 남기는 최후의 편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최근에도 그런 믿음이 자살 폭탄 테러범과 공중 납치범에게 용기를 돋우어 주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신의 응보를 믿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악행을 저지를 것이라는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물론 비신자들은 법망이나 사회적 비난이나 자신의 양심을 피할 수만 있다면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망을 위해 수천 명의 사람을 학살하지는 않는다. —p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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