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주의: 극단적 부에 반대하기
개인이 특정 규모 이상의 부를 가지는건 부도덕하며 특정 규모를 초과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막아야한다는 주장인 제한주의를 설명하는 책이다.
도입 Introduction
2022년 기준 일론 머스크의 재산은 $219B. 이는 20살부터 65살까지 주 50시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며 시간 당 $1.8M(약 25억원)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 2020년 포브스 기준 $1B 이상을 가진 사람이 2668명. $1M 이상 자산가를 포함하면 더욱 많아짐.
2012년, 저자는 철학, 경제학, 사회학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극빈이 아니라 극부가 야기하는 문제를 살펴보기 시작, 정치경제 측면 뿐 아니라 도덕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음을 확신하게 됨. 개인의 최대 자산에 상한을 두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으며 이를 제한주의limitarianism라 명명.
다만, 제한주의는 만능의 해결책이 아니며, 규제에 대한 이상향regulartive ideal을 제시하는 개념에 가까움. 이상향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이론과 수단를 제안할 것. 실질적 측면에서는 세 가지(구조적/회계적/윤리적) 실천을 제안할 것.
(보편기본소득이 하한을 끌어올리는 개념이라면, 제한주의는 상한을 끌어내리는 개념인걸로 이해했다. 상한과 하한이 딱 만나면 모두가 동일한 부를 소유하는 디스토피아가 되겠으나, 상하한의 간극을 지금보다 좁혀야한다는 개념에는 동의. —ak)
1장. 얼마나 많아야 너무 많은걸까? How much is too much?
불평등의 증가는 두 현상에서 기인. 하나는 빈자가 더 가난해지는 것, 다른 하나는 부자가 더 부유해지는 것. 빈자의 증가는 상대적으로 대중의 눈에 띄는 편이지만 부자의 증가는 대중에게 좀처럼 드러나지 않음. 지난 수십년 간 불평등이 증가했음에도 체감이 덜한 이유는 부자가 늘었기 때문.
2013년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따르면 2차대전 직후 빈부격차가 줄었으나 1970년대 이후 다시 늘기 시작. Oxfam 2023에 따르면 2020-2022년 사이 세계 기준 상위 1%가 번 부가 나머지 99%가 번 부를 모두 합친 것의 두 배 규모.
여러 국가의 연구, 시민단체 조사 등에 따르면 부자와 슈퍼부자를 구분하는 대중적으로 합의 가능한 기준이 존재(네덜란드 €1M, 미국 $5M 등 각 국가마다 차이는 있음). 구체적 숫자기 얼마인지보다는, 대중들이 이 둘을 일관되게 구분하는 게 가능했는 점이 중요.
더 이상 돈이 더 생겨도 개인의 삶의 질에 의미있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 지점 정도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음. 국가의 사회 안전망 및 공공 서비스가 발전할수록 개인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돈을 많이 축적할 필요가 줄어들테니 이 기준점은 사회마다 다를 것.
제한주의는 세가지 한계선을 제안.
- 부자선riches line: 부자와 슈퍼부자를 나누는 지점
- 윤리적 한계선ethical limit: 이 이상을 가지면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볼만한 지점
- 정치적 한계선political limit: 이 이상을 가지지 못하도록 국가가 제한해야하는 지점
위 세가지 한계선은 사회마다 달라질 수 있음. 다시 강조하지만 제한주의의 핵심은 각 기준에 대한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는 게 아니고, 지나친 부의 편중이 없는 편이 세상 모두에게 더 이로운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 있음.
2장. 부의 편중은 빈자를 계속 가난하게 두면서도 불평등을 더 키운다 It’s keeping the poor in poverty while inequality grows
2023 Oxfam에 따르면, 2012-2021 사이에 만들어진 부의 대부분은 상위 1%에게 귀속. $100 당 $54가 상위 1%에게 돌아갔고 하위 50%에게는 고작 $0.7만 돌아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극빈층은 1820년 90%에서 2015년 10%로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함. 왜일까?
첫번째 문제는 1981년 이전에는 빈곤에 대한 데이터가 거의 없어서 추정치를 쓴다는 점. 게다가 경제학자 R. Allen에 따르면 소득이 아니라 지출을 추정하는 게 더 정확한데(예: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종류의 음식을 얼마나 먹을 수 있었는지를 따져보기) 기존 추정은 소득 추정에 기반.
두번째 문제는 “극빈”의 기준. Our World in Data에선 2011년 기준 하루 구매력 $1.9. 이는 19세기 미국의 노예보다 낮은 수준. 몇몇 경제학자들은 $4.5-$15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 $10를 기준으로 할 경우 아직 세계의 2/3은 극빈층임.
크게 보면 북반구의 남반구 착취(노동력 및 농산물 유입은 막고 금융은 풀기, 개혁적 리더 암살 등), 북반구 내 일부 국가(미국이 으뜸, 아시아에선 한중일 포함)로의 부의 편중이 심각. 미국 인구는 세계의 4.5%에 불과하지만 $50M 이상 자산가의 53%는 미국인.
부의 편중이 점점 심화하는 점도 중요. 미국의 경우 부의 총량은 $23.6T(1990)에서 $135.8T(2020)로 증가. 균등 분배됐다면 하위 50%의 총자산은 $1.7T에서 $57.8T가 됐어야 하지만 현황은 고작 $4.4T. 대부분은 상위 10%가 차지. 비율로 보나 절대값으로 보나 편중은 심화하는 중.
부의 불평등엔 젠더+인종 측면도 작용. 예: 백인 남성이면 유색인종 또는 여성에 비해 상위 50%에 속할 확률이 높음. 특히 인종에 따른 차이는 노예제 또는 인종차별이 있었던(혹은 있는) 사회의 경우 더욱 확연. 미국의 경우 라틴+히스패닉 인구가 20%이지만, 이들이 가진 부는 3%에 불과.
부의 편중 이야기를 하려면 결국 “계급”에 대해 말해야하지만, 많은 사회에서 이는 금기시되는 주제임. 계급에 대한 농담 하나:
- 미국인1: 미국의 계급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
- 미국인2: 미국에 계급 제도가 있다고?
- 미국인1: 응. 정확히 이렇게 작동하는거지.
프랑스 혁명 이후 모두가 평등하다는 법적/형식적 사상이 퍼졌고 우리는 모두가 실질적으로 평등하다고 믿게 되었으나 데이터를 살펴보면 사실이 아님. 헌법에 쓰인 말과 달리 기회와 결과에 불평등이 존재하며 이는 재능의 차이나 개인 선택의 차이에서 야기된 문제가 아님.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1930년대 신자유주의 사상이 1970년대에 득세하기 시작함. 시장 만능주의, 규제 완화, 공적 서비스의 민영화, 부의 축적을 개인적 성실함의 결과로(빈곤은 게으름의 결과로) 귀인하기 등으로 부익부빈익빈이 가속화되고 고삐 풀린 부의 축적이 시작됨.
불평등 아닌 빈곤에만 집중하자는 반론(부의 과도한 축적은 문제가 아님), 부의 낙수효과로 인해 사회 전반이 이로울 수 있다는 반론이 있음. 첫번째 주장의 문제는 불평등을 무시하고 빈곤만 해결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M. Desmond에 따르면 빈곤은 부자 중심 정부 정책으로 인한 귀결.
낙수효과론은 여러 실증적 연구에 의해 수차례 반박되었음. 낙수trickle-down는 없고 오로지 분수trickle-up만 있을 뿐. 오히려 반대의 근거(불평등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만 쌓이고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수효과론은 좀비처럼 죽지 않고 꾸준히 언급되고 있음.
3장. 편중된 부는 부정한 돈이다 It’s dirty money
과도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해롭게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음.
첫번째 범주는 반인도적범죄에 의한 부. 예를 들면 BMW, Porsche 등 나치에 협력하여 부를 축적한 기업 및 개인과 그 상속자들. 이들 중 일부는 나치 치하에서 노예노동을 통해 공장을 운영. 반인륜범죄를 통한 부의 축적의 다른 예는 노예제. 특히 미국의 경우 현재 백인괴 흑인의 부의 차이는 노예제의 직접적 결과일 뿐 아니라 체계적 차별도 여전히 남아있음. (여러 다른 국가 사례 생략) 이런 식으로 축적된 부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방법은 없음.
두번째 범주는 도둑정과 부패관료. 자기 나라 국민을 털어먹는 정치지도자와 관료들을 말함. 도둑정은 국민을 극도의 빈곤 상태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 고문 등 인권 침해를 동반하고 선거사기, 정적을 감옥에 넣거나 암살하는 등 수많은 불법을 자행. 가난한 나라 뿐 아니라 한국 등 잘사는 나라도 도둑정과 부패가 심각함. 게다가 도둑정의 문제는 해당 국가에만 그치지 않음. 예: 푸틴과 그의일당은 아군을 확보하기 위해 타국의 우파 정치인들에게 불법으로 금전적 지원을 함. 관료의 부패도 심각한 문제.
세번째 범주는 의도적으로 고객에게 해를 끼치며 부를 축적하는 기업들. Sackler 가문의 제약사 Purdue Pharma는 옥시코틴의 중독성을 알면서도 “중독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거짓 홍보를 하여 수많은 이들을 중독시키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였음. 이익은 기업이 챙기고 손해는 국가에게 넘기는(따라서 전국민에게 분산시키는) 방식도 흔함. 대표적 사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금융 위기를 촉발한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슈퍼 부자들의 오랜 입법 로비의 결과로 각종 금융 규제가 완화된 것. (그 외 여러 사례 생략) 아마존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낮은 급여로 유명. 하지만 근본적 개선 없이 그럴듯한 말로 겉포장만 하는 중. 예: 물류창고warehouse를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라고 부르기(한국도 똑같이 따라하는 중).
네번째 범주는 절세avoidance와 탈세evasion. 정의 상 절세는 합법이고 탈세는 불법이지만 경계는 매우 불명확. 대부분 국가의 조세 제도는 고소득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설계되어 있으나 현실의 슈퍼부자들은 세금을 오히려 적게 냄. 합법일 수는 있겠으나 도덕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움. 절세+탈세는 기업에서도 활발히 일어남. 예: 구글은 버뮤다에 구글 홀딩스를 세우고 유럽의 구글 지사가 구글 홀딩스에 기술료를 내도록 설계, 유럽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줄여 세금을 회피. 버뮤다는 세금이 없음. Saez and Zucman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다국적 기업의 이익 60% 가까이가 이런 식. ‘재산 방어 산업’ 업계가 있을 정도. 고객은 상속자와 CEO 등 슈퍼부자들. 게다가 부자들의 꾸준한 다국적 입법 로비는 각 국가의 조세 제도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있음(예: 부자 감세). 아무튼 그들 입장에서도 ‘절세’가 합법이면 더 안전하니까.
범죄수익이나 도둑정은 비판하면서도 본인의 부는 합법적으로 축적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텐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고 2) 법 자체가 부자에게 유리하게 계속 편향되는 점을 생각해보면, 도덕적인 방법으로 극도의 부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
4장. 부의 편중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It’s undermining democracy
3장에서 본 바와 같이 도둑정은 민주주의를 명백히 훼손한다(예: 푸틴과 일당들). 그 밖에도 많은 악영향이 있음. 첫번째 형태는 시민권의 상품화. 많은 국가들이 비씬 돈에 시민권을 판매함. 이는 곧 시민권에 포함된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의 매매. 황금여권 또는 황금비자를 구매하는 이유는 더 안정적인 생활, 범죄 후 도주, 사업 편의 등. 피터 틸(미국 우파 사업가, 페이팔 마피아, Zero to One 저자)은 아무 연고 없이 뉴질랜드 여권을 구매, 12일만에 시민권을 획득하고 대규모 토지를 구매. 기후 위기 등 재난 상황에서 대피하기 위한 목적.
Malta 여권은 부자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 EU 회원국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
여권 판매의 문제는?
- 첫째, 정치적 권리를 얻기 위한 수단의 불평등.
- 둘째, 종종 범죄에 대한 보상으로 작용. Malta에서 여권을 구매하여 시민권을 얻는 이들 중 상당수는 러시아 범죄자.
이들의 경험은 돈이 없는 난민들의 경험과 극적으로 다름. 2014-2022 사이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던 난민 중 25,000명이 사망. Malta는 조난 당한 난민들을 도울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유명. 런던에서는 난민들이 창도 없고 감옥보다도 좁은 방에서 지냄.
돈이 민주주의를 망치는 또다른 방법은 슈퍼부자들의 정치인 후원. 큰 돈을 후원하면 해당 정치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됨.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 점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지만 2015년 트럼프마냥 방송에서 공연히 인정하는 기묘한 경우도 있음. 거액의 정치 후원금은 정치인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정치적 어젠다에도 영향을 미침. 충분한 후원을 할 수 없는 이들의 의견은 적절히 대표되기 어려움. M. Gilens and B. Page에 따르면 미국의 정책 의사결정은 대체로 기업 및 자본가에게 치우치곤 함.
또다른 방법으로는 기업에 의한 정부 협박이 있음. 정부가 본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으면 기업의 주요 시설을 해외로 옮긴다고 협박하는 방식. 물론 협박을 문서로 남기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들킬 일도 없음.
돈으로 민주주의를 망치는 또다른 방법은 재벌의 미디어 소유. 재벌은 신문사 및 방송사를 사들이고 이걸 이용해서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생성하고 전파. 예: 루퍼트 머독. 투표권이 의미 있으려면 시민들이 올바른 정보에 기반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해야하는데 이를 훼손하는 것.
또다른 방법은 씽크탱크나 정치연구소를 운영하거나 후원하기. 다양한 정치/사회/경제적 이슈를 본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고 따라서 대중의 견해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됨.
이처럼 슈퍼 부자들이 서로의 부를 더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제도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 모든 부자가 적극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본인의 부의 비정싱적 증가에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다면 현재의 불공정한 시스템을 지지하고 있는 것.
5장. 부의 편중은 세상에 불을 지르고 있다It’s setting the world on fire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크게 올랐고 많은 사람들이 난방에 필요한 기름도 확보하기 어렵게 됨. 동시에 BP, Shell, Exxon 등 에너지 기업의 매출이 크게 증가.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보통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매출을 끌어올린 것.
슈퍼부자들은 개인비행기를 타는 등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그에 대한 비용은 모두가 나누어 지불. 친환경 에너지에 투자하면 좋을텐데 환경에 안좋은 우주 여행에나 투자를 하고 있음.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많이 가진 이들 중 대부분은 투자할 생각이 없음.
가뭄, 홍수, 극단적 기후 변화의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주로 가난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이들은 슈퍼부자들. 부와 탄소 배출 사이에 매우 강한 상관 관계가 있음.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음.
6장. 백만장자가 되어 마땅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Nobody deserves to be multimillionaire
세금에 대한 논쟁에서 항상 나오는 주장 중 하나: “시장에서 번 돈은 각 개인에게 속하며 정부는 이를 건드려서는 안된다. 재산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으로 얻어진 정당한 결과물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제한주의의 논거는 크게 훼손될 것.
제한주의는 시장과 재산은 모두 사회 제도라는 근본적 통찰에 기반을 둔다. 사회적 맥락(구성원 간 공유되는 규칙과 규범, 이를 조율하는 주체인 정부)을 제거하면 시장도 재산도 존재할 수 없다. 정부가 존재하려면 자원이 있어야하며 이게 곧 세금이다. 안전한 사유재산은 세금없이 존재할 수 없다.
세금징수 자체는 논의 대상이 아님.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징수하는 게 공정한지가 문제.
첫번째 주제는 상속세. 몇몇 국가에서의 상속세 폐지, 조세회피처 등 온갖 회계적 기교 등을 고려할 때,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현재 슈퍼 부자들이 가진 재산은 거의 그대로 상속될 가능성이 높음. 상속은 애초에 불공정하다. 단지 부자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큰 재산을 가지기 때문. 철학지 D. W. Haslett은 정치권력의 상속은 폐지되었는데 재산의 상속은 왜 남아있는지 묻는다. (수학자 B. Russell도 100년 전에 같은 얘기를 했더랬다😀 왕권 상속은 사라졌는데 왜 금권은 계속 상속되나.)
상속을 옹호하는 이들은 자신의 재산을 누구에게 줄지 정할 자유가 있다고 말함.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거대한 재산의 상속은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기회의 균등을 해치고 개개인의 인센티브를 약화시킨다.
상속세에 반대하는 또다른 주장은 이게 이중과세라는 것. 하지만 유증세(bequest tax; 내 재산을 누구에게 무상으로 주는 행위에 대한 세금)와 상속세(inheritance tax; 누군가의 재산을 무상으로 받는 행위에 대한 세금)는 다름. 상속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 이는 후반부에서 소개하겠음. (10장에서 저자의 제안은 상속액에 상한을 정하고, 남은 재산은 젊은 세대에게 고르게 나눠주는 것)
다음 문제는 지나치게 높은 노동 소득. 초고액연봉이 언제나 정당한 노동의 댓가인지 여부는 (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의심스러움. 1978-2021년 사이 미국 CEO 월급은 1460% 증가, 같은 기간 노동자 월급은 18% 증가. CEO 평균 연봉은 노동자의 399배. CEO/스포츠+엔터업계의 고액연봉이 정당한가?
- 첫번째 반론. “어려운 일이라 많이 받는다”는 주장. 하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고액을 받거나 어려운데(예: 아동 돌봄)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 두번째 반론. “엄청난 재능을 요하는 일이라 많이 받는다”는 주장.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성과가 낮은 해엔 크게 덜 받아야하는데 안그럼. 둘째, 독점 상황에서의 경쟁에는 재능이 덜 중요. 다수의 성공한 이들이 본인 재능 덕이라 여기지만 여러 연구에 의하면 귀인 편향 오류에 불과. 게다가 만약 정말 엄청난 재능 덕인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음. 정의론에 의하면 재능은 천연 로또(natural lottery). 운이 좋아서 재능을 타고 났다는 이유로 엄청난 소득을 정당화할 수는 없음. 물론 이 주장을 강하게 하면 결정론에 빠져들 위험이 있음. 개인이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단 말이 아님. 다만 타고난 재능이나 운 등 노력과 무관한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그 많은 돈을 받는 걸 쉽게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점을 더 깊게 수용하자는 것. 모두의 소득이 같아야 한다는 말은 아님. 다만 차이가 너무 커서 문제.
어느 정도 수준 내에서의 소득 차이는 몇 가지 원칙에 의해 정당화 가능.
- 첫째, 각 직업마다 부담의 크기에 차이가 있으며 소득은 이를 반영해야 함.
- 둘째, 의료 등 사회 전체가 의존하는 일부 직업에 종사할 동기를 사람들에게 부여하기 위해 일부 직업에는 소득 차이가 있을 수 있음.
기업가는 부와 일자리를 창출했으니 큰 돈을 벌어도 된다는 반론도 가능. 하지만 아마존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그대로 두고 CEO가 그토록 많은 보상을 받는 게 정의로운 분배인가? 애플의 해외 공장 노동자는? Zara가 “패스트 패션”으로 환경을 크게 파괴하며 엄청난 돈을 버는 게 정당한가?
더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창출하는 가치는 거의 언제나 기존 사회 인프라에 의존한다는 점. 만약 배가 표류하여 한 집단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 다른 집단은 모든 게 갖춰진 현대 도시인데 마침 사람만 없는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두 집단 사이의 생산성 차이는 엄청날 것.
여러 국가 간 오랜 협력의 결과인 인터넷이 없었다면 구글이나 아마존이 가능이나 했겠는가. 거대한 부는 언제나 예외 없이 다른 많은 이들의 오랜 노력에 의존하고 있음.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없이 제약회사는 존재할 수 없음.
신자유주의자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 그러나 이는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서사에 불과. 여러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계층 이동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 상황을 개선하려면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우기기만 하면 개선이 불가.
제한주의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음. 하지만 제한주의는 기회 자체가 아니라 기회와 연결된 특정 종류의 금전적 보상을 제약하는 것. CEO가 되는 건 문제가 아님. 다만 CEO가 지나치게 많은 보상을 받는 게 문제.
제한주의 사회에서는 모두에게 건강 보험이 적용되고, 모두가 수준 높은 공교육을 받으며, 누구나 적당한 돈으로 집을 구할 수 있고, 지나친 스트레스 없이 노동하여 삶을 즐길 수 있음. 현대 사회는 전혀 그렇지 못함.
7장.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정말 많다 There’s so much we can do with the money.
(Michael Sandel의 What money can’t buy가 생각나는 제목. 기억하기론 현대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거의 없다는 게 결론이었던 것 같다 ㅋㅋㅋ)
코비드19가 한창이던 2021-2022,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을 겪는 와중에 미국 슈퍼부자 상위 400명의 재산은 40% 증가했다. 고통은 나누고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해야할 이들이 호화로운 별장에서 아이들을 개인교습시키며 고통은 피하고 이득만 누렸음.
신자유주의 전처럼 부자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징수했다면 정부가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 평균적인 웰빙이 크게 향상되었을 것.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때문. 부자는 월 $1,000를 더 벌건 말건 거의 아무 차이를 못느끼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이 돈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음.
슈퍼부자는 민간 우주여행 12분에 $28M을 쓰는데 이 돈이면 약 6200명의 생명을 구할 것으로 추정됨. 당장 고통을 겪고 있는 취약한 이들을 위해, 슈퍼부자의 재산이 재분배되어야 함. 효율적일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
단, 이 주장은 돈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음. 정말 그런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 등 어떤 문제는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겠으나 이런 문제 조차도 돈이 있으면 도움이 되는 건 사실.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조건 없이 모두에게 보편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 2008-2009 나미비아의 UBI 실험 등 실증적 근거가 있음. 삶의 수준이 대폭 개선되었으며 신자유주의자들의 우려와 달리 사람들이 게을러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음. 조건에 부합하는 이들에게만 돈은 지원해주는 선별복지는 효율이 낮음. 기준을 만들고, 기준에 부합하는지 검증하고, 선별된 사람에게만 돈을 주는 모든 과정에 비효율이 있고 불필요한 재정이 들어가기 때문.
극빈 문제는 일부 가난한 국가만의 일이 아님. 잘사는 나라들도 극빈 문제가 심각. 부자 나라 국민의 40%는 재정적으로 불안정함. 2022년 다큐 <아메리칸 드림 및 여러 동화들The American Dream and other fairy tales에서 이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음. (이 다큐 보고싶은데 한국에서는 VOD 구매나 스트리밍이 불가능한 것 같다. 2024년 6월 기준.)
슈퍼부자들에게 제대로 세금을 징수하면 그 돈으로 가난 문제 뿐 아니라 기후 위기나 생물다양성 위기 등 인류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할 많은 문제들도 개선할 수 있음. 요약하자면, 세금으로 국가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매우 많음.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이라 비판. 하지만 애초에 법이 제대로 고쳐지고 조세회피를 철저히 막고 분배를 지금보다 정의롭게 하기만 해도, 제한주의에 영향을 받는 슈퍼 부자 자체가 거의 없어질 것.
슈퍼부자의 세율을 높이면 이들의 동기가 정말 낮아질까? T. Malleson의 Against inequality에 따르면 이런 주장엔 아무 근거가 없음. 물질적 이득이 인간 본성에 내재된 근본적 동기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엔 근거가 없음.
8장. 박애주의는 답이 아니다. Philanthrophy is not the answer
Chuck Feeney는 거의 전 재산인 $8B 이상을 익명으로 기부하다가 비자발적 계기로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며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음.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박애주의를 칭찬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됨.
우선, 기부를 논하기 전에 재산 축적 과정이 도덕적으로 정당해야함. 기업가와 슈퍼부자의 조세회피로 세수가 줄면 결국 나머지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던지 정부가 공공 서비스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게 되어 나머지 사람들의 복지를 깍아먹던지 하는 식으로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감. (이 관점에 의하면 The most good you can do의 사례 - Matt Wage, 월스트리트에서 차익 거래로 큰 돈을 쓸어담은 뒤 크게 기부하기 - 는 딱히 추천할만한 행동이 아닐 수 있겠다. 어쩌면 결과주의/공리주의 관점에서도 올바른 행동이 아닐 수 있겠음🤔)
슈퍼 부자의 기부로 운영되는 박애주의 재단은 종종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 세계에서 가장 큰 재단 100개 중 90개는 미국에 있음. 1) 애초에 미국은 비정상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채택했고, 2)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
작은 정부를 외치는 보수주의자는 1) 애초에 시장이 정부 덕에 가능하단 점, 2) 스스로 노력해 번 돈이라고 여기는 부의 상당수는 사회 인프라 덕이란 점 등을 인정하지 못함. Mitt Romney는 부모 돈 빌려 학자금을 내면 되니 정부 지원이 필요 없다 말하지만 모두가 부자 부모를 둘 수 있는 건 아님. 이들은 정부의 유일한 목표는 효율극대화라고 주장. 하지만 효율만 따지더라도 작은 정부는 부적절. 국민 개인이 리스크에 대비해야하는 시스템이라면 각자가 필요 이상의 저축을 할테고 이는 소비 저하로 이어짐. 리스크를 국가에서 풀링하는 게(즉, 공적 보험) 훨씬 효율적인 시스템.
작은 정부에 대한 슈퍼 부자들의 믿음은 엘리트주의와 빈자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 경우가 많음.
본인이 부자인 이유는 똑똑하고 성실하기 때문 → 본인처럼 똑똑한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에 의해 선출된 자들이 운영하는 정부 → 신뢰할 수 없다는 믿음.
박애주의 재단을 선호하는 이들이 모두 이렇지는 않을 것. 위와 같은 편견이 없다면 이들의 주장은 타당한가? 그렇지 않음. 박애주의 재단은 본질적으로 비민주적. R. Reich 2019에 의하면 재단 운영은 손 큰 기부자의 의견에 큰 영향을 받음. 결국 국가가 할 일을 재단에 위임하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금권을 강화.
재단을 옹호하는 주장도 있다.
- 다원론. 정부는 본질적으로 단기적 성과를 지향(선거 주기 때문)하는 등 한계가 있으니 다양한 재단이 있어야 다원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 반론: 하지만 이게 꼭 슈퍼 부자의 기부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음. 평범한 사람들이 모은 돈으로도 가능. 게다가 슈퍼부자의 재단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본질적으로 금권주의적.
- 발견론. 정부가 하기 어려운 더 실험적인 일들을 할 수 있음. 빌 게이츠도 같은 견해. 하지만 이런 실험 또한 굳이 슈퍼 부자의 금권에 휘둘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모음으로 하면 될 것. 뭐가 중요한 문제인지 재단이 알거라는 가정도 위험. 부자들은 제발 겸손해질 필요가 있음. 특히 효율적 이타주의(EA)가 그런 식. 게다가 일부 EA 옹호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큰 돈을 벌어서 기부하리는 식으로 주장(피터 싱어의 The most good you can do 1장).
그럼 옳은 일을 제대로 하고 싶은 슈퍼 부자는 뭘 해야하나?
- 첫째, 앞으로 세상에 끼칠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미 끼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기.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았는지, 지역민/고객/지구의 건강에 해 끼치지 않았는지, 세금을 덜 내려고 편법을 쓰지 않았는지 등을 묻기(삼성 듣고 있니?)
- 둘째, 구조 개혁을 돕기. 투표권 증진, 언론이 거짓선동 하지 않게 감시하는 기구를 지원하기, 노조 지원하기,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교육하기, 조세정의 관련 단체 지원하기 등. 구체적 사안은 국가별로 다를 것.
- 셋째, 본인의 허영을 채우는 프로잭트가 아니라 유익한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그들의 돈 중 상당량은 도덕적 관점에서 그들 돈이 아님. 가난한 나라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한 게이츠-멜린다 재단이 모범사례.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리차드 브랜슨의 우주 경쟁은 나쁜 사례.
재산이 $10M 미만인 사람은 아무 의무도 없을까? 제한주의의 윤리적 한계선은 이때 필요. 부자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살만한 사람들은 부의 편중 문제 해결에 참여할 도덕적 의무가 있음. 북반구에 사는 상당수의 사람들과 남반구의 일부 잘 사는 사람들 포함.
9장. 부자들에게도 이롭다 The Rich will Benefit, too
제한주의가 달성된 세상은 더 민주적이고, 사람들은 노동의 정당한 댓가를 얻고, 재난 상황에 더 잘 대처하며, 기후 위기에 더 잘 대응하고, 학교와 병원 등 공공 시설은 더 좋아질 것.그런데 이런 세상이 슈퍼 부자들에게도 이로울까? 저자는 그렇다고 확언.
우선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돈을 가지고 윤리적 삶을 살기란 어렵다는 점에서 제한주의가 실현되면 그들에게도 윤리적인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로움.
도덕적 삶 외에도 세 가지 개인적 이유가 더 있음.
- 첫째,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사회적/정치적 불안요소가 커지고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짐. 역사적으로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폭등이 일어나지 않았던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음.
- 둘째, 개인의 불행. 지나친 부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부로 인한 인간관계 왜곡, “평범한” 세상과의 단절 등. 특히 슈퍼 부자의 자녀들은 (부를 유지하느라 바쁜) 부모와의 관계 문제, 지나치게 풍요로운 유년기 환경에서 기인하는 참을성 부재 등 다양한 문제를 겪음. 칙센트미하이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큰 재화가 생기면 큰 행복을 느끼지만 슈퍼 부자는 그렇지 않았음. 반대로 이들에겐 시간이 지나치게 비싼 자원. 아이와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너무 아깝게 느껴짐. 그 시간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으니. 서서히 행복을 추구하는 즐거움 등에도 둔감해짐.
- 셋째, 사회 안전망. R. Sherman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슈퍼 부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부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음. 일부는 진심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보임. 하지만 이 문제의 해법은 개개인이 돈을 쌓아두는 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사회 안전망 보장.
돈이 그렇게 많아도 불안하다면 돈을 모으는 이유가 대체 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더이상 안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던져왔음. 좋은 삶이란 만족을 아는 삶. 현대인들은 이 지혜를 잃고 말았음. 신자유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자아상(끝없는 욕망을 지닌, 주변이 불행해도 홀로 행복할 수 있는, 자기 중심적인 소비자)에 어긋나기 때문. 하지만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 신자유자본주의의 저주를 깨고 더 나은 상상을 펼쳐야 함.
10장. 우리 앞에 놓인 길 The road ahead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모름. M. Norton and Dan Ariely 2011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상위 20%가 전체 부의 36%, 하위 20%가 11% 정도 가지고 있을거라고 여김. 현실은? 상위 20%가 84%, 하위 20%는 0.1%를 가지고 있음. 다른 나라의 빈부격차 인식에 대한 연구도 유사한 결론. 결국 사람들이 부의 재분배 문제에 관심이 적은 이유는 하나는 현실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 (앗… D. Ariely는 연구 윤리 위반, 데이터 조작 등으로 수차례 문제가 되었던 연구자인데 여기서 또 만나네요)
또다른 이유는 제한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하게 보는 시각. 제한주의는 공산주의랑 다르며 저자는 공산주의에 회의적. 정부가 모든 재화의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건 가능하지도 않고 이상적이지도 않음.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부에 상한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공산주의의 중앙 계획 경제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음. 제한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진지한 토론을 할 생각이 없어보여서 슬픔. 주류 논쟁은 이분법적(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으로 흐르는 점이 아쉬움.
우리는 미국과 유사한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르지만 사실 순수한 자본주의는 거의 없음. 정부 소유인 토지와 건물도 있고, 정부가 공급하는 재화도 있으며, 정부가 다양한 규제를 가하고 있음. 물론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크게 줄고 있어서 문제이지만.
신자유주의로 인해 공공 복지가 축소되고, 각종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되고 있으며, 정부의 규제가 지나치가 완화되는 등 정부의 기능이 점차 약해지고 있음.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는데 그 유연성으로 인한 위험은 노동자가 지고 이득은 자본가가 가져감.
어떻게 해야하나? 제한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일부 제안을 할 수는 있음. 경제 시스템은 빈부격차가 일정 정도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막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일정 이상의 부는 기후 위기 등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쓰여야 함.
또한 공적 가치를 문화에 녹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 물질적 소득이 주요 인센티브여서는 안됨. 성취, 도전, 내적 즐거움, 명예 등이 주요 인센티브가 되도록 만들고, 인간은 누구나 취약하며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강조하기.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가 이런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음.
제한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요하나?
- 첫째, 신자유주의 사상을 근본부터 허물어야 함. 신자유주의는 제한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사상. 신자유주의는 시민들의 숙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술중심적 접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 (Marc Andreessen의 기술낙관주의자 선언이 생각난다)
- 둘째, 계급 간 분리를 완화해야 함. 계급 통합이 되어야 서로 다른 삶은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공감이 형성될 수 있으며 나만 이롭게 하고 남들을 해롭게 하는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음. 주거 정책 등을 통해 계층 간 분리를 완화하는 등 정부의 역할도 큼.
- 셋째, 경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정치 권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함. 수세기 전 Adam Smith가 The wealth of nations에서 이미 경제 권력에 대해 분석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권력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달리 여기는 게 흥미로움.
- 넷째, 정부의 조세 및 재정 시스템 강화. 세금은 사회 계약의 핵심인데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며 제도에 너무 많은 구멍이 생겼으며 관련 기관의 공무원 수가 계속 축소되고 있으며,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국제 협력도 원활하지 않음. 이런 상황에서는 조세 정의 실현이 요원.
- 다섯째, 부정적 재산 몰수 및 피해 회복 지원. 범죄 수익 몰수에 대해선 별 이견이 없을 것.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정적 재산의 “더러움”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으며 이를 더 폭넓게 고려해야 함.
- 여섯째, 공정한 국제 경제 구조. 특정 국가 내에서만 금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음. 금권에 대한 국제적인 견제와 균형이 필요함.
- 일곱째, 최저임금 뿐 아니라 최고임금 개념을 도입하기. 특히 경영진들이 받아가는 말도 안되는 임금을 막아야 함. S. Pizzigati 2008 참고.
- 마지막은 세대 간 재산 이전 막기. 몇몇 철학자들은 상속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 몇몇 학자들은 상속세를 극적으로 높일 것을 제안. 저자는 상속액에 상한을 걸고 나머지는 모든 젊은 세대에 고르게 나눠주는 방안을 제시.
핵심은? “욕심은 좋은거고 한계란 없다”는 주문에서 깨어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