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와 톰 리건 사이의 논쟁
동물 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는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동물해방운동을 지지하는 철학자다. 동물 권리의 옹호의 저자 톰 리건은 권리론에 입각하여 동물권 운동을 지지하는 철학자다. 이 둘은 함께 운동을 하면서도 철학적 입장 차이를 놓고 꾸준히 토론을 했다.
이 두 사람의 사상과 입장 차이를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논쟁사
싱어는 1973년에 “동물 해방”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더 뉴욕 리뷰”에 게재하였고 2년 뒤인 1975년에 같은 제목의 책 동물 해방을 펴낸다.
리건은 1980년에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저널에 공리주의, 채식주의, 그리고 동물권Utilitarianism, vegetarianism, and animal rights이라는 글을 게재한다. 이 글에서 그는 싱어의 공리주의는 동물 운동의 철학적 기반으로 적절치 않으므로 칸트의 의무론에 기반한 동물권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같은 저널에 공리주의, 채식주의라는 제목으로 싱어의 반론이 실린다.
리건은 1983년에 동물 권리의 옹호를 펴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싱어의 동물 해방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1985년 1월, 싱어는 동물 해방 출간 10년을 기념하며 “더 뉴욕 리뷰”에 동물 해방 10년Ten Years of Animal Liberation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게재한다. 그 동안의 성취들을 소개하고 학자들과 실천가들 사이에 오간 논쟁들을 요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에세이에는 리건의 동물 권리의 옹호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계기로 같은 해 7월에 구명보트의 개The Dog in the Lifeboat라는 제목으로 리건과 싱어가 한 차례씩 공방을 주고 받는 글이 공개된다.
그 후로도 유사한 논쟁이 이어지지만 둘 사이의 입장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톰 리건은 2017년에 별세하였고 싱어는 “1973년부터 알아온 동물 철학의 선구자 톰 리건이 오늘 아침에 별세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기본 전제의 차이: 공리주의와 의무론
싱어의 공리주의
싱어는 공리주의자다.
그는 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고등학교 교과서의 표현에 의하면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모든 개체를 지각이 있는 존재라고 부른다. 지각있는 존재는 이익 또는 관심사interests를 가지기 때문에 이 존재가 인간이건 아니건 간에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를 동등 고려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이란 공리주의의 원칙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하는 행동을 말한다. 공장식 축산, 동물 실험, 서커스, 동물을 이용하여 만드는 상품(가죽, 털옷 등) 등은 인간의 사소한 이익을 위하여 동물에게 엄청나게 큰 고통을 가하므로 부도덕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습을 모두 철폐해야 한다.
리건의 권리론
리건은 의무론자다.
그는 믿음, 욕구, 인식, 기억, 미래에 대한 감각, 정서적 삶, 선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을 할 능력, 연속적인 정체성 등을 가진 모든 생명을 삶의 주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모든 삶의 주체들에게는 내재적인 가치inherent value가 있으며 따라서 도덕적 권리moral rights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이란 삶의 주체가 가지는 권리를 존중하는 행동을 말한다. 공장식 축산, 동물 실험, 서커스, 동물을 이용하여 만드는 상품(가죽, 털옷 등) 등은 동물을 그저 인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권리를 존중하는 행동이 아니며 따라서 부도덕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습을 모두 철폐해야 한다.
공통점과 차이점
두 사람 모두 동물 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며, 공장식 축산의 폐지 등 현실 상황에서의 거의 모든 주요 이슈에 대해 서로 의견을 같이 한다. 얼핏 생각하기엔 싱어는 행동의 결과를 중시하고 리건은 행동이 주어진 의무를 따르는지 여부를 중시하기에, 싱어는 꼭 필요한 경우라면 육식이나 동물 실험을 허용하는 반면, 리건은 어떠한 경우에도 육식이나 동물 실험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실제로 여러 단체나 개인들이 이렇게 주장하며, 심지어는 리건 스스로도 그렇게 주장한다.
두 입장의 차이는 대부분의 현실 상황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공리주의와 의무론 사이의 이론적인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극단적인 가상의 상황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가상의 상황을 상정하여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논쟁 중 하나가 소위 “구명보트의 개” 논쟁이다.
구명보트의 개
개와 사람 중 누구를 바다에 던질 것인가
리건은 동물 권리의 옹호에서, 전통적 의무론에 기반한 윤리적 입장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서 현실에 적용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는 비판을 받곤 하는 점을 우려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리건은 의무론에 기반한 접근도 다양한 상황에 대하여 다수의 사람들의 직관적 판단과 부합하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는 아래와 같은 가상의 상황을 상정한다.
배 사고가 나서 평범한 사람 네 명과 개 한 명이 구명보트로 옮겨 탑니다. 하지만 보트의 정원이 초과되어 이 중 한 개체(네 사람 중 한 명, 혹은 개)를 바다로 던지지 않으면 모두 함께 가라앉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개를 바다에 던지는 게 대다수의 사람들의 직관적 판단일 것이다. 이 점에는 싱어와 리건 모두 동의한다. 다만 동의하는 이유가 다르다.
싱어에 따르면, 개와 인간은 모두 지각이 있는 존재이므로 이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인간은 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점 등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고려할 이익이 존재한다. 만약 인간 네 명 중 한 명이 회복 불가능한 뇌손상을 입어 인지 능력을 상당히 상실했다면 싱어는 개가 아니라 인간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따라서 ‘평범한’ 네 사람과 개가 있는 상황에서 개를 던지는 결정은 종차별이 아니다. 평등이란 “동등한 취급”이 아니라 관심사에 대한 “동등한 고려”이기 때문이다. (동등 고려의 원칙)
리건에 따르면, 인간과 개는 모두 삶의 주체이므로 이들의 내재적 가치를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인간은 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래를 계획할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점 등으로 인해 인간의 죽음이 개의 죽음에 비해 더 큰 위해harm를 끼친다. 만약 인간 네 명 중 한 명이 회복 불가능한 뇌손상을 입어 인지 능력을 상당히 상실했다면 리건도 개가 아니라 인간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따라서 ‘평범한’ 네 사람과 개가 있는 상황에서 개를 던지는 결정은 종차별이 아니다.
결론이 동일하다. 싱어는 이익(쾌락이나 고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리건은 권리의 기각과 이에 따른 위해를 기준으로 판단할 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싱어의 공리주의는 각 개체의 이익을 모두 합하거나 평균을 구하여 행동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반면, 리건의 권리론은 이런 식의 계산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람 네 명과 개 백만 명 중 어느 집단을 살릴지 결정해야 하는 경우 싱어는 아마도 개 백만 명을 살리자고 주장할 것이고, 리건은 사람 네 명을 살리자고 주장할 것이다. 백만명은 그저 큰 수를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고, 리건의 입장에 따르면 사실 무한히 많은 개를 바다에 던질 수 있다.
백만 명의 개에 대한 동물 실험
싱어는 동물 해방 10년이라는 글에서 리건의 위와 같은 입장을 비판한다. 구명보트 상황에서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개를 백만명이라도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또 동시에, 그 어떠한 경우에도 동물 실험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싱어는 이 두 주장이 양립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논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추가로 한번씩 더 의견을 나누는데, 그 내용이 구명보트의 개라는 제목의 기사에 서신 교환의 형태로 소개된다.
리건은 동물 실험과 구명보트 상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모순이 없다고 말한다. 동물 실험에서 고통받는 동물은 동물 실험이 없었다면 고통을 받을 일이 없었는데 인간의 동물 실험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 것이며 강압적으로 피험체가 된 것이다. 반면 구명보트의 개는 바다에 던져지지 않더라도 죽게 될 운명이었고, 보트에 강압적으로 탄 것도 아니다. 따라서 존중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재반론으로 싱어는 다른 상황을 제안한다. 인간과 개에게 모두 감염되는 치명적 인수공통감염병이 창괄하였는데 이들의 생명을 구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감염되어 곧 죽게 될 개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병에 걸린 것도 인간의 강압으로 인한 게 아니고, 개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건 안하건 감염된 개는 원래 죽을 수 밖에 없으므로 구명보트와 동일한 상황이 되었다. 싱어는 이 상황에 리건의 논리를 그대로 다시 적용하면 백만명의 개를 실험용으로 쓰더라도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이 재반론에 대한 리건의 답은 찾지 못했다. 다만 내가 공부한 바에 따라 리건의 답을 추측해보자면 이렇다. 리건은 이 상황에서 개를 실험용으로 쓰는게 옳다고 주장해야 한다. 구명보트 상황과 마찬가지로 권리의 침해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건의 권리론은 틀렸나
그렇다면 리건의 권리론이 틀린 걸까? 싱어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애초에 싱어는 권리론이 틀렸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공리주의에는 결함이 있으나 권리론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비판할 뿐이다.
리건은 자신의 의무론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동물 실험이 어떠한 상황에서건 항상 부도덕한 반면, 싱어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때론 동물 실험이 정당화될 수도 있으므로 싱어는 동물 실험 폐지론자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곤 하는데, 싱어는 이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다.
싱어는 자신도 리건만큼이나 동물 실험의 폐지를 원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론이나 리건의 이론이나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동물 실험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가상의 인터뷰
싱어의 공리주의와 리건의 권리론을 비교하기 위해 두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을 때 각자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지 추측해서 가상의 인터뷰를 만들어봤다.
이론적 배경
도덕적 고려의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싱어: 쾌락 또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지각있는 존재이다.
- 리건: 믿음, 욕구, 인식, 기억, 미래에 대한 감각, 정서적 삶, 선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을 할 능력, 연속적인 정체성 등을 가진 존재는 삶의 주체이다.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는 종의 경계는 어디인가?
- 싱어: 아마도 굴 혹은 그보다 복잡한 신경계를 가지는 모든 동물들은, 신경계가 정상 발달하였다면, 지각있는 존재이다.
- 리건: 아마도 대부분의 포유류와 일부 조류 그리고 어쩌면 일부 어류는, 신경계가 정상 발달하였다면, 삶의 주체이다.
무엇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하나?
- 싱어: 지각있는 존재에겐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관심사와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관심사가 있다. 동일한 크기의 관심사는 종과 무관하게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
- 리건: 삶의 주체에겐 동등한 내재적 가치가 있다. 따라서 도덕적 의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건 없건 이들의 도덕적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공장식 축산
공장식 축산은 왜 나쁜가?
- 싱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인간의 상대적으로 사소한 쾌락을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동물에게 상대적으로 큰 고통을 가하기 때문에 나쁘다.
- 리건: 인간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나쁘다.
공장식 축산의 복지를 개선하면 좋을까?
- 싱어: 궁극적으로는 공장식 축산을 폐지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폐지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복지 개선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1) 당장 공장식 축산 시스템 하에 놓인 수많은 동물들의 고통이 아주 미묘하게라도 개선된다는 점, 2)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어야 일반 대중의 인식이 개선되고 그래야 장기적으로 육식의 수요를 줄일 수 있게 되며 결과적으로 공장식 축산의 폐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1) 공장식 축산 시스템 하에서 행해지는 복지에는 한계가 있으며, 2) 대중을 기만하여 육식의 문제점을 감추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단점을 모두 고려했을 때 단점에 비해 장점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복지 개선은 좋은 일이다.
- 리건: 공장식 축산을 폐지해야 한다. (리건의 더 상세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을 못 찾았다. 다만 그의 폐지론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는 있다. 리건의 대표작 동물 권리의 옹호 개정판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의 저술 기간은 1980년 9월부터 1981년 11월이다. 초판 서문은 1981년 11월 26일에 썼다. 리건은 저술을 시작할 당시에는 자신이 복지론자였으나 마칠 무렵엔 폐지론자로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6장 및 그 이후 작업을 하면서 “생각이 글을 이끄는 대신, 글이 생각을 이끌기 시작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리건은 폐지론자로 입장이 바뀐 후에 쓴 “초판 서문”에도 여전히 “동물의 처우 개선”, “복지”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폐지해야 하지만 복지 향상도 필요하다고 여길 가능성이 있다.)
동물 실험
화장품 개발을 위해 동물 실험을 하면 왜 나쁜가?
- 싱어: 상대적으로 사소한 이익을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동물에게 상대적으로 큰 고통을 가하기 때문에 나쁘다.
- 리건: 화장품 개발을 위한 도구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동물의 존중받을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나쁘다.
인간과 개에게 공통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백신을 개발하지 않으면 곧 모두 죽게 될 상황이며, 인간이나 개를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하면 백신을 빠르게 개발할 가능성이 높고, 다른 대안은 없다. 이 상황이라면 생체 실험을 해야할까?
- 싱어: 인간과 개의 죽음 또는 고통을 막을 가능성이 충분히 높고, 동물 실험이 아닌 대안이 전혀 없으며, 신약 개발로 인해 이득을 볼 동물의 수가 월등히 크며, 신약 개발 이외의 다른 분야에 동일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더 큰 이익이 없다면 실험을 해야 한다. 단, 실험 동물이 겪을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야만 한다.
- 리건: 누구도 강압적으로 이 상황에 끌려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험을 안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 동물을 인간이 일방적으로 잡아서 죽이는 일반적인 동물 실험과는 달리 권리의 침해가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이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실험을 해야한다.
위해의 크기 비교
위 상황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경우 인간 1명이 필요하고 실험에 참여한 인간은 2년간 고통을 받는다. 개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경우 100명의 개가 필요하고 실험에 참여한 개는 1년간 고통을 받는다.
인간 1명을 대상으로 해야할까, 개 100명을 대상으로 해야할까?
- 싱어: 인간이나 개의 고통을 지켜보며 괴로워할 다른 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 고통과 죽음의 총합을 최소화하려면 인간 1명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인간 1명 * 2년 = 2명년. 개 100명 * 1년 = 100명년)
- 리건: 최소기각 원리에 따르면, 개별 존재가 겪는 위해의 크기가 비슷한 경우comparable harm 되도록 적은 수가 위해를 겪는 방향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위해의 크기가 다르므로(인간은 2년, 개는 1년) 이 원리를 적용할 수 없다. 최소기각 원리는 공리주의와 달리 서로 다른 존재가 겪는 위해의 크기 합치지 않기 때문이다. 위해의 크기가 다르면 상대적위해 원리를 적용하여 더 큰 위해를 겪는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선택을 해야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위해를 겪는 이들의 수를 합쳐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더 큰 위해를 겪는 인간 1명 대신 개 100명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동일한 상황인데 인간 1명이 1년 고통을 받거나, 개 100명이 1년 고통을 받는 상황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떻게 달라지나?
- 싱어: 역시 인간 1명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인간 1명 * 1년 = 1명년. 개 100명 * 1년 = 100명년)
- 리건: 위해의 크기가 비슷하므로 최소기각의 원리에 따라 인간 1명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동일한 상황인데 인간 1명이 6개월 고통을 받거나, 개 100명이 1년 고통을 받는 상황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떻게 달라지나?
- 싱어: 역시 인간 1명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인간 1명 * 0.5년 = 0.5명년. 개 100명 * 1년 = 100명년)
- 리건: 위해의 크기가 다르므로 최소기각의 원리를 적용할 수 없고 상대적위해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 1명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동일한 상황인데 인간 1명이 1년 고통을 받거나, 개 100명이 이틀 동안 고통을 받는 상황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떻게 달라지나?
- 싱어: 개 100명을 골라야 한다. (인간 1명 * 365일 = 365명일. 개 100명 * 2일 = 200명일)
- 리건: 위해의 크기가 다르므로 최소기각의 원리를 적용할 수 없고 상대적위해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 1명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결론
철학과 현실
뚜렷한 철학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가상의 상황이 아닌 대부분의 실제 상황에서는 두 사람의 입장이 일치한다는 점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의견을 같이 한다.
리건은 공리주의, 채식주의, 그리고 동물권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철학자들은 서로 동의하지 않는걸로 악명이 높다. 두 철학자에게 똑같은 전제를 제시하면 두 사람 각자 전제를 충실히 따랐다고 주장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 뻔하다. 두 철학자에게 똑같은 결론을 제시하면 이들은 서로 전제가 다르다고 말할 것임에 틀림없다. 나의 에세이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싱어와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게 우리의 공통된 결론이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 이러한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싱어 또한 같은 의견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구명보트의 개 논쟁의 마지막 단락에서도 싱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질적인 문제들에 있어서는 리건과 나의 의견은 완전히 일치한다. 지금과 같이 (악습이) 지속적으로 수용되는 그러한 사회에서라면 우리 사이의 철학적 입장 차이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상대의 입장을 왜곡하기
리건의 대표작 동물 권리의 옹호 개정판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의 저술 기간은 1980년 9월부터 1981년 11월이다. 초판 서문은 1981년 11월 26일에 썼다. 리건은 저술을 시작할 당시에는 복지론자에서 시작했으나 마칠 무렵엔 폐지론자로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6장 및 그 이후 작업을 하면서 “생각이 글을 이끄는 대신, 글이 생각을 이끌기 시작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리건은 폐지론자로 입장이 바뀐 후에 쓴 초판 서문에도 여전히 동물의 처우 개선, 복지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리건이 스스로 정립한 권리론이 담고 있는 원칙들도 동물 실험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부당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소기각 원리는 어쩔 수 없이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최소 집단의 권리를 침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고, 상대적위해 원리는 상대적으로 큰 위해를 당할 이들의 권리를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결국 싱어가 모든 상황에서 원칙적으로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리건의 비판은 모순적이다. 리건 본인의 이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공리주의: 짧은 소개에 따르면, 싱어가 말하는 정당한 동물 실험이란 다음 조건을 모두 빠짐없이 만족해야 하는데, 현실에서 행해지고 있는 거의 모든 동물 실험이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폐지론과 현실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폐지의 이유를 설명하는 윤리적 근거가 다를 뿐이다.
- 많은 수의 동물/인간의 죽음이나 고통을 막을 신약 개발의 잠재성이 꽤reasonable 높음
- 몇몇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지 않고서는 이를 달성할 다른 길이 없고 신약 개발로 인해 이득을 볼 동물의 수가 월등히 많음
- 실험 동물이 겪을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절차를 준수
- 신약 개발 이외의 다른 분야에 동일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더 큰 이익이 없음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기존의 널리 알려진 입장과 구분하고 더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널리 알려진 입장을 폄훼하거나 왜곡하곤 한다. 싱어에 대한 톰 리건의 주장들도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