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세상 만들기
동물권 단체 EVA(Ethical Vegetarian Alternative)의 설립자인 토바이어스 리나르트의 책.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도축을 줄이고, 동물에 대한 부도덕을 줄인다는 세 가지 목적을 정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 무엇인지 소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실용주의적 접근.
저자에 대해
저자는 한편 Direct Action Everywhere의 ‘방해 시위’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비판1, 비판2). 운동의 효율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주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논지를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 상대방이 하는 행동이 부당하다고 지적하면 도덕적 저항moral reactance을 유발할 수 있음
- 극단적인extreme 시위는 오히려 사람들의 반감을 살 수 있음
- 다른 사회 정의 운동과 동물권 운동은 다른 단계phase에 놓여 있음. “DxE는 좋은 시위를 안좋은 시기에 하고 있다.”
나는 DxE의 활동들이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동시에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도 공감하는 편. 내 생각에 이 둘 사이의 충돌은 동물 해방이 얼마나 빨리 달성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일부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DxE는 한 세대 이내에(구체적으로는 40년 이내에) 동물 해방을 이뤄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 반면, 투바이어스는 이것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느낌.
추천사
추천사는 동물 해방으로 유명한 피터 싱어가 썼다. 싱어도 항상 도덕적 완벽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동물의 고통과 도살을 줄일 방법을 고민할 것을 항상 강조해왔던 사람이라 이 책의 입장에 공감을 할 것 같다.
싱어는 본인이 동물 해방 마지막 문단에서 사람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이성적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동물 해방이 달성될 것이라고 썼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방법으로는 전 인류의 일부만 비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기심을 버릴 수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테니까. 윤리적인 이유 이외의 다른 이유들(건강, 편의성, 경제성 등)을 끌어들이더라도 좋으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고 밝힌다.
서문: 비건마을로 가는 긴 여정
원문의 제목은 Introduction: The Long Way to the Veganville.
저자는 육식하는 사람들을 고기이해관계자라고 부른다(영어 단어 stakeholders는 이해당사자라는 뜻인에 이 단어를 살짝 바꿔고 스테이크(고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 이 책은 고기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실용적 전략서. 기존의 책들과 달리 인간의 도덕성에만 호소하지 않고 필요한 모든 수단을 쓸 것.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 비건이 되라는 설득 뿐 아니라 동물제품 사용을 약간만 줄이라는 호소도 병행할 것. 극소수의 비건보다 대중의 소비 감소가 티핑 포인트를 더 앞당길 것이기 때문
- 어떤 이유로건 습관이 바뀌면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 왜냐하면 사람들은 원래 습관을 먼저 바꾸고 그 후에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곤 하기 때문
- 동물 제품의 대안을 더 좋고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여 변화를 촉진하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것
-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고 조금 더 느슨한 비거니즘 개념을 제안할 것
서문인지라 이 책 전체에 깔려 있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는 자신을 느린의견주의자slow opinionist라고 칭한다. 인터넷에 익숙해진 시대라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 형성을 너무 빠르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느린의견주의자란 어떤 주제이건 충분한 정보를 모으고 열린 마음으로 반대자의 입장에서 숙고한 후에 입장을 정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말함.
또 한가지 강조하는 점은 지향점과 전략의 구분. 길을 잃지 않으려면 북극을 정확히 가리키는 나침반이 필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 위치에서 무조건 북쪽으로 직진하는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은 아니란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비거니즘 운동을 하며 저자가 겪어 온 두가지 흔한 오류는 다음과 같다.
- 유일하게 옳은 방법이 있다는 믿음
- 모든 방법이 다 똑같이 유용하다는 믿음
유일하게 옳은 단 하나의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방법이 다 똑같이 유용한 것도 아님. 그러므로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항상 여러 전략을 실험하고 기존 데이터와 연구를 살펴보는게 중요하고, 효율적 이타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즉, 그냥 좋은 일을 하는걸론 부족하고 좋은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이 책은 주로 육식에 초점을 맞출 것. 인간에 의해 고통받고 죽는 동물의 99%가 육식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 동물 실험, 사냥, 가죽/털, 오락 산업으로 인해 죽는 동물을 모두 합친 것에 비해 식품 산업의 비중이 가장 크다. 한편, 이 책에서 말하는 “고기”란 물고기, 유제품, 달걀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
제1장: 짐 꾸리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여기는 어디인가
원문의 제목 Getting our Bearings: Where Are We Going, and Where Are We?
운동의 목적은 다음 세 가지.
- 동물의 고통을 최대한 줄이기
- 동물의 도살을 최대한 줄이기
- 동물에 대한 부정의를 최대한 줄이기
비거니즘과 마찬가지로, 비건 세상을 만드는 것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고 위의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 또한가지 중요한건 사람들의 행동 뿐 아니라 태도도 바꾸어야 한다는 점.
비건 세상이 미래의 이상이라면, 현재 세상의 상태에 대해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세상엔 고기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 산업에 비해 육류 관련 산업의 규모가 훨씬 크다. 사람들은 육식이 정상normal이고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며necessary 좋다고nice 여긴다(Four Ns of justification). 이들에게 육식의 포기란 비정상이고anbormal 부자연스럽고unnatural 불필요하며unnecessary 매력적이지 않다unattractive.
Solomon Eliot Asch의 순응성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다수 의견에 따르려는 강한 성향을 가진다. 다수의 의견이 아무리 이상해도. 이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육식이 문제라는걸 깨우친 후에도 실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비건/채식주의자 중 84% 정도는 중간에 채식을 중단하고 육식으로 돌아간다.
동물 운동에는 특별한 난점들도 있다. 첫째, 기존 모든 해방 운동은 인간에 대한 것이었으나 동물 운동은 예외다. 동물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타자other. 둘째, 억압당하는 주체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하지만 Earth species project 참고 —ak). 셋째, 육식은 수백만년 동안이나 지속된 인간의 진화적 본성과도 깊게 엮여 있다.
이같이 어려운 현실에 비해 현재의 동물 운동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실용주의-이상주의 스펙트럼의 양극단은 모두 문제다. 무자비한 실용주의도 문제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극단적 교조주의도 문제. 불행하게도 상당수의 사회 운동은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실용주의자는 세상과 타협한다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듣곤 한다. 이상주의자는 세상을 모른다는 비판을 듣는다.
저자의 제안은 이렇다. 현실의 상황이 지나치게 안 좋기 때문에, 초기에는 좀 더 실용주의적 접근이 용이하다. 하지만 점차 대중의 지지를 얻어가고 세상이 바뀌어가면 이상주의적 접근을 확대하는 것이 좋다.
1장의 결론: 현재의 세상은 동물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매우 의존적이고 동물 운동엔 여러 특수성이 있어서 전개에 어려움이 있으며, 운동 참여자는 지나치게 적고, 반대하는 세력은 매우 강하다. 따라서 대단히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 철학적으로 무엇이 옳은가를 고민하는건 상대적으로 쉽다. 현실에 발을 담그고 옳은 시기에 옳은 행동을 하여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게 진정 어려운 일이며, 우리가 해야할 일.
제2장. 실천을 요구하기: 사람들에게 어떤 실천을 요구할 것인가
원문의 제목은 Call to Action: What Do We Ask People to Do?
“비건이 되세요”라는 메시지와 “매주 월요일은 채식을 하세요”라는 메시지 중 어떤 메시지를 선택해야 최대한 많은 사람을 최대한 빨리 비건마을로 입주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비건 사이에서 그동안 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지난 세월동안 우리가 해온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합치된 견해가 없다고 말한다.
원하는걸 그대로 메시지에 담는게 능사는 아니며 구호 선정에도 실용적 접근이 필요. 이 점은 동물 운동 뿐 아니라 모든 사회 운동이 마찬가지.
예를 들어, 19세기 영국의 노예폐지론자는 노예제 폐지 법제화에 매번 실패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상론을 약간 양보하고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메시지를 바꾸기로 결정 했다. 노예제 완전 폐지 대신, 적국 연합(프랑스 등)의 노예 무역선을 압류하는 법안을 제안. 완전한 폐지라는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타협이지만 장점이 있었다. 첫째, 당시 영국의 국수주의적 정서에 효과적으로 호소한 점에서 유효했고 둘째, 영국에서 일어나는 상당수의 노예 무역에 이들이 관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효과도 컸다. 전략은 대성공. 그리고 놀랍게도 그로부터 고작 1년 후, 그 동안 입법에 매번 실패했던 원래 법안도 통과된다.
글루틴 무첨가 운동에서도 또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실제 글루틴이 생명에 치명적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 하지만 글루틴이 나쁘다는 인식이 대중 사이에 퍼지면서 글루틴 무첨가를 찾는 수요가 늘어났다. 그 결과 싸고 다양한 글루틴 무첨가 제품이 시장에 보급됐으며 이에 따라 원래의 극소수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비거니즘 또한 “진정한 비건” 뿐 아니라 육류 섭취를 줄이고자 하는 감소주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감소주의 메시지는 몇 가지 이유에서 효과적:
- 첫째, 감소주의자는 수가 많기에 시스템에 더 크고 빠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 둘째, 따라서 당장 더 많은 동물을 살릴 수 있다.
- 셋째, 누구든 일단 감소주의자가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비건이 되기가 수월.
- 넷째, 원래 대다수는 한 번에 비건이 되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비건이 된다.
- 다섯째, 감소주의자는 비건에 비해 수가 많으므로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더 많은 지역과 분야에 영향을 주며, 따라서 전파 효과가 크다.
좋은 메시지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도 감소주의 메시지에는 장점이 있다. 좋은 메시지란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는 메시지를 말한다:
- 사람들이 들을만한 메시지: 너무 극단적이면 눈과 귀를 닫는다.
-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는 메시지: “비건이 되세요”는 대다수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요구. 월요일은 고기 안먹기, 6시 전엔 고기 안먹기 등은 보다 쉽다.
- 대중이 신뢰할만한 근거에 기반하기: 완전한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합리적 근거는 매우 많다. 그러나 대중은 대체로 자료를 찾아보려 하지도 않고 완전한 채식이 건강에 안좋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반면 현대인이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이니 조금 줄이라는 주장은 근거도 있고 대중이 쉽게 신뢰할만 하다.
-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도살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메시지: “비건이 되세요”와 마찬가지로 감소주의 메시지도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도살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비건이 되세요”라는 메시지는 쓰지 말아야 할까? 저자는 상황에 따라 둘 다 쓰길 권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비건 되세요”라는 메시지를 들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한다:
- 선명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비교적 어린 사람들
- 학생, 학계, 지식인은 비교적 열려있음
- 동물 복지에 이미 관심이 있는 사람들
- 철학적 대화를 선호하는 사람과 1대1로 대화하는 상황
한편, 비건이라는 단어는 명사(예: 당신은 비건인가요?)로 쓰기보다는 형용사(비건 음식, 비건 식당)로 쓰는걸 추천한다고. 명사는 이분법적 느낌(그래서 비건이야 아니야?)을 주는 반면, 형용사는 그러한 느낌을 덜 주기 때문. “비건이 되라는 말(명사)“과 “비건 음식을 먹어보라(형용사)“는 말엔 큰 차이가 있다.
2장의 뒷부분은 감소주의 메시지에 대한 반론과 그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소개.
- 비건 아닌 다른 걸 목표로 제시하는건 부도덕하지 않은가: 이상주의적으론 맞는 말이나 육식이 합법이고 거의 모든 대중이 육식을 필수로 여기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도덕적 일관성 유지보다 동물의 고통과 도살을 줄이는게 더 중요한 목표라면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
- 육식을 줄이라고 하면 조금만 줄이고 거기서 멈추지 않을까: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베지테리언/비건이 된다. 따라서 첫 걸음을 옮기게 만드는게 매우 중요.
- “비건 되세요”라고 말해도 육식을 줄이게 만드는 효과는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거니즘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아예 메시지를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
- 감소주의 메시지를 쓰더라도 궁극적 목표가 비거니즘이라는건 분명히 밝히는게 좋지 않을까 목표를 투명하게 밝히는게 항상 가장 효과적 전략은 아니다. 감소주의도 충분히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점은 육식옹호자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전미소고기협회 대변인은 “<고기 안먹는 월요일> 운동은 고기가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서 대중이 극단적인 비거니즘을 수용하게 만들기 위한 사악한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 감소주의자와 비건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지 않나: 둘 사이에 차이가 크다고 가정하더라도 감소주의자가 만들어낼 큰 효과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나는 하루만에 비건이 됐고 어렵지 않았으니 다른 이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 경험을 객관적 척도로 써서는 안된다. 대다수에게 비거니즘이 기본 옵션이 되기엔 한참 멀었으며 몇몇 지역에서는 비거니즘 실천이 매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육류소비를 줄이는게 아마도 가장 빠르게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는 방법일 것. 이 지점에 이르기만 하면 육류가 지금보다 훨씬 비싸지고, 식물-기반 제품들이 더 싸지고 좋아지고 쉽게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러한 환경에서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빠르게 비건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소주의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제3장. 논증: 변화를 설득하는 방법
원문의 제목은 Arguments: How Do We Motivate for Change?
목표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비건 마을에 살게 만들기. 사람들은 다들 육식을 하며 다른 어딘가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 비건 마을은 산 정상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여길 오려하지 않는다. 산 중턱까지만 오라고 말할래도 동기부여가 필요한 상황.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
대부분의 비건은 윤리적 이유로 비거니즘을 실천하며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에서도 윤리적 근거를 주로 사용한다. 건강 등 다른 이유를 근거로 비거니즘을 설득하는건 정당하지도 않고 지속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윤리적 근거로 설득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영국/미국의 노예제는 윤리적 이유로 폐지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영국은 산업혁명 후 기계가 노예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게 알려지면서 노예제 폐지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에서 노예제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적은 북군이 승리한 덕이 크다. 포경(고래잡이)도 유사. 고래 기름보다 싼 대체품이 나온 덕분.
올바른 정보를 주면 사람들의 태도가 바뀔거라는 기대도 과대평가된 면이 있다. 정보가 주어져도 행동이 쉽게 바뀌지 않는 현상을 태도-행동 간극이라고 부른다. 지식과 행동의 불일치를 위선이라고 비판하기 보다는, 이들의 행동 변화를 막는 요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편이 생산적.
지식과 행동의 간극은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며, 사람들은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한다.
- 극히 일부는 행동을 변화시켜 비건이 된다
- 대다수는 육식을 유지하기 위해 믿음을 변화시킨다 (동물은 고통 없이 죽었을 것, 어차피 먹으려고 키운 것, 동물은 고통을 덜 느낌 등)
- 나머지는 불편한 진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말하지 마세요, 알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동을 먼저 변화시키면 이에 따라 태도가 변화하는 경우가 잦다. 인간은 이미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 방식에 능숙한 반면, 이성적으로 도출한 이유에 맞춰 행동하는 방식엔 미숙하기 때문(R. Abelson).
예를 들면 안전띠 착용이나 공공장소에서의 금연 등이 좋은 사례. 입법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에 반대했으나 입법 이후 강제로 행동이 변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태도가 변하기 시작. 전에는 병원이나 대학 강의실에서의 금연조차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걸 믿기 어려워할 정도로 대중의 인식이 변했다.
Hoffman et al., p 142에 따르면 건강 상의 이유로 육식을 줄인 사람 중 25%가 추후 윤리적 이유를 추가로 채택한다. Hamilton, p. 160 또는 Cooney 2014, pp. 74-75에서 소개하는 내용도 유사.
첫번째 핵심 주장: 어떤 이유이건 목적에 부합한다면 다 허용해야 한다. 건강, 환경, 기타 어떤 이유이건 사람들을 비건 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면 모두 수용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를 수용하도록 설득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이미 추구하고 있는 가치에 우리 메시지를 얹는 편이 더 영리한 전략. 행동이 바뀌면 이후에 태도를 바꾸기는 수월.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 건강이나 환경을 근거로 육식을 줄이라고 하면 닭이나 물고기 소비가 늘지 않을까? 1)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적색육 소비 감소가 닭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2) 보다 긴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육식도 하고 닭과 물고기도 먹는 집안의 아이보다 육식은 안하고 닭과 물고기만 먹는 집안의 아이가 추후 비건이 되기 더 수월. 3) 어차피 건강이나 환경과 관련된 기관들에서는 육식 대신 닭고기와 물고기를 먹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어젠다를 우리가 가져와서 닭과 물고기 소비도 줄이도록 프레임을 바꾸려면, 우리도 건강과 환경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 도덕 외적 근거는 지속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도덕적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채식을 하는 경우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사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을 유입시킬 수 있다는 점, 유입된 사람 중 일부가 이후에 도덕적 근거를 추가로 채택한다는 점, 중간에 멈춘 사람이 추후 다시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렇게라도 유입을 시키는 편이 좋다.
두번째 핵심 주장: 과거에 비해 비거니즘 실천이 쉬워지만 충분치 않다. 예를 들어 많은 비건용 대체 식품은 맛이 덜하거나 비싸거나 몇몇 지역에선 구하기 어렵다. 비건으로의 전환 비용을 낮추려면 대안이 더 다양하고 좋아져야 한다. 즉, 비건 마을에 좋은 게 많아야 사람들이 여정을 시작하기 쉽다는 뜻. 반대로 육류 섭취를 어렵게 만드는 전략도 유효. 축산업 관련자들은 오래 전부터 비거니즘 실천을 체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달걀 생산업자들은 식물 기반 마요네즈를 마요네즈로 표기하는걸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한 적도 있다. 우리도 이에 대항하는 각종 로비를 해서 육식이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면 매우 가치가 있을 것.
제4장. 환경: 실천하기 쉬운 환경 만들어주기
원문의 제목은 Environment: Making Things Easier.
3장에서 비거니즘 실천이 지금보다 더 쉬워지는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려하는 환경 만들기Creating A Facilitating Environmeny”를 줄여서 CAFE라고 부르자. CAFE란 비유하자면 비건 마을에 오려는 여행자들을 위해 길도 닦고 중간에 쉼터도 만들고 여행길에 필요한 식량도 지원하는 일.
환경을 만든다는건 “가장 옳은 일”이 “가장 하기 쉬운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 때론 아무 노력 없이도 저절로 옳은 일을 하게 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예를 들어 환경 파괴하는 구식 전구의 사용을 줄이는 쉬운 방법은 더 좋고 싼 대안을 개발하는 것이다. 만약 유럽에서와 같이 구식 전구 사용을 불법으로 만드는 법제화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이렇게 되면 그냥 합법적인 제품을 사는 당연한 행동이 “옳은 행동”이게 된다.
좋은 대안이 없으면 변화가 어렵다. 따라서 대안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에서 대안alternative이란 제품 뿐 아니라 서비스(마차를 이용하는 서비스 대신 자동차를 이용하는 서비스 등)도 포함. 개선improving이란 품질(맛, 식감, 건강 등) 뿐 아니라 가용성, 다양성, 가격 등도 포함.
대안 개선에 있어서 비건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중요한 아군. 비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그럴수는 없다. 그리고 상점에 비건 상품이 진열되는 것 자체로도 대중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들 기업이 가진 다양한 홍보 채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기업 자금으로 각종 로비도 가능해진다.
크게 두 종류의 기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번째는 파괴적 혁신을 노리는 스타트업. 이들은 기존 축산업을 완전히 개혁하는걸 목적으로 한다. Impossible Burger, Beyond Meat 등의 회사들이 이 범주에 들어가며, 이들은 대부분 비거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빌 게이츠 등 유명인의 투자로 인해 미디어 주목을 받는 점도 대중 인식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두번째는 독일의 Rügenwalder Mühle, 미국 기반 다국적 기업 Tyson 등 육류 대체 식품에 투자하고 있는 기존의 전통적 거대 축산기업.
동물을 학대하고 도살해온 거대 기업이 비거니즘에 관여하는게 거슬릴 수도 있을 것. 몇몇 비건들은 반자본/반금융/반상업 정서를 바탕으로 영리기업에 대해 회의적/냉소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태도는 대체로 정의와 평등에 대한 걱정 또는 기업의 탐욕과 권력욕에 대한 걱정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지나친 불신은 때론 비생산적이거나 좋은 기회를 잃게 만들기도 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영리기업은 정의상 영리에 의한 지속을 필요로 하기에 영리 추구 자체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들이 진실되고 투명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지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이들이 비거니즘에 투자하는 이유는 윤리적 이유라기 보다는 돈이 될거라고 믿기 때문이겠지만, 이들의 동기가 뭐건 간에 동물의 고통과 도축을 줄인다는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이들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동물에겐 이상주의와 선한 의지 이외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
거대 기업이 비거니즘에 투자하면 좋은 점들.
- 풍부한 연구개발/마케팅 예산, 유통/판매 채널: 회사는 무슨 재료가 유통되건 수익만 내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인프라를 비건 음식 보급에 함께 활용할 수 있다.
- 로비: 이들이 비건 음식을 통해 일정 비중 이상의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 육식을 장려하고 비거니즘 운동을 방해하는 로비 활동을 중단하게 될 것.
비거니즘 운동과 기업이 협력을 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저자가 창설한 단체인 Ethical Vegetarian Alternative는 채식하는 목요일Thursday Veggieday 캠페인을 벌였는데, 식물 기반 음식을 생산하는 업체와 협력을 했다. EVA는 식물 기반 음식이 건강과 환경에 좋다는걸 홍보해주고, 해당 업체는 EVA 캠페인에 금전 지원을 해주는 윈-윈 형태의 협력이 가능했다.
전통 육류 기업 Rügenwalder Mühle의 경우 정체성 혼란이라고 부를만큼 크게 변하고 있다. 이 회사는 4천만 유로 이상을 비건 제품 홍보에 투자했는데 이는 독일의 다른 모든 회사들이 비건 제품 홍보에 투자한 금액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이 회사는 또한 여러 비거니즘 단체를 지원하고 있고, 자사에서 생산하는 논비건 제품의 달걀 사용량을 줄이고 있으며, 비건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회사의 CEO는 20년 이내에 모든 제품에서 육류를 제거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기업은 적일까, 동지일까? 의심의 여지가 없다.
클린미트Clean meat라는 회사는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 동물 세포를 이용하여 고기를 생산한다. 잠재적으로 친환경적이고 건강하며 안전하다. 몇몇 이들은 이런 신기술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을 우려한다. 하지만 기존의 “전통적” 육류도 온갖 화학 약품, 호르몬, 전기적/기계적 도구 투성이며 전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논의에 있어서 “자연스럽다natural”는 개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식품과 관련된 논쟁도 유사.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GMO를 이용하여 동물 실험을 줄일 수 있고, 더 좁은 농지에서 더 영양이 풍부한 작물 경작이 가능. 원론적인 반대(유전자 조작이 자연을 거스른다)와 실용적/상황적 반대(거대 기업의 독점, 공공지식 및 자원의 사유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GMO의 경우 추가적 위험이 있어서 예방 원리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The precautionary principle with application to the GMO 참고 —ak)
활동가들은 비영리조직(NPO)을 설립하고 싶어하지만 영리 기업에도 장점이 많고 비영리-영리 이분법이 현실에 딱 맞지도 않는다. 이러한 이분법보다는 재무우선-변화우선 연속체 상에서 어디에 무게를 더 둘지를 고민하는 방식이 더 유익. 또는 유튜브, 블로그, 지역 식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만들며 변화에도 동참하는 방법도 있다.
목표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그 실천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Karen Davis와 Josh Tetrick은 모두 닭의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 K. Davis는 UPC라는 NPO를 설립하여 각종 교육 및 홍보 사업을 한다. J. Tetrick은 햄프톤크릭이라는 영리 기업을 만들고 달걀 없는 마요네즈를 개발한다.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NGO, 교육 기관, 병원, 보험업계 등 공략 대상은 매우 많다. 예를들어 ProVeg는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로비를 하여 이 단체의 탄소저감목표 중 하나로 독일에서의 가축 수를 현재의 50%로 줄이는걸 포함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인플루언서를 공략하는 것도 효과적. ProVeg는 의료전문가 및 의대생 수천명을 모아 채식과 건강 주제의 컨퍼런스를 성사 시켰다. 이러한 종류의 일을 추진하려면 이들을 이해하고 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들어 ProVeg는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동물권보다는 채식 옹호 단체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였는데, 이것도 유효한 전략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학교를 공략할 수도 있다. 미래의 비거니즘 활동가 양성할 수도 있고, 수많은 학생들이 “고기없는 월요일”에 참여하게 할 수도 있으며, 요리학교 학생 및 셰프들에게 비건 요리 가르칠 수도 있다.
법제화도 중요하다. 앞서 설명한 변화들은 CEO가 바뀌거나 정권이 바뀌면 순식간에 후퇴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법제화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식당이 자발적으로 금연식당임을 선포하는 것과 식당에서의 흡연을 아예 불법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에서는 모든 공공기관 구내식당이 비건 음식도 함께 제공하도록 법제화를 했다. 모든 육류 및 동물 상품에 건강세 또는 환경세를 부과하는 입법도, 논란은 있겠으나 확실한 방법 중 하나.
선택 설계를 활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은 비싼 상품을 고객 눈높이에 진열하여 고객이 비싼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우리도 같은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학교에서 매주 화요일엔 점심식사 기본 옵션을 비건식으로, 선택 옵션을 논-비건식으로 바꾸게 하는 실험을 해보았다. 단순히 기본 옵션을 바꾸는 것 하나 만으로도 매주 화요일엔 94%의 학생이 비건식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일주일 중 적어도 화요일에는 학생들이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저절로 ‘옳은 옵션’이 선택되는 것. 학생들은 언제든 선택을 바꿀 수 있으니 자유가 침해되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거부감도 없다.
한편, 거대기업이나 정치인 등을 움직이려면 전문성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일부 비건들은 큰 조직을 만드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조직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많이 쓰고, 여러 상황에 대하여 타협을 하게 되며, 때로는 적과도 협력을 하기 때문. 하지만 유권자와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큰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실용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
비거니즘 장려하는 환경을 만들면 누구나 보다 쉽게 비건이 될 수 있다. 기업에 대해 때론 압력을 행사해야 하지만 때로는 이들이 좋을 일을 하기 쉽도록 도울 필요도 있다. 제도/산업/구조/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면 전문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제5장. 지원: 한걸음 한걸음을 장려하기
원문의 제목은 Support: Encouraging Every Step.
5장에서는 비건 마을로의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격려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누구나 이들을 격려하고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다. 변화를 이야기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 엄밀한 비건이 아니더라도 동물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고, 엄밀한 비건이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그 목표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진짜로 동물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항상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진실을 말하기, 옳은 말을 하기, 논쟁에서 승리하기 등이 그 자체로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내가 옳은가, 내 말이 진실인가,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효과가 있는가does this work가 중요.
예를 들면 “고기는 살해다meat is murder”라는 슬로건을 종종 사용하는데,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 법적으로는 인간을 죽이는 것만 살해이기 때문에 고기가 살해라는건 틀린 말이다. 게다가 도축이 살해라는 뜻인지 육식이 살해라는 뜻인지도 모호하다. 결국 저 슬로건은 이미 비건인 우리들에게만 사실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고기는 살해다”라고 말하려면 청중이 “내가 살해자라고?”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해야 할텐데 그게 정말 효과적인 대화 방식인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대화를 할 때에는 당신이 아닌 청중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좋은 대화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 떠올려 보기 바란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대체로 그들은 당신에게 그들의 관심을 집중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것. 상대를 설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한다.
야냐(YANYA: You Are Not Your Audience, 당신은 당신의 청중이 아니다)를 항상 염두에 둘 것. 사람들에겐 사회적 위치, 나이, 교육 등 다양한 차이가 있다. 내 현재의 마음가짐과 상대방의 마음가짐이 같을거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설득 당했던 그 방식이 다른 사람 모두에게 통할거라 생각해서도 안된다. 당신이 논비건이라 가정하고 다음 상황을 숙고해보면 좋다:
- 당신이 유태인인데 비유태인 비건이 육식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는 상황은 어떤 느낌일까
- 당신이 유색인종인데 백인 비건이 동물의 처지가 과거 노예와 같다고 말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 ‘동물 시체’ 음식이 서빙된다는 이유로 크리스마스/추수감사절(한국으로 치면 설날/추석) 모임 참석을 거부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캐롤 J. 애덤스는 육식의 성정치 2장에서 어떤 용어는 특정 집단에 대한 억압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이 용어를 다른 대상에 전용하는 발화는 착취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위 예시에서의 유태인과 홀로코스트, 유색인종과 노예제도가 이 설명에 부합하는 사례인 것 같다. —ak)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잘 듣는 것. 사람들은 대화 내용을 잊더라도 당시에 느낀 감정은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대화 내용에 비해 방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 잘 듣는 기술이 특히 중요하다. 잘 못 듣는 사람 특징을 생각해보면 좋다. 이들은 말이 많고, 당신이 하는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고, 질문이 적고 대답에도 관심없고, 자신만의 새 주제를 계속 꺼낸다. 이렇게 대화해서는 안된다.
동물 활동가 핸드북에서는 상대방의 질문에 대하여 다른 질문으로 답하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이것도 좋은 전략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왜 비건이 됐어?”라고 물으면 “넌 왜 육식을 해?”로 되묻는 것. 이 방법의 장점은 이렇다.
- 질문을 던진 상대방이 스스로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상대방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고, 내가 그 대답을 잘 들어줄 수 있다. 그러면 상대방도 아마 나의 얘기를 들어주고자 할 것.
- 상대방의 대답을 통해 그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몰아세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논비건의 방어적 태도가 게으름과 무감각에서 기인한다 여기기 쉽지만 이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 자리에 동석한 사람 중 비건이 있다는걸 알게 되면 이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감정은 대화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Minson and Monin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이 자신보다 더 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그들에게 분개하고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려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도 한 번에 비건이 될 수 없었다거나 간혹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태도도 중요. 내가 상대방을 비판하고 있지 않은지 지속적으로 돌이켜보아야 한다. 내가 상대방의 모든 사정을 다 알 수 없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 자신의 불완전함을 상기하고, 자신도 과거에는 (아마도) 논비건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좋다. 또 상대가 비록 비건은 아니지만 다른 방면에서 도덕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려면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현대식 농법은 쥐, 새, 곤충을 지나치게 많이 죽이므로 스스로 기른 작물만 먹고 상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는 SV비건(superlocavore vegan)이 있다. 이 사람은 당신이 위선자라고 비판한다. 그는 도덕적인 삶은 최소한 자신의 삶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SV비건이 아닌 그냥 비건은 모두 부도덕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느낌이 드나?
이유 보다는 방법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대화 방식이다. 비건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다보면 토론이나 논쟁으로 흐르기 쉽다. 비건이 되는 방법에 집중하면 수월하다. 방법이란 대체로 비건 음식에 대한 것일텐데, 음식을 주제로 삼는 것에는 세가지 장점이 있다.
- 음식 문화는 동물 학대와 도살의 핵심 주제.
- 음식은 비거니즘의 핵심 자산이기도 하다. 음식만큼 잘 팔리고 사랑받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 때문.
- 음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할 수 있다.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함께 먹고 좋은 대안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 단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그들이 좋아할 음식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내가 소식을 하더라도 넉넉하게 준비하고, 내가 자극적인걸 싫어하더라도 그들의 입맛에 맞추는 식으로.
마지막으로, 비거니즘에 대한 더 포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줄이도록 하는게 전체 시스템을 변화시킬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포용적 비거니즘이 필요하다.
한 정체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상 모두가 비건이면 비건은 더 이상 정체성이 아니게 된다. 포함은 배제를 필요로 한다(inclusivity relies on exclusivity). MIT의 신경과학자 E. Bruneau에 따르면 집단 정체성이 강할수록 외집단에 덜 공감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비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정체성이기에 단어의 의미를 엄격하게 유지하고픈 욕구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외집단을 더 배제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비거니즘 운동의 경우, 모든 외집단은 언젠가는 내집단으로 끌어와야할 잠재적 동지이기에 모순이 발생한다. 외집단에 대하여는 되도록 포용적이어야 하는 반면, 내집단에서는 강한 정체성으로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모순된 요구가 존재한다.
한가지 해결책은 두 집단에 보낼 메시지를 구분하는 것. 외집단에는 실용적이고 포용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내집단에는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기. 단, 고려할 점들이 있다. 첫째, 외부인이 내집단에 새로 소속되기 위해 치러야할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는 안된다. 둘째, 외집단을 무시하거나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
불행히도 외집단 뿐 아니라 내집단 사람들에 대해서도 서로를 소외시키려는 경향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비건과 베지테리언, 건강으로 인한 비건과 윤리적 비건 등, 외집단에서 보기엔 거의 아무런 차이도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공격하고 배제하는 일이 잦다.
비건의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만들면, 외부에서 보기엔 비건들이 마치 동물 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걸 어렵게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결과가 우리가 고의로 의도한 바는 아닐 것. 자신이 충분히 포용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항상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건 및 비거니즘이라는 단어는 도널드 왓슨과 도로시 왓슨 부부가 처음 고안했다. 이들이 제안한 비거니즘은 상당히 유연했다:
비거니즘이란 모든 형태의 동물 착취를 가능하고 실용적인 한도 내에서 최대한 배제하려는 삶의 방식이다.
많은 비건들이 “가능하고 실용적인 한도possible and practical”라는 말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하곤 하는데 예를 들어 “비건이 된다는 것”을 마치 임신처럼 생각하곤 한다. 임신을 했거나 안했거나만 가능하지 “97% 정도 임신 했다”는 식의 말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97% 정도 비건이다”라는 말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 이러한 절대주의는 논비건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일관성은 물론 중요하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동물 상품 소비를 피하는건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 우리의 목적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도축을 줄이고 동물에 대한 부정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규칙이 가진 목적을 잊고 규칙 자체를 목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도그마에 빠지게 된다.
지나친 일관성은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비건이 되려는 친구가 나를 초대해서 비건식을 만들어줬는데 실수로 계란이 들어간 파스타 면을 쓴 상황을 상상해보자.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친구가 해준 음식에 손도 안대는 게 좋은 일일까? 그 친구가 오히려 비거니즘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게다가 완전한 일관성을 지켜봤자 그걸로 충분하지도 않다. 완전 비건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동물의 고통/도축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몇몇 비건 제품은 수확과정, 단일재배monocultures, 화학약품, 제초제, 기타 부상 등으로 인해 동물들에게 직접적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또한 완전한 일관성은 달성하기 불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 어디에 선을 긋던 완전치 않기 때문. 예를 들어 대부분의 비건은 직접 기른 작물만 먹는 SV비건(superlocavore vegan)이 보기엔 불완전하다. 또는, 돼지에서 얻어진 재료는 음식과 화장품 뿐 아니라 빌딩, 철도 브레이크, 사포, 담배 등 온갖 곳에 쓰이기 때문에 이걸 다 피하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관성에 대한 저자에 입장에 반론이 있을 수 있다.
- 일관성이 없다면 논비건들이 비건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어차피 비건은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비건 마을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명확한 일관성에 대한 중요성은 과대 평가된 면이 있다.
- 비거니즘 컨셉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지 않나: “거의 비건” 또는 “감소주의” 메시지를 허용한다면 이게 다 달성된 미래에도 여전히 일부 동물은 고통받을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지나치게 앞선 걱정일 뿐이다. 게다가 정말 저런 미래가 온다면, 그 시점엔 완전한 비건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 모범으로 삼을만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지나치게 완벽한 사람만이 비건일 수 있다면 논비건에겐 오히려 그게 너무 멀게 느껴져서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심지어는 논비건도 경우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마지막 반론에 대한 대답은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도 이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수용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엉망입니다. 난 모범적 사례가 되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난 완전한 사람이 되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답을 아는 척 하지도 않을 것이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난 그저 노력할 뿐입니다. 내가 믿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 세상에 무언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글을 쓰며 작은 소음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인용 끝)
비거니즘은 배제적이지 않고 포용적이어야 한다. “진짜 비건”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면, 동물 상품을 얼마나 완벽히 배제했느냐가 아니라 논비건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력을 주느냐에 기반한 개념이어야 한다. “비거니즘”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면, Watson 부부의 정의에 더하여 “효율성”을 추가하면 좋겠다. 일관성을 원한다면, 규칙에 대한 일관성이 아니라 목적에 대한 일관성이면 좋겠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한다면, 우리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이들을 아군으로 칭하면 좋겠다.
우리는 이 일을 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제6장. 지속가능성: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법
원문의 제목은 Sustainability. How to Keep on Keeping On.
사람들이 일단 비건마을에 도착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다시 떠나갈 수 있다. 비건인 사람이 계속 비건으로 남으려면, 활동가가 계속 활동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비건 및 베지테리언의 84%는 중도에 포기하고 육식으로 돌아간다. 주요 이유는 맛, 건강, 편의성 때문. 따라서 이러한 도움이 필요.
- 새로 비건이 된 이들에게 비타민 B12 등 건강 관련 정보 제공하기
- 이미 비건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므로, 윤리적 근거를 이야기하여 이들이 머무를 동기를 더 강화하기
- 4장에서 말한 채식 장려 환경을 만들고(CAFE), 육식이 오히려 더 비싸고 불편해지도록 만들기
다음은 활동가의 번아웃을 피하기 위한 조언들.
- 비건 세상을 만드는 일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이라는 점을 잊지 않기. 비건세상이 쉽게 올리 없다. 반드시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할 것
- 이 책에서 제시한 전략들을 잘 따를 것. 이 전략들은 효율적일 뿐 아니라 지속성도 고려한 전략들이다.
- 사람들을 설득한다는건 빈 바구니를 조금씩 채우는 것과 비슷하다. 바구니가 얼마나 찼는지는 밖에선 잘 안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노력하여 채우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흘러넘치며 변하는 것. 다른 사람의 바구니를 채우는 일이 당신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것.
-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말 것.
- 지나치게 화내지 말기.
- 무력감에 빠지지 말고 뭐라도 하기. 동물의 고통을 생각하며 비통함에만 잠겨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면 동물들도 더 행복해질 것.
- 감사하기. 비극 안에도 감사해야할 많은 일들이 있는 법.
- 당신도 동물임을 잊지 않기.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기. 충분히 쉬며 행복한 삶을 살기.
결론: 비건 전략 및 커뮤니케이션의 미래
원문의 제목은 Conclusion: The Future of Vegan Strategy and Communication.
지금까지 비건 운동에 적당한 실용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건이 되세요”에 더하여 “어떤 이유로건 육식을 줄이세요”라는 메시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종 로비/신상품/법제화 등 비거니즘 실천을 장려하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더 포용적인 비거니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시스템은 분명 바뀔 것. 비건 뿐 아니라 감소주의의 기여도 있을 것이며, 윤리적 이유 이외의 다양한 이유도 역할을 할 것. 일단 티핑 포인트를 지나면, 실용주의적 접근의 필요성은 점차 감소할 것이며 이 때에는 윤리적 이유를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건 마을은 산 정상이 아닌 계곡 근처에 있어서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게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