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생물학이다
2002년 경에 읽은 책. 과학 혁명의 구조는 물리학의 철학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생물학을 위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
서문
생물학에 맞는 철학의 부재. 과학 철학은 물리학만의 철학이었다.
Emergence in physics and biology. 창발성에 대한 에른스트 마이어와 닐스 보어의 대화.
과학 혁명의 구조 비판:
과학사를 정립하려면 많은 학자들도 생물학을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1962년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가 출간되었을 때, 나는 그 책이 왜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켜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쿤이 한 일이란 기존의 과학 철학이 가지고 있던 비현실적인 명제들의 일부를 논박하고 역사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들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생물학의 역사에 대변혁이 과연 언제 있었으며 쿤의 이론이 말하는 이른바 정상 과학이 언제 장기간 존재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생물학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1859년에 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이 혁명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진화에 대한 개념들은 이 책이 나오기 한 세기 전에 이미 있어 온 것들이었다. 또한 진화적 적응을 설명하는 중심 메커니즘인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종의 기원 출간 이후 한 세기가 지나도록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시기 동안에도 작은 변혁들은 있었지만 정상 과학의 시기는 없었다. 쿤의 명제가 물리과학에는 통할지 모르나 생물학에는 맞지 않는다. 물리학의 배경을 갖고 있는 과학사학자들은 세 세기에 걸친 생명체에 관한 연구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p18
좁게 공부하는 것의 위험성. 종종 좁은 전공 분야의 외부로부터 개념적인 진보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풀린다:
해마다 새로운 연구자들이 기존의 연구자들과 합세하여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내가 얘기를 나눈 생물학자들은 누구나 인접 분야는 고사하고 자기 전공 분야의 논문도 미처 읽어낼 시간 여유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종종 자신의 좁은 전공 분야의 외부로부터 개념적인 진보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풀린다. 새로운 연구방향은 흔히 자신의 분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자연계의 엄청난 다양성을 설명하려는 더 큰 노력의 일부로서 바라볼 때 떠오르곤 한다. —p19
제1장. ‘생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Definition of life. 우리는 아직 생명에 대한 만족스러운 정의를 얻지 못했다.
생명체는 생명 없는 물질의 세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다층적 질서를 가진 체계이다.
물리주의자가 형이상학적인 생명요소는 없으며 분자 수준에서는 생명이 물리화학의 원리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옳았다. 또, 생기론자가 생명체는 불활성물질과 같지 않으며, 특히 역사적으로 획득한 유전 프로그램과 같이 무생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여러 가지 독자적 특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도 옳았다. 생명체는 생명 없는 물질의 세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다층적 질서를 가진 체계이다. 물리주의와 생기론 양자의 좋은 원리들을 모두 포괄하는 철학이 유기체주의이며, 이것이 오늘날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다. —p27
물리주의자들
중세 신본주의의 자연주의에 대한 악영향.
세계에 대한 초자연적인 설명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자연적 설명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들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등 - 에 의해 시작됐다. 그러나 이 전도 유명한 노선은 이후 오랫동안 잊혀졌다. 중세는 모든 것을 신과 신의 법칙으로 돌리는 성서의 가르침에 의해 지배되었다. —p28
데카르트에 의해서 기계론은 정점에 다다르고, 이후 물리주의로 발전된다.
당시(중세 후기 및 초기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시계와 같은 자동 기계들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기계에 대해 열광했다. 그 열광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기계일 뿐이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에서 정점에 이른다. … 데카르트는 동물의 영혼을 기계화함으로써 세계상의 기계화를 완료했다. … 뒤이은 물리학의 급속한 발전은 과학혁명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 그로부터 이전 시대의 포괄적이었던 기계론은 구체적인 내용을 가진 물리주의, 즉 하늘과 지상에 모두 적용되는 구체적인 법칙들의 집합에 기반을 둔 물리주의로 발전했다. —p28-29
그러나 물리주의는 생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물리주의자들은 생기론자들이 생기력이라는 분석되지 않은 개념을 사용한다고 비판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운동이라는 분석되지 않는 개념들을 사용했다. 물리주의자들이 제시한 생명의 정의나 생명과정에 대한 서술은 상당 부분 완전히 공허한 진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물리화학자 Wilhelm Ostwald는 성게를 마치 물질조각처럼 “일련의 에너지 양들이 결집된, 공간적으로 구분된 단위”라고 정의한다. 대부분의 물리주의자들은 생기력이 똑같이 정의되지 않은 용어인 ‘에너지’로만 교체되면, 그때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생기론자들의 주장들을 받아들이곤 했다. 실험발생학을 크게 발전시켰던 Wilhelm Roux는 발생이란 “에너지의 비균등 분산에 의한 다양성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p31-32
생기론자들
생기론이란 보통 물리주의에 대한 다양한 반대 논의들을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 내부에 이질성을 갖게 된다.
유전 프로그램에 대한 일부 생기론자들의 통찰.
뮐러는 “생명은 입자들의 운동이다”라는 구호가 무의미하며, 설명력도 없다고 깨달았다. 그의 대안개념인 생명력은 비록 옳지는 않았지만, 혁신적인 후속 세대들의 피상적인 물리주의보다는 유전 프로그램의 개념에 훨씬 접근한 것이었다. … 생기론자들이 제시한 주장들의 대부분은 유기체의 독특한 특성들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오늘날 그것들은 유전 프로그램에 의해 설명된다. … ‘엔텔레키’라는 용어를 ‘유전 프로그램’이라는 용어로 바꾸기만 하면 드리슈의 책들은 완전히 타당한 문장들로 가득 차게 된다. 생기론자들은 기계론적 설명이 놓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기계론자들이 설명하지 못했던 현상과 과정의 본성을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p38-39
생기론의 몰락:
생물학의 의미있는 이론으로서의 생기론은 1930년대에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한 몰락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었다.
첫째, 생기론은 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 둘째, 유기체가 생명 없는 물질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실체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점차 신뢰를 잃어갔다. … 셋째, 비물질적인 생기력의 존재를 입증하려던 생기론자들의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 … 넷째, 생기론의 근거로 인용되던 현상들을 설명해줄 새로운 생물학적 개념들(유전학, Darwinism)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p41-42
물리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생기론을 단순히 의사과학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물리주의자들의 저술을 따르기로 한다면, 생기론은 생물학의 발전을 저해했을 뿐이다. 그들에 따르면 생기론은 생명현상을 과학의 영역으로부터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 그러나 … 뮐러는 물리주의자들이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두었던 생명의 양상들을 세심히 포착해냈다. 뮐러가 제시한 설명이 잘못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낸 그의 업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 …
아마도 생기론은 피상적 물리주의가 제시했던 생명에 대한 설명을 넘어섣기 위한 불가피한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Francois Jacob이 정확히 지적했듯, 생기론자들은 생물학을 독자적인 과학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p42-43
새로 발견된 물리학적 원리들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더욱 우스운 것은 1925년 이후 많은 생물학자들이 당시 새로 발견된 물리학의 원리들, 즉 상대성 이론, 보어의 상보성원리, 양자역학,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등이 생명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준다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이 물리학적 원리들 중 어느 것도 생물학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omitted…)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은 생물학에서 나타나는 불확정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p43-44
유기체주의자들
생기론의 몰락은 기계론의 승리가 아닌 유기체주의의 탄생을 야기시켰다.
생기론의 몰락은 기계론의 승리가 아니라 새로운 설명 체계로 귀결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분자 수준의 과정들이 전적으로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될 수 있으나, 그 메커니즘이 상위의 통합과정에서는 대단히 사소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거기서 메커니즘의 역할은 조직된 체계의 창발적 특성들에 의해 보완되거나 대체된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독특한 특성은 구성이 아닌 조직에 기인한다. 이런 식의 사유는 오늘날 통상 ‘유기체주의’라고 불린다. 그것은 도고로 복잡한 질서체계의 특징들과 유기체 내 유전 프로그램의 역사적 성격을 특별히 강조한다. … 스머츠는 유기체에 대한 전일론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이러한 설명은 이후 다른 생물학자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되었다. “전체는 부분들의 합 이상이다. —p45
유기체론자들이 물리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기계론에 대한 것이 아니라 환원론에 대한 것이다.
유기체주의의 두 가지 믿음:
간단히 말해서 유기체주의는 다음 두 가지 믿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유기체를 하나의 전체로 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 그리고 동시에 전체는 분석을 거부하는 신비한 것이 아니며, 적절한 수준을 택함으로써 연구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그것이다. 유기체주의자들은 분석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분석은 의미 있는 정보와 통찰을 산출해주는 최하 수준까지만 한정적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p49
생명의 현저한 특성들
살아 있는 존재에게만 특유한 현상들의 목록:
- 진화된 프로그램: 유기체는 38억 년에 걸친 진화사의 산물이다.
- 화학적 속성들: 살아 있는 유기체의 발달과 기능에 관련되는 분자의 종류들, 즉 핵산, 펩티드, 효소, 호르몬, 세포막의 구성요소들은 죽어 있는 자연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거대분자들이다.
- 제어 메커니즘: 살아 있는 체계는 체계의 변함 없는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여러 가지 제어 및 제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중 되먹임 메커니즘도 그 중의 하나이며, 이런 것들은 죽어 있는 자연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 조직: 살아 있는 유기체는 복잡하며 질서정연한 체계이다.
- 목적론적 체계: 살아 있는 유기체는 적응계이다.
- 제한된 규모: 살아 있는 유기체의 크기는 가장 작은 바이러스로부터 가장 큰 고래나 나무에 이르기까지 각기 중간세계의 일정한 영역을 차지한다.
- 생활사: …
- 열린 체계: 살아 있는 유기체는 끊임없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에너지와 물질을 흡수하고 대사의 최종산물들을 배출한다. 열린 체계이기 때문에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제2장. 과학이란 무엇인가?
근대 과학의 기원
생물학은 자율적 학문인가?
생물학은 국지적이지 않다. 생물학은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띈다:
생명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에만 존재한다. 생명에 관한 법칙과 원리는 지구상에서, 즉 그 존재가 알려진 (모든) 영역에서 타당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나는 적용 가능한 전 영역에 유효한 원칙에 대해 ‘보편적’이라는 이름을 보류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p67
[!memo] 보편성을 유지하기 위해 생물학의 개념들을 확장시키게 될 발견들이 컴퓨터과학의 발전에서 더 야기될 것이라고 믿는다. —AK, 2002
과학의 관심사
과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신학자, 철학자, 시인과 정치가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한다. 세계와 그 속의 모든 것들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신학자와 철학자, 시인과 정치가들에게도 흥미 있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사와 과학자들의 관심사를 구별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p68
과학은 신학과 어떻게 다른가? 초자연적 현상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 그리고 과학의 개방성.
과학자들은 자연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려고 초자연적인 것을 끌어들이지는 않으며, 또한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신적인 계시에 의존하지 않는다. … 과학을 신학과 구분하는 또다른 특징은 과학의 개방성이다.
그러나 과학의 밑바탕에도 일종의 믿음이 깔려있다.
실제로 모든 과학자들은 자연세계의 연구에 우리가 ‘제1원리’라고 부를 수 있는 기본 원칙의 집합을 항상 도입한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이런 공리적 가정의 하나는 인간의 지각과 독립적으로 실재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성의 원리라고 부르거나, 또는 상식적 실재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 - 모두는 아니지만 - 은 이 공리를 믿는다.
둘째, 과학자들은 이 세계가 무질서한 혼돈 속에 있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 짜여 있다고 가정한다. …
세번째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물질세계의 모든 현상들에 역사적이고 인과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p69-71
과학과 철학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스 시대에 철학과 과학은 하나의 학문이었다. 이 둘의 분리는 과학 혁명의 시기에 시작되었다. … 그럼 과학과 철학 사이에 아무런 구분도 없는 것인가? 사실의 추구와 발견은 확실히 과학의 영역이지만 그 외에는 상당한 부분이 서로 겹친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영역을 이론화하고, 일반화하고, 개념틀을 세우는 일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의 부분으로 인정한다. …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철학자들이 이론화와 개념 형성은 철학의 영역이라고 느낀다. 좋건 나쁘건 최근 수십년 동안 이런 노력의 대부분은 과학자들에게 넘어갔다. … 과학철학자들은 이전의 주 관심사 대신 이론과 개념이 형성되는 원리를 밝히는 일에 집중해왔다.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물음에 답하는 작업에서 드러나는 규칙들을 찾으려 한다. —p71-72
과학은 인문학과 어떻게 다른가? E. H. 카의 과학과 역사학 비교를 인용하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 역사학은 유일한 것만을 다루고,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룬다.
- 역사학은 훈계하지 않는다.
- 과학과 달리 역사학은 예측할 수 없다.
- 과학이 객관적인 반면에, 역사학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 과학과 달리 역사학은 종교와 도덕적 주제를 건드린다.
카가 놓친 것은 이런 차이가 오직 물리과학과 기능적인 생물학에만 타당하다는 점이다. … 일단 생물학이 과학의 영역에 들어온 다음에는 ‘과학’과 ‘비과학’ 사이의 분명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p74
인문학자, 정치가:
인문학자가 지구의 인구과잉, 전염병의 확산, 회복할 수 없는 자원 고갈, 해로운 기상 변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농업 수요, 자연서식지의 파괴, 범죄행위의 증가, 교육제도의 실패와 같은 정치적 문제에 직면할 때, 생물학 성과에 대한 무지는 특히 위험하다. 이런 문제들은 과학의 성과, 특히 생물학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정치가들은 무지 속에서 정책을 편다. —p75
과학탐구의 목표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물리과학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과학은 대게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 생물학의 부상, 특히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출현 이후 과학이 얼마만큼 가치를 산출하는지는 불분명할지라도 과학적 발견과 이론이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p77
Paul Feyerabend의 과학 없는 세상이 더 쾌적할 것이라는 주장과 Ernst Mayr의 비판.
Paul Feyerabend는 과감히 과학 없는 세상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 더 쾌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 말에 따른 세상은 공해도 더 적을 것이고, 공해에 기인하는 암도 더 적을 것이고, 인구도 덜 조밀할 것이고, 대중 사회의 해로운 부산물도 더 적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는 또한 유아사망률이 높고, 평균 수명이 고작 35-40 세이며, 여름 더위를 피하고 혹독한 겨울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아무런 방법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해로운 부작용에 대해 불평할 때, (농학과 의학을 포함하는) 과학의 엄청난 효용을 망각하는 것은 너무도 쉽다. —p78
과학의 기여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Karl Popper의 다음 입장과 같다.
과학은 음악과 미술 다음으로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릅답고, 가장 계몽적인 업적이다. 나는 과학을 헐뜯으려고 발버둥치는 소란스러운 현대의 지적 유행을 혐오하며, 무엇보다도 생물학자와 생화학자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의학에 의해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지구 모든 곳에서 유용성을 발휘하게 된 과학의 뛰어난 업적을 찬양한다. —p79
과학과 과학자:
우리는 자주 과학이 이것은 할 수 있고, 저것은 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사실 어떤 것을 할 수 있거나 없는 것은 과학자이다. 최상의 과학자는 헌신적이고, 높은 동기부여를 받으며, 철두철미하게 정직하며 관대하고 협동적이다. 그러나 과학자도 인간일 뿐이며, 항상 이러한 직업적 이상들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과학 외부로부터 야기되는 정치적, 신학적 또는 재정적 고려가 과학적 판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지만, 사실 자주 영향을 미친다. —p79
칼 포퍼가 제안한 과학자 직업윤리.
오류와 비일관성이 과학에 만연한다는 것을 인정한 칼 포퍼는 1981년에 과학자를 위한 직업윤리를 제안했다. 아무런 권위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다. … 두번째로 모든 과학자들은 언제든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류를 찾아내고, 찾아지면 분석하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 오류를 은폐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셋째로 이러한 자아비판도 중요하지만 발견을 도울 수 있고 사람들의 실수를 고쳐 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으로 보충되어야만 한다. …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의 실수에 주의를 환기시켰을 경우, 항상 자신의 실수를 의식해야만 한다. —p80-81
생물학자가 된다는 것.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의학 교육을 통해서, 또는 젋은 자연학자로 성장하며너 생물학자가 되었다. …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명체의 경이로움에 매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매혹은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전 생애동안 간직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험적인 것이든 이론적인 것이든 간에 과학적 발견의 흥분을 결코 잊지 못하며,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통찰, 새로운 유기체를 좇는 애정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생물학의 많은 부분은 우리 자신의 환경과 개인적인 가치에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다. 생물학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한 방식을 선택함을 의미한다. —p82-83
제3장. 과학은 자연세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일반인들의 오해와는 달리 과학 이론들은 매우 견고하고 잘 검증되어 있다.
매일 엄청난 새로운 발견들과 기존 이론에 대한 도전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는 대중매체들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과학은 확실한 것 또는 ‘진리’를 산출하지 못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이다. 과학의 기본 이론들은 대부분 50년 이상 150년간까지 지속된 것들이며, 반복적으로 확증되고 있다. 진화생물학처럼 논란이 많은 분야에서조차 1859년 다윈에 의해 확립된 기본적인 개념틀이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지난 130년간 다윈주의를 공격하려는 수백 건에 달하는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다. 생물학의 다른 분야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p90
간략한 과학철학사
생물학과 같이 역사적 서술에 의존하는 과학의 경우 귀납이 매우 중요하다.
Justus von Liebig는 Francis Bacon의 귀납을 비판했던 최초의 저명한 과학자였다. 그는 어떤 과학자도 베이컨이 Novum Organum에서 말했던 방법을 따른 적이 없으며 따를 수도 없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귀납 자체로서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수 없다. Justus von Liebig의 결정적인 비판에 의해 귀납의 권세는 끝이 났으며, 그때부터 누군가를 귀납주의자(또는 ‘우표수집가’)라고 부르는 것은 폄하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경험주의 비판자들은 대부분 어떠한 과학적 탐구도 그 배경으로서 데이터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비판되어야 할 것은 사실의 수집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들이 이론 구성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역사적 서술에 의존하는 과학(특히 생물학)의 경우에는 귀납이 핵심적인 과학방법이다. —p91
물리학과 달리, 진화생물학의 경우 포퍼의 이론이 적용되기 힘들다.
칼 포퍼는 논리실증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론은 “가혹한 독립적 시험을 거치면 거칠수록 만족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칼 포퍼는 부당한 이론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이론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이론은 반증된다. 그러나 반증도 간단한 것이 아니다. 2+2가 5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특히 생물학 분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확률적 이론의 검사와 관련해서는 부적절하다. 확률적 이론에서의 예외 발생이 필연적으로 반증을 구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진화생물학처럼 관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역사적 서술이 제시되는 그런 분야에서는 부당한 이론을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대단히 어렵다. 하나의 반증이 이론의 포기로 귀결된다는 단언은 물리과학의 보편 법칙에 기반하는 이론들에 대해서는 합당할 수 있으나, 진화생물학의 이론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적절하지 않다. —p93
발견과 정당화
과학의 두 단계: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과학이 두 단계의 과정이라고 합의하는 듯 하다. 첫 단계는 새로운 사실, 불규칙성, 예외, 외견상 모순의 ‘발견’, 그리고 그것들을 설명하는 추측, 가설, 이론의 형성을 포함한다. 두 번째 단계는 ‘정당화’의 과정으로서 이론들이 검사되고 타당성을 입증받는 절차이다. —p95
이론형성의 내적/외적 요인들. 외적 요인은 이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 하다.
어떤 과학자도 진공 속에 있지 않다. 지적, 정신적, 경제사회적, 과학적 환경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 지성사가들은 내적 요인들 - 즉 과학 내의 발전들 - 을 새로운 이론이나 개념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주장하곤 한다. 반면 사회사가들은 외적 요인들, 즉 사회경제적 환경이라는 요인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평가하건대 사화학자들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다윈과 월래스가 전혀 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진화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외적 요인들이 무관함을 방증해준다. 사실 나는 특정한 생물학이론의 발달에서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실제적인 증거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와 반대의 사태는 존재한다. 과학이론 또는 사이비 과학이론은 종종 적치적 행동가들에 의해 특별한 의제를 전파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곤 한다. —p96,97|
생물학에서는 이론의 예측가능성 보다는 유용성이 더 중요하다.
물리학자처럼 생물학자들도 예측을 시험하며 예외를 찾는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예측이 실패하더라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물학적 규칙성이 물리법칙의 보편성을 거의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이론을 시험하는 데에서 예측이 갖는 유용성은 대단히 가변적이다. 기능생물학 분야의 이론들은 높은 예측력을 갖지만, 다른 이론들은 너무 복잡한 요인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생물학에서의 예측은 기껏해야 확률적인 것이다. 거기에는 생명현상의 엄청난 가변성과 사건과정에 개재되는 요인들의 우연성과 다양성들이 영향을 미친다. 생물학자에게는 이론이 예측의 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문제풀이에서의 유용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 —p98
현장 생물학자
생물학에서의 설명의 다섯단계
우연, 다원성, 역사, 유일성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학에서는(제4장 참조), 이론구성과 시험의 유연한 체계가 엄격한 원리보다 훨씬 더 적합하다. 그러한 체계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 과학자들은 교란되지 않은 자연 자체 또는 특별히 설계된 실험을 ‘관찰’한다. 그 중 일부는 현재의 이론에 의해 설명되지 않거나 일반적인 관점과 상충한다.
- 이 관찰들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어떻게?”와 “왜?”라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연구자들은 임시적인 ‘추측’ 또는 작업가설을 만든다.
- 그 추측이 옳은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그것을 엄격한 ‘시험’에 부친다. 그를 통해 이론이 타당할 확률이 증가되거나 감소한다. 시험은 추가적인 관찰로 이루어지는데, 일반적으로 잘 구성된 실험 등과 같은 다른 전략이나 경로를 사용한다.
- 궁극적으로 채택되는 ‘설명’은 시험과정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추측이다. —p101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상식적 실재론(naive realism)자들이다.
현장과학자들이 자주 만나는 세 가지 언어문제.
현장과학자들이 자주 만나는 세 가지 언어문제가 있다. 첫째, 용어의 의미는 우리 지식이 성장함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 거의 모든 과학 용어가 약간씩 변화를 겪기 때문에 사소한 의미변화에 대해서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는 것은 혼란을 부추길 뿐이다. … 두 번째 문제는 어떤 용어들이 부지불식간에 원래의 것과 전혀 다른 현상이나 과정을 지칭하게 되는 경우이다. … 가장 빈번하며 혼란스러운 문제는 여러 가지 다른 현상들에 대해서 하나의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p104
사실, 이론, 법칙, 개념의 정의
생물학의 경우 가설과 이론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철학자들은 가설과 이론을 엄밀히 구분하는데, 나로서는 이론에 대한 그런 식의 정의를 의식한 적이 없다. 특히 생명과학의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현장이나 실험실에 있는 과학자들은 철학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그들의 용어를 엄밀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과학자에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는 “방금 새로운 이론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자는 그것이 가설 또는 추측이라고 말한다. —p106
사실과 이론:
건전한(sound?) 이론이라면 사실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론과 사실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보편적으로 지지받으며 반복적으로 검증된 이론은 언제 사실로 여겨지게 되는가? … 엄격히 말하자면 이론이 사실로 변할 수는 없다. 이론이 사실에 의해 대체될 뿐이다.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에서 불규칙성이 발견되었을 때 아홉번째 행성이 있다는 이론이 제안되었고 그 후 실제로 명왕성이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명왕성의 존재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고 사실이 되었다. … 1895년에 종의 가변성과 공통조상에 관한 다윈의 제안은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후 그 ‘이론’을 지지하는 풍부한 증거가 제시되고 반대증거가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생물학자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실은 반복적으로 확증되고 논박되지 않은 경험 명제(이론)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사실로 전환되지 않은 이론들도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특히 미시적이며 생화학적인 영역과 같이 감각기관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없는 분야, 그리고 (우주론이나 진화생물학와 같은)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하여 역사적 서술을 구성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p107
생물학에서의 법칙이란:
‘법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관찰적 확증이나 반증에 직/간접적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설명과 예측에서 사용할 수 있는 논리적 일반명제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한 ‘법칙들’은 과학적 분석이나 설명의 기본요소다. 만약 우리가 ‘법칙’ 개념을 생물학의 규칙성이나 일반화들에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 수정한다면, 법칙이 이론구성에서 갖는 효용성은 오히려 떨어질 것이다. 나름의 법칙에 근거하는 확률적 이론들은 ‘법칙’이라는 말로부터 기대되는 확실성을 갖고 있지 않다. —p109
제4장. 생물학은 생명세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보편 법칙의 한계와 역사 서술적 접근의 타당성.
생물학의 인과관계
어떠한 생물학적 현상도 두 가지 원인(근접 원인, 궁극 원인)을 갖는다.
유기체의 각 현상과 과정들은 근접(기능적인) 원인과 궁극(진화적인) 원인이라 불리는 두 분리된 원인의 결과이다. … 근접 원인과 궁극 원인을 주어진 생물학적 현상들에 대한 설명으로서 함께 제공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예를 들면 성의 분화에 대한 설명을 위해 근접한 생리학적 설명(호르몬, 성조절 유전자)과 진화적 설명(성선택, 방해하는 육식동물의 양상들)을 모두 제시할 수 있다. 생물학의 역사에서 일어난 많은 유명한 논쟁들은 한쪽에서는 근접원인만을 고려하고, 다른 쪽에서는 진화적 원인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생명세계의 특수한 성격들 중 하나는 생명세계가 이러한 두 종류의 원인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생명계에는 한 종류의 원인만 있다 - 그것은 자연 법칙(종종 무작위적 과정과 결합되는)에 의해 제공된다. —p117
[!memo] See also Tinbergens four questions —ak
생물학의 다원주의.
대부분의 끈질긴 논쟁은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임으로써 종식된다.
생물학적 고전적 논쟁 대부분에서 대립하는 입장들은 두 논쟁적 관점들에 대해 제3의 대안을 고려하는 일을 게을리했다. 예를 들면 물리주의자들은 생물학적 현상들을 제한된 비생명계로 환원해 설명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항하는 생기론적 입장도 마찬가지 결함을 갖고 있었다. 유기체론은 두 관점의 최상을 결합해 마침내 지배적 관점으로 자리잡은 제3의 관점이다(제1장 참조). 자연선택은 우연과 필연 사이의 논쟁에서 논쟁을 종결짓는 제3의 해결책으로 출현했다. 그리고 전성설 대 후성설의 오랜 논쟁은 유전 프로그램으로 해결되었다. 대부분의 끈질긴 논쟁은 두 가지 선행하는 설명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종식되었다. —p119
인지적 진화 인식론
인지적 진화 인식론:
인지적 진화 인식론은 인간이 다윈적 선택과정을 통해 진화한 뇌 속의 어떤 ‘구조들’로 외부세계의 현실을 처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뇌의 구조들이 없었다면 자신들의 세계를 다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p123
세계를 인식하는데 고도로 특화된 두뇌 구조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세계를 지각하고 이해하는 데 고도로 특화된 두뇌 구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중추신경계의 진화적 개선이 필연적으로 고도로 특화된 신경구조를 이루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두뇌구조의 전반적인 개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듯하다. 그 결과 두뇌는 원시인들이 직면한 현실적 도전들에 대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두뇌의 개선들이 선택되었을 때는 필요 없던 체스 게임에 쓰이는 능력들도 지니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인지적 진화 인식론은 전혀 혁명적일 것이없고 다윈적인 진화론을 신경학과 인식론에 적용하며 얻어진 자연스런 성과로 보인다. —p129
확실성의 탐구
경쟁하는 두 이론이 있으면 더 유용한 이론을 택하라.
두 이론간에 경쟁이 있을 경우, 그리고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진실인지 명백히 확립되지 않을 경우 Larry Laudan은 문제해결에 더 성공적인 이론, 즉 가장 많은 문제를 해결한 이론을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 —p130
설명의 진리성은 종종 취약하다.
그러나 설명들의 진리성은 종종 취약하다. 새들이 자연선택의 도움으로 깃털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게 참인 명제이다. 그러나 먼 과거에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처럼 아마도 그 사실은 결코 명백하게 확립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증명 불가능한 명제이다. 왜’ 깃털이 선택적 우위를 갖는지는 더욱더 증명하기 어렵다. 깃털은 온혈 척추동물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생겼는가? 아니면 과도한 태양광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나? —p131
제5장. 과학은 진보하는가?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
“이 세계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왜 그것은 지금과 같은 구조를 지녔을까?” 같은 우리가 결코 대답할 수 없을 물음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
저자는 과학이 진보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과학철학의 논의 속에서 과학적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폭넓은 이의 제기를 발견할 수 있다. 키처는 과학적 진보에 대한 이런 관념을 전설이라고 부른다. … 내가 제일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과학의 발달상은 전설과 아주 잘 부합한다고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136-137
세포생물학의 과학적 진보
과학은 과학혁명을 통해 진보하는가?
생물학의 발전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제시한 형태를 따르지 않는다.
비룩 우리가 이것을 과학 혁명이라 칭한다 해도, 그것은 토머스 쿤이 서술한 방식으로는 진행되지 않았다. 즉 한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일시에 대체되는 일은 없었다. 두 체계, 즉 헤니히의 배열체계(분지론)와 전통적인 다윈식의 방법론(진화적 분류)은 나란히 공존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방법론에서뿐만 아니라 그 목표에서도 서로 달랐다. … 이상의 두 접근방식은 목표하는 바가 서로 전혀 달랐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란히 공존할 수 있었다. —p157
진화생물학의 진보 역시 마찬가지.
1895년에 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진정한 과학 혁명을 초래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 하지만 그것이 과학혁명에 관해 토머스 쿤이 서술했던 모든 특성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다윈의 혁명에 대한 분석이 난관에 부딪히게 된 이유는 그의 패러다임이 사실상 중요한 것만 꼽더라도 적어도 다섯 이론의 묶음(제9장 참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있다. —p158, 159
아마도 20세기에 생물학에서 일어난 가장 혁명적인 발달은 분자생물학의 대두일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전문 분야가 생겨났고, 새로운 과학자들과 새로운 문제들, 새로운 실험적 방법, 새로운 전문학술지, 새로운 교과서, 그리고 새로운 문화 영웅들을 낳았다. 하지만 개념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이 새로운 영역은 1953년 이전에 유전학에서 일어난 발달과 연속선상에 있다. 즉 그 이전의 과학이 거부되는 동안에는 거기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서로 공약불가능한(Incommensurability) 패러다임들이란 없었다. —p161,162
과학의 진보는 다윈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인식적 내용이 걸린 한 문제에 대한 경쟁과 자연선택의 유사성:
인식적 내용이 걸린 한 문제를 놓고 여러 추측과 가설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은 정말로 자연선택의 상황과 많이 흡사하다. 그런 경쟁안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 적어도 잠정적인 - 승리를 선언하게 된다. 피상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과학이론들의 역사적 진보과정이 다윈이 말하는 진화적 변척과정과 강한 유사성을 띤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자세히 분석해보면, 지식의 변천과 진짜 진화적 변화 사이에는 여러 가지에서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이론들의 다양한 변이는 유전적 변이에서처럼 우연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론들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사유활동에 의해 생겨난다. 이것은 옳은 지적이긴 하지만 그다지 무게 있는 논변은 아니다. 변이의 원천은 다윈적 과정에서 별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윈은 그 이후로 반박된 것으로 간주되어온 용불용에 의한 이른바 라마르크적 과정의 개념을 수용했고, 또 환경에 의한 영향을 새로운 변이의 직접적 원천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1940년대의 종합 이론에서조차 변이의 원인으로 돌연변이, 재조합, 편향된 변이, 수평적 전달, 그리고 잡종 등 여러 요소들이 인정되었다. 그러므로 변이가 우연의 산물이냐 아니냐 하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p167
과학의 한계
“왜”라는 물음.
‘무엇’과 ‘어떻게’가 걸린 대부분의 물음들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과학적 해명의 접근이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왜’라는 물음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즉 많은 ‘왜’ 물음, 특히 그 가운데서도 분자의 기본적인 성격에 관한 물음은 대답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다. … 이상의 물음들 가운데 일부는 아마도 화학과 양자역학, 그리고 분자생물학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또다른 궁극적 물음들이 존재한다. 특히 가치에 관한 물음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 물음들 가운데는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묻곤하는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이 세계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주가 시작되기 전, 그때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런 물음들은 끝도 없이 많고, 이것들은 하나같이 과학의 영역 바깥쪽에 속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p176|
과학의 미래에 관한 물음
때로는 과학의 미래에 관한 물음이 던져지기도 한다. 지식을 갈망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과학에 기반한 기술문명이 이룩한 고도의 성공에 주목한다면, 과학이 지난 250년간의 발자취와 마찬가지로 번영과 진보를 계속하리라는 것에 의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베네바 부시가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진정 과학은 끝없는 미개척지이다. —p176
제6장. 생명과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생물학의 범위
현대 생물학은 놀랄 만큼 다양한 과학이다. 생물학이 바이러스, 박테리아로부터 균류와 동/식물에 이르는 엄청나게 많은 유기체를 다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물학은 거대 유기분자와 유전자에서부터 세포, 조직, 기관과 전체 유기체라는 위계는 물론 생물 사이의 상호작용과 조직화로 구성되는 계, 문, 강, 목, 과, 속, 종 등의 단계까지 다룬다. 활동과 조직화의 각 단계는 저마다 별도의 명칭을 가진 전문 영역이다. 몇 개만 언급하자면 세포학, 해부학, 유전학, 계통분류학, 동물행동학, 또는 생태학 등이다. 게다가 생물학은 실용성이 광범위하다. 의학, 공중위생농업, 임업, 동식물 배양, 해충 방제, 어업, 생물해양학 등과 같은 분야가 생물학의 응용으로 생겨났거나 적어도 생물학과 연관을 갖는다. —p179|
생물학에서 비교의 방법과 실험적 방법
생물학을 구축하려는 새로운 시도들
‘무엇’이라는 물음.
확고한 사실적 근거, 즉 이론이 근거하는 관찰과 발견의 기록이 먼저 확립되지 않으면 어떤 과학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술은 어느 과학적 분과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
다양성에 대한 연구가 첫 단계에서 어김없이 요구하는 것은 정확하고 포괄적인 서술이다. 특히 이것은 분류학(고생물학과 기생충학을 포함), 생물지리학, 개체생태학, 비교생물학(비교생화학을 포함)의 모든 영역에 대해 진리이다. 이런 서술적 토대는 진화생물학의 다양한 하위분과들을 특징짓는 일반화를 이끄는 대비를 허용한다. 과학자들이 서술을 넘지 못할 때 비판을 가하는 것은 정당하다. 과학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설익은 사실적 자료에서 끌어낸 일반화와 이론이다. —p186-188
‘어떻게’라는 물음.
‘어떻게’는 물리과학에서 가장 흔한 물음이며, 그것이 위대한 자연법칙의 발견을 이끌었다. 19세기 초까지는 생물학에서도 이 질문이 지배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주도적 분야인 생리학과 발생학에서 물리주의 사고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분야는 거의 전적으로 근접 원인을 연구하는 것이다. 물론 ‘왜’라는 물음도 제기되었지만 당시 서구세계의 지배 이념인 크리스트교 때문에 그런 물음들은 불가피하게 쉬운 대답을 내놓았다. 즉 신이 창조하시고(창조론), 신이 법칙을 만드셨으며(물리주의), 설계하셨다는(자연신학) 것이다. —p189
‘왜’라는 물음.
‘왜’라는 물음은 역사적이고 진화적인 요소들을 다룬다. 그것들은 과거에 존재했거나 지금 존재하고 있는 모든 유기체의 측면들을 설명한다. 왜 벌새는 신대륙에 한정되어 있는가? 왜 사막 동물은 항상 주변 토양과 같은 색깔을 지니는가? … 흔히 적응이나 유기체적 다양성과 관련된 이런 물음들은 전통적으로 궁극 원인을 탐색하려는 시도로 언급되었다. ‘왜’라는 물음은 진화론이 제기되기까지, 상술하자면 다윈이 자연선택이라는 변화에 필요한 구체적 메커니즘을 제시했던 1895년 전에는 과학적 물음이 되지 못했다. —p189, 190
생물학 내부의 권력이동
다양화된 과학, 생물학
제7장. ‘무엇?‘의 문제: 생물다양성 연구
분류학과 계통분류학:
생물다양성을 연구하는 일이 단순히 생물종들의 차이를 구별하고, 또 그런 차이점들을 서술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깊이 깨달았던 Gaylord Simpson은 분류학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생물종의 구분 작업에만 국한해서 사용하고 “생물종의 다양성과 그 속에 포함되는 일부 또는 모든 생물종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분과를 별도로 계통분류학이라는 용어로 부를 것을 주창했다. 계통분류학은 곧 생물다양성에 대한 연구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확장된 개념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 계통분류학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생명세계의 다양성을 서술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으며, 그런 생물다양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p204, 205
생물학에서 분류의 의미
생물학의 분류 체계:
모든 분류 시스템들은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갖는데, 그 하나는 정보의 검색이 용이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비교 연구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분류는 어떤 분야에서든지 정보 저장 시스템의 열쇠이다. 생물학에서 이 정보저장 시스템은 박물관의 수장품들과 단행본, 학술잡지, 기타 여러 발간물들을 포함하는 엄청난 규모의 과학문헌들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어떤 분류 방법의 우수성 여부는 비교적 균등하게 항목들을 나누고 그런 항목들의 칸에 얼마나 빨리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분류 시스템이라는 것은 자가발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
생물을 분류하고자 할 때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거나 상점에서 상품들을 분류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의 일상활동에 적용되는 간단한 기본원칙들을 적용할 수 있다.
- 분류하고자 하는 대상들을 다 합쳐서 최대한 균등하게 분류항목을 작성한다.
- 분류하고자 하는 각각의 대상물을 그것과 공통되는 분류형질을 가장 많이 갖는 구성원들이 포함된 분류항목에 포함시킨다.
- 이렇게 처음에 만들어진 분류항목에 집어넣기에는 너무나 차이점이 많은 대상물은 별도의 새로운 분류항목을 만들어서 거기에 포함시킨다.
- 각 분류항목들 사이의 차이를 살펴서 그 차이의 정도에 맞추어 큰 분류체계 속에서 분류항목들을 재배열한다.
… 이런 분류의 규칙들은 생물들을 분류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다만 몇 가지 규칙이 더 첨가된다. —p205-207
생물학에서 분류학이 담당하는 역할:
생물학에서 분류학이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의 다양성을 서술하는 유일한 과학이다.
- 생물들의 유연관계, 즉 계통발생도를 재정립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한다.
- 무수히 많은 흥미로운 진화현상들을 알려줄 수 있으며, 그런 정보를 다른 생물학 분과에 제공함으로써 인과관계의 규명에 기여한다.
- 생물학의 일부 분과들(예를들어 생물지리학, 층서학)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한다.
- 대부분의 생물학 분과들, 예를 들어 진화생화학, 면역학, 생태학, 유전학, 동물행동학, 지질사학 등에서 중요한 자가발견과 해설적 가치를 지니는 규칙체계 또는 분류체계를 제공한다.
- 이 학문의 가장 선봉에 서 있는 계통분류학을 통해서 개체군 사고(제8장 참조)와 같은 중요한 개념들을 발견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미시 분류학과 거시 분류학:
분류학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과정을 통해서 자연계의 무한한 다양성에 질서와 규칙을 부여한다. 그 첫 번째는 생물종을 구별하는 과정으로서 보통 ‘미시분류학’으로 불린다. 두 번째는 이렇게 분류된 생물종들을 적당한 분류항목에 배치하는 과정인데 이 단계를 ‘거시분류학’이라고 부른다. 계통분류학이란 당연히 이 두 가지 과정의 합이며, Gaylord Simpson은 이 학문을 가리켜 “생물의 종류를 구별해서 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이론과 실제를 연구하는 생물학 분과”라고 정의했다. —p208
미시분류학: 생물종들의 구분짓기
생물학적 종의 세 가지 의미.
거시분류학: 생물종의 분류
하향식 분류법과 상향식 분류법.
다윈식 분류법.
종의 기원의 찬연한 제13장에서 다윈은 완전한 생물 분류법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모든 분류학상의 불확실성을 일거에 잠재워버렸는데, 그 두 가지 기준이란 계보(공통 조상을 갖는지의 여부)와 유사성의 정도(진화적 변화의 양)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 근거하는 분류법을 진화적 분류법, 또는 다윈식 분류법이다고 부른다. —p223
정보의 저장과 검색
이름 붙이기
상위 분류군들에 주어지는 이름들은 정보 검색의 목적에서 요긴한 표식이 되는데 딱정벌레목이나 제비나비과 등과 같은 명칭들은 전 세계 모든 동물학자들에게 동일한 의미로서 전달되어 최대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
분류학자들의 의사소통 목적은 1985년에 제정된 “국제 동물명명규약 전문’에 잘 반영되어 있다. … 동식물의 학명은 속명과 종명으로 구성된다(린네의 이명법). 예를 들어 사람은 호모(Home 속) 사피엔스(Sapiens 형용명)이다. 생물의 과학적 명칭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언어는 라틴어로서 중세 이후 과학자들의 공용어였다. —p236,237
생물 시스템
제8장. ‘어떻게?‘의 문제: 새로운 개체의 탄생
발달생물학의 시작
발달생물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Aristoteles는 암것됨과 수컷됨의 본성에 대하여, 생식기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태생과 난생의 구분에 대하여, 각기 다른 동물종에서의 교잡방식에 대하여, 정액의 기원과 특성에 대하여, 기타 생식과 발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관점들에 대해서 논의함으로써 생식생물학을 확립했다. …
둥물발생학 분야의 이 위대한 개척자가 그처럼 광범위한 비교 관찰에 근거하고 또 그처럼 탁월한 판단을 통해서 19세기에 이를 때까지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수준의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은 거의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p246-247
세포론의 영향
후성설과 전성설:
분자생물학이 접합자(수정란) 속에 들어있는 DNA라는 유전 프로그램이 바로 정수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발생에 관련된 최후의 수수께끼를 해결했다. … 이 논쟁에서의 궁극적인 해답은 어떤 점에서는 후성설과 전성설의 종합으로 귀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발생의 과정, 즉 표현형의 ㄱ화는 후성적이다. 그렇지만 발생 그 자체는 표현형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프로그램이 이미 접합자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역시 전성적이기도 하다. …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된 논쟁의 궁극적인 해답이 대립했던 두 진영의 요소들을 통합해서 마침내 귀결될 수 있었다는 사례는 사실상 생물학 분야에서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모든 논쟁자들은 마치 속담에서 이야기하는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의 꼴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p253-254
발달유전학
발달생물학과 진화생물학
흔적기관이 존재하는 이유.
모든 생물개체는 하나의 총체적 시스템이며 다소간 선택에 반응하는 발달 시스템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는 발달주의자들을 오랫동안 당혹케 했던 두 가지 진화적 현상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그 첫번째는 흔적기관의 존재이다. 대부분의 유전자들과 유전자 집합체는 한 가지 영향만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영향을 동시에 미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런 유전자 집합체들이 작용함으로써 어떤 표현형상의 변화가 초래되었다고 할 때 - 예를 들어서 흔적기관의 존재가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설령 그런 구조적 변화가 더 이상 자연선택에 의해 선호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흔적기관들의 형성에 관여했던 제어유전자들이 여전히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한 그 불필요한 흔적기관들은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p273-274
발생반복론의 재평가.
발생반복론을 평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구분해야만 한다.
- 개체발생의 단계가 때로는 과거 선조들의 유형과 닮았는가? 다시 말해서, ‘발생반복’은 진정으로 나타나는가?
-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렇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답변에 대신할 수 있다. 도대체 왜 포유동물들은 아가미궁 단계를 거치는 대신 직접 목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표현형의 발현이 유전자들에 의해서 엄격하게, 배타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 분화하는 세포들과 구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조절되기 때문이다. 개체발생의 어느 단계에서든지 그 다음의 발생과적은 유전자형이 지니는 유전 프로그램과 그 단계에서 배아를 구성하고 있는 ‘신체 프로그램’의 두 가지 모두에 의해서 제어된다. —p275
단속평형론에 대해.
내가 1954년에 제안했던 모델에 의하면, 진화는 널리 분포하는 개체수가 많은 생물종에서는 천천히 진행되는 반면, 널리 흩어져 있는 소수의 창시자 개체군에서는 대단히 빠르게 진행된다. … 1972년에 Niles Eldredge와 Stephen Jay Gould는 단속평형론이라는 구절을 사용하여 나의 모델을 받아들이면서 많은 개체수의 생물종에서는 그런 안정 상태가 수백만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그렇지만 그 모델은 왜 어떤 생물종의 유전자형은 대단히 안정되어 있는 반면 다른 생물종에서는 진화적 변화가 그렇게 빨리 진행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차이점은 심지어 현재까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p276-277
제9장. ‘왜?‘의 문제: 유기체들의 진화
’진화’의 다양한 의미들
다윈의 진화론
진화는 자명한 사실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동물들이 시간에 따라 진화한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 후 수십 년간 생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지지해주는, 전혀 모순이 없는 풍부한 증거를 찾고 발견했다. 다윈 이래 125년이 넘는 동안 발견된 증거들은 너무나 압도적이라 생물학자들은 진화를 더 이상 이론이라 하지 않고 자명한 사실 -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 혹은 지구는 둥글다는 것만큼이다 잘 확립된 - 로 생각한다. … 진화를 자명한 사실로 인정한 진화론자들은 더 이상 증거를 찾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이들이 지난 130년간 축적된 진화를 옹호하는 강력한 증거들을 모아보려고 애쓰게 되는 때는 단지 창조론자들을 논박할 때 뿐이다. —p287
다윈의 공통유래 이론
다윈의 이론에서 새로웠던 부분.
다윈의 이론이 새로웠던 점은 그가 18세기에 그토록 널리 지지되었던 자연의 계단(scala naturae)의 단선적인 것과 대비되는 다양한 가지를 갖는 계통수를 제안한 점이다. —p289
인간의 지위가 몰락하다.
아마도 공통유레 이론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인간 위치의 변화였을 것이다.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공히 인간은 나머지 생명체와는 동떨어진 피조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의 철학은 아무리 여러 면에서 다르더라도 이 점에서는 일치한다. … 그러나 헤켈, 헉슬리, 그리고 다윈 자신이 인간은 원숭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이 분명하다고 결정적으로 증명해서 인간을 동물계의 계통수에 놓게 된다. 이것은 성서와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던 인간중심적 전통을 실질적으로 끝내버렸다. —p291-292
다윈의 종증가 이론
다윈의 점진주의 이론
다윈의 자연선택론
자연선택의 경쟁이론들:
공통조상으로부터 종이 점진적으로 진화한다는 다윈의 종합적 이론은 이후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많은 경쟁적 이론들이 진화적 변화에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을 찾으려 애썼다. 약 80년간 각 이론의 옹호자들은 서로 논쟁을 통해 모든 반다윈적 설명을 철저히 반박했고 마침내는 진화적 종합을 통해 다윈의 이론만이 고려할만한 진지한 이론으로 남게 되었다. —p297
획득형질의 유전은 불가능:
라마르크주의 이론은 유전학자들이 표현형에서 새로이 획득한 형질들은 다음 세대에 전달될 수 없으므로 획득형질의 유전(‘가변성 유전’)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을 때 후원을 잃었다. 20세기에 가변성 유전이론은 분자생물학자들의 발견으로 최종적으로 사망선고를 받는다. 분자생물학은 단백질(표현형) 안에 포함된 정보가 핵산(유전자형)에 전달될 수 없음을 입증했다. 분자생물학의 소위 중심적 도그마가 라마르크주의의 마지막 신뢰를 앗아간 것이다. 물론 확증이 필요한 이야기지만 어떤 극소유기체가 외부 조건에 부응하여 돌변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유전자형의 DNA가 표현형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복잡한 유기체에 대해서는 결코 적용될 수 없다. —p298
다윈의 이론은 다섯가지 사실과 세가지 추론에 기초한다.
다윈의 이론은 다섯가지 사실과 세가지 추론에 기초한다. 최초의 세가지 사실은 개체군들의 실질적인 기하급수적 증가, 관찰된 개체군들의 안정상태에서의 안정도, 그리고 한정된 자원이다. 이로부터 개체들간에 경쟁(생존경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추론이 나온다. 나머지 두 사실은 모든 개체의 유전적 단일성과 많은 개체변이들의 유전 가능성은 차별적 생존(자연선택)이라는 두 번째 추론과 많은 세대를 통해 이 과정이 진행되어 진화를 야기하게 된다는 세번째 추론이다. —p301
성선택:
생존에 유리한 형질로는 불리한 기후조건에 대한 인내력, 양식의 효율적 활용 … 등이 있다. 그러나 생존만으로는 개체의 다음 세대에 대한 유전적 기여를 보장할 수 없다. 진화적 측면에서도 개체는 더 나은 생존 특성들이 아닌 풍부한 번식력으로 더 성공적일 수 있다. 다윈은 개체가 생식적 특성들로 유리하게 되는 과정을 성선택이라 불렀다. —p303
진화적 종합과 그 이후
진화는 진보인가?
최근의 논쟁들
유전자를 선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부분의 유전학자들은 계산의 편의를 위해 유전자를 선택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진화를 유전자 빈도의 변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자연 학자들은 선택의 원칙적 대상이 되는 것은 전체로서의 개체이며 진화는 적응적 변화의 다양성의 기원이라는 두 과정이라고 변함없이 주장해왔다. 어떤 유전자도 직접적으로 선택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완전한 유전자형을 이루어 그렇게 되므로, 그리고 한 유전자는 다양한 유전자형 속에서 다양한 선택적 가치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유전자를 선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상당히 부적절하다. —p315
[!memo] 에른스트 마이어는 2세대 학자. William Hamilton, George Williams, John Maynard Smith, Robert Trivers 등이 유전자 혁명을 주도할 때 아마도 연구를 그만 둔 상태였을 것. —AK, 2002
사회생물학에 대해:
에드워드 윌슨의 작업은 두 가지 이유로 매우 논쟁적이었다. 첫째로 그는 인간행동을 그의 작업 속에 포함시켰으며 동물에서 발견했던 것들을 자주 인간종에 적용시켰다. 다른 이유는 그와 루즈가 ‘생물학적 기초’라는 구절을 다소 애매한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윌슨에게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는 유전적 경향이 행동의 표현형에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정치적 동기를 가진 그의 반대자들에게 생물학적 기초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p318
사회생물학에 대한 대부분의 공격은 인간에 대한 적용을 문제삼는다. 루즈의 책에서 3분의 2에 달하는 많은 쪽이 동물 행동과 비례하는 인간 행동에 바쳐져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생물학이 논쟁적 위치를 점하는 커다란 이유이며, 왜 윌슨과 루즈가 사회생물학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활동적인 학자들이 자신들의 작업에 사회생물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들은 자신을 사회생물학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p319-320
진화적으로 중요한 분자생물학적 발견.
가장 커다란 진화적 중요성을 갖는 분자적 발견은 다음과 같다.
- 유전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써 새 유기체를 만드는 재료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표현형을 만드는 청사진(정보)일 뿐이다.
- 핵산에서 단백질로 가는 경로는 일방통행이다. 단백질이 얻을지도 모르는 정보는 핵산으로 되돌려지지 않는다. 즉 가변성 유전은 없다.
- 유전부호만이 아니라 사실상 대부분의 기본적인 분자 활동의 메커니즘은 가장 원시적인 원핵생물에서 고등동물까지 모든 유기체에서 동일하다. —p320
진화생물학에서 철저한 일반화란 위험하다.
다윈주의로부터 배워야할 첫번째 교훈은 진화생물학에서 철저한 일반화는 거의 틀리는 수가 많다는 점이다. 어떤 일이 ‘흔히’ 일어난다는 것이 그 일이 언제나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p322
제10장. 생태학이 묻는 물음은 어떤 것들인가?
생태학의 약사
개체생태학
종생태학
군집생태학
고생태학
생태학의 논란들
제11장. 진화에서 인류의 자리
린네는 인간속에 침팬지를 포함시켰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과감한 몇몇 학자들이 인간과 원숭이의 유사성에 대해 주목했는데 린네는 인간속에 침팬지를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p355
인간과 원숭이의 관계
인간으로
일반적인 인간 뇌 진화 이론에 대한 비판. 직립보행, 도구사용 등은 뇌의 진화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문화의 진화
우생학의 기원: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골턴은 적절한 선택을 통해서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앞으로 그렇게 해야할 것이라고 처음 제안했다. 골턴은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급진파에서 보수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우생학이 인류를 더욱 완벽한 존재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쉽게 지지했다. 이 순수한 원래 목적이 결국에는 인류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 중 가장 흉악한 범죄로 이어진 것은 슬픈 아이러니이다. —p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