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be a conservative

Preface

영미권 보수주의는 영국과 미국이 공유하는 법적, 문화적 유산을 기반으로 발전. 특히 영국의 보통법 전통과 미국의 헌정 체계가 중시하는 ‘정부와 국민의 관계’가 보수주의에 독특한 맥락을 부여. 이러한 특징은 “Habeas corpus”와 같은 제도를 통해 정부가 국민을 섬기는 존재로서 제약받도록 했으며, 그것이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유의 본질’을 지키는 핵심 자산이 됨.

저자는 보수주의를 크게 두 종류로 구분. 하나는 신성한 것을 지키려는 ‘형이상학적 보수주의’, 다른 하나는 근대의 급격한 변화(종교개혁, 계몽주의 등)에 대응해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것들을 유지하자’는 실천적, 경험적 보수주의다. 여기서는 후자, 즉 근대 문명 속에서 형성된 현실적인 보수주의의 가치를 주로 다룬다.

결국 보수주의는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평화, 법치, 자유, 공동체 정신 등 ‘파괴는 쉽지만 창조는 어려운’ 집합적 자산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관한 태도다. 저자는 이러한 자산이 흔들리는 현실에서, 보수주의가야말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 이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애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것들을 적극적으로 옹호, 보호하기 위한 자세.


보수주의라는 용어가 유독 영미권에서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배경은 영국의 보통법 전통과 미국의 헌정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다뤄왔으며, 그것이 보수주의 정신과 깊이 연결된다.

The conservative temperament is an acknowledged feature of human societies everywhere. But it is largely in English-speaking countries that political parties and movements call themselves conservative.


중세 시절부터 내려온 Habeas corpus는 정부가 무리하게 국민을 구금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중요한 장치이며,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의 핵심 맥락을 보여준다.

A book (The Power of Habeas Corpus in America) has been written in America devoted to the medieval writ of Habeas corpus … The continuing validity of this writ, the author (Anthony Gregory) argues, underpins American freedom, by making government the servant and not the master of the citizen…. It (Habeas corpus) expresses, in the simplest possible terms, the unique relation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governed that has grown from the English common law. That relation is one part of what conservatives uphold in freedom’s name.


보수주의에는 신성한 것을 지키려는 형이상학적 보수주의와, 근대적 변혁(종교개혁과 계몽주의 등) 이후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제도와 전통’을 보전하려는 실천적, 경험적 보수주의가 있다. 이 책은 주로 후자의 현실적 측면을 다룬다. 전자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다룰 것.

There are two kinds of conservatism, one metaphysical, the other empirical. The first resides in the belief in sacred things and the desire to defend them against desecration. … In its empirical manifestation, conservatism is a more specifically modern phenomenon, a reaction to the vast changes unleashed by the Reformation and the Enlightenment.

The conservatism I shall be defending tells us that we have collectively inherited good things that we must strive to keep.

계몽주의 이전의 가치를 보호하고 싶어서 과학을 무시하고 종교를 더 신봉하는 걸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책 뒷부분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을 비판할 때 ‘세속적인 법과 (이슬람) 종교의 차이’를 언급하는 점이 모순적이다.


저자가 말하는 지켜야할 좋은 가치들:

The opportunity to live our lives as we will; the security of impartial law, through which our grievances are answered and our hurts restored; the protection of our environment as a shared asset, which cannot be seized or destroyed at the whim of powerful interests; the open and enquiring culture that has shaped our schools and universities; the democratic procedures that enable us to elect our representatives and to pass our own laws - these and many other things are familiar to us and taken for granted. All are under treat. And conservatism is the rational response to that threat.

다 좋은 말인데, 여기에서 “we”와 “our”에 누가 포함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백인 남성만 포함시키면 민권 운동이나 페미니즘은 보수의 가치에 반한다. 성별이분법에 순응하는 헤테로섹슈얼만 포함시키면 LGBTQ+ 운동은 보수의 가치에 반한다. 시대에 따라 “we”와 “our”의 테두리는 확장되어 왔는데, 보수는 언제나 이를 뒤늦게 수용하는 것 같다.


보수주의는 ‘좋은 것들은 쉽게 파괴되지만 다시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은 대중에게 ‘지루하게’ 들릴 수 있으나, 그만큼 실천 가능하고 안정적인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Conservatism starts from a sentiment that all mature people can readily share: the sentiment that good things are easily destroyed, but not easily created…. The work of destruction is quick, easy and exhilarating; the work of creation slow, laborious and dull. That is one of the lessons of the twentieth century. It is also one reason why conservatives suffer such a disadvantage when it comes to public opinion. Their position is true but boring, that of their opponents exciting but false.

그런데 그 좋은 가치들을 실제로 파괴하는 주체가 보수주의자들인 이유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동, 윤석열 지지자들의 법원 난동 등.


보수주의자들이 때로 ‘잃어버린 전통을 탄식’하는 모습으로 비치곤 하지만, 저자는 회고적인 아쉬움에 머무는 것보다 지금 지켜야 할 유산에 집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록 세상이 변해가더라도 보수주의는 소중한 것들을 끝까지 붙들고 개선하려 한다는 의미다.

It is not about what we have lost, but about what we have retained, and how to hold on to it.

Chapter 1. My Journey

지식인 세계에서 보수주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 어려운 현실을 소개하며 개인적 배경과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보수주의적 시각을 형성했는지 풀어냄. 아버지는 노동당 지지자이자 강한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졌으나, 동시에 ‘영국 시골과 옛 건축 양식을 보존해야 한다’는 보수적 마음을 보여줌. 이를 통해 저자는 “무언가를 보존한다는 것은 언제나 옳다”라는 기본 태도를 배웠고, 이후 문화적 보수주의에서 정치적 보수주의로 사유의 폭을 확장.

1968년 파리의 학생 운동에서 저자는 “부르주아” 문명을 전복하려는 급진적 사상에 위협을 느꼈고, 소련 및 동유럽의 실상을 직접 접하면서 ‘사회주의 체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 결과, 영국 내부에서도 진보적 지식 사회가 공유하는 반보수적 정서가 단순한 이념 문제가 아닌, 인간의 자유와 공동체의 근본 가치를 잠식할 수 있는 위험임을 인식.

저자는 마거릿 대처 시대에 등장한 시장경제, 개인 자유, 민족적 충성심이라는 기치를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동체와 전통이야말로 보수주의의 참된 근거”임을 강조. 동시에 다문화 및 이민 문제, 유럽연합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등 다양한 현대적 도전에 맞서 ‘기독교적 관용과 법치를 지켜온 유산’을 지키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흔하지만, 지식인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흔치 않다며, 영국 및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학계가 대체로 좌파 성향임을 지적. 특히 전통적 가치나 서구 문명의 높은 성취를 옹호할 때면, 주변 문화가 이를 ‘반포용적’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을 언급.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마치 ‘프루스트 소설 속의 동성애자들처럼’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정체를 숨겨야 하는 처지라고 말한다.

In both Britain and America some 70 per cent of academics identify themselves as ‘on the left’, while the surrounding culture is increasingly hostile to traditional values, or to any claim that might be made for the high achievements of Western civilization…. In intellectual circles conservatives therefore move quietly and discreetly, catching each other’s eyes across the room like the homosexuals in Proust, whom that great writer compared to Homer’s gods, known only to each other as they move in disguise around the world of mortals.

계몽주의 이전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려는 저자가 동성애자의 처지를 비유로 갖다 써도 되는건지 의문.


저자는 하층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교사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노동조합 및 노동당 활동을 하면서도, 영국 농촌과 전통 건축을 보호하고 보존하려는 강한 보수적 정서를 공유. 아버지는 사회주의의 계급투쟁 서사를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보존해야 할 가치에 깊은 애착을 보임. 저자는 이를 통해 사회주의가 갖는 이념적 꿈과, 실제로 지키고픈 전통 사이의 복합적 심리를 경험한다.

He believed, as he did, that the modernist styles of architecture … were also destroying its social fabric; and I saw … that it is always right to conserve things, when worse things are proposed in their place.


젊은 시절 저자는 예술, 문학, 철학 등 ‘문화’에 대한 보수주의적 입장을 지니고 있었음. 학창 시절 T. S. 엘리엇의 시나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과거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근대성과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통찰을 얻었음.

This idea, that we must be modern in defence of the past, and creative in defence of tradition had a profound effect on me.


1970년대 말 영국이 경제적, 문화적 침체에 빠져 있을 때 마가렛 대처가 보수당 대표로 등장. 저자는 대처가 시장경제, 개인 자유, 국가주권, 법치 등을 내세우면서 학계로부터 강한 증오를 받았지만, 반대로 대중의 지지를 이끌었다고 평가. 비록 대처의 이론적 토대가 빈약했다는 점 등을 언급하면서도, 대처가 진정 옹호한 것은 자유 아래에서의 공동체와 전통이라고 정리.

Margaret Thatcher appeared, as though by a miracle, at the head of the Conservative Party. I well remember the joy that spread through the University of London. At last there was someone to hate!


저자는 자신이 창간한 보수지 “Salisbury Review”에 다문화 포용적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한 교장 선생님의 기고문을 실어주었다가 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BBC와 The Observer 등 언론에 시달리다가 결국 대학을 그만둠.

But things took an explosive turn when Ray Honeyford, headmaster of a school in Bradford, sent me an article advocating the integration of the new minorities through the educational system, and lamenting the isolationism of the Pakistani families whose children he was striving to teach. I published the article and immediately the thought police got wind of it….

After a particularly frightening episode in which I was chased from a public lecture in the University of York, and following libels by the BBC and The Observer I decided to leave the academic world and live by my wits.

상대를 무작정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대신 좀 더 합리적인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


공산주의 몰락 후 동유럽 민주화 과정에서 EU의 무분별한 확대는 인재 유출 및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심화시킨다고 주장. EU는 또한 기독교 유산을 헌법에서 배제하고,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 문명을 위협한다고 지적.

It has led to the mass emigration of the professional classes, and to the loss of the educated young from countries that stand desperately in need of them….


저자는 이슬람 근본주의는 국가나 지역 공동체 정체성보다 종교적 충성이 우선된다는 점, 서구 문명의 핵심인 책임, 관용, 사법 체계를 부정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민주주의와 갈등할 수 있다고 주장. 유럽 문명의 토대에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책임, 용서, 참회 등 기독교적 윤리가 법치와 사회의 안정에 기여했다고 주장.

Boundaries arise through the emergence of national identities, which in turn require that religious obedience take second place to the feeling for home, territory and settlement…. That civilization is rooted in Christianity … Confession and forgiveness are the habits that made our civilization possible.

전형적인 지배자의 논리.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에 사는 기독교인은 사회체제와 자신의 종교가 일치되기에 종교를 ‘두번째 위치(second place)‘에 놓을 필요조차 없음. 유럽에 사는 이슬람교도는 종교를 ‘두번째 위치’에 놓도록 강요받거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을 받음. 한편 이들이 살던 곳으로 못 돌아가는 이유는? 상당 부분 유럽의 과거 제국주의+현재 계속되는 경제적 착취 탓.


보수주의란 지금 우리가 가진 가치와 제도를 지켜 후대에 전수하기 위한 태도.

We are the collective inheritors of things both excellent and rare … to pass them on to our children.

Chapter 2. Starting from Home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원하지만, 이는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사익 추구가 시장 질서를 형성할 수 있지만, 그 배경에는 반드시 신뢰와 책임, 도덕적 의무가 뒷받침돼야 한다. 시장적 계산만으로 정치적·사회적 질서는 완성되지 않고, 희생의 가능성을 지닌 인간 본성, 그리고 이러한 본성이 자라날 수 있는 문화적·전통적 환경이 있어야 자유와 질서가 양립한다는 것.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를 계약이나 계획에 기반한 ‘합리적 구조물’로 파악하는 시도(혁명적 사회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에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고 본다. 버크(Edmund Burke)가 말했듯이, 사회는 ‘과거-현재-미래’가 연결된 유기적 공동체이자, 어느 한 세대가 자기 목적을 위해 함부로 소진할 수 없는 ‘공동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족·지역사회·학교·교회 등에서 ‘얼굴을 맞대고’ 형성되는 애정과 책임감이 필요.

이런 바탕에서 전통은 단순히 낡은 관습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축적된 ‘문제 해결의 지혜’이자 ‘암묵적 지식’으로 봐야 함. 이를 파괴하거나 자의적으로 고쳐 쓰면, 겉으로는 진보나 평등을 추구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회가 의지하던 근본적인 ‘조정 능력’이 상실돼 큰 혼란이 온다고 주장. 따라서 인간이 누구와 함께 어디에 속해 있는가(‘소속’의 문제)야말로 사회계약 이론을 지탱하는 실제적인 전제 조건이며, 이를 지속적으로 돌보고 가꾸는 것이 보수주의적 관점의 핵심.

결국 보수주의는 ‘오래된 방식’을 무조건 옹호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증명해준 지혜와 공동체의 연속성을 수호하는 태도. 그런 공동체 의식이 깨질 때, 교육·경제·법 등 모든 제도는 ‘도구화’되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고 경고.


현대인은 수많은 낯선 이들의 행위에 의존해 살아가지만, 이것이 곧 질서와 협조로 이어지려면 자연스러운 신뢰와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함.

We live in great societies, and depend in a thousand ways on the actions and desires of strangers.


애덤 스미스 국부론을 언급하며 ‘개인의 이익 추구’가 시장의 자원 분배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주장을 소개. 하지만 저자는 이 이익 추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상호 신뢰, 책임, 도덕성이 선행되어야 함을 지적. 경제 질서는 결국 도덕적 기반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음.

A market can deliver a rational allocation of goods and services only where there is trust between its participants, and trust exists only where people take responsibility for their actions and make themselves accountable to those with whom they deal…. Economic order depends on moral order.


스미스의 또 다른 저작 도덕감정론을 근거로, 인간에게는 동정심(sympathy)을 발휘해 서로를 책임지는 면이 있으며, 이 자발적 ‘희생’이나 ‘배려’가 바로 자본주의가 제 기능을 하게 만드는 전제 조건임을 강조. “어떤 사회든 이기심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라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It is where sympathy, duty and virtue achieve their proper place that self-interest leads, by an invisible hand, to a result that benefits everyone.


저자는 인간이 단지 자기 이익만 극대화하는 ‘경제적 인간(homo oeconomicus)’ 모델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 인간은 이익 추구를 넘어, 근원적 두려움·수치심·죄책감·정의감 등 다양한 동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 사회에는 ‘자발적 희생’이란 요소가 존재함.

We are not built on the model of homo oeconomicus – the rational chooser who acts always to maximize his own utility, at whatever cost to the rest of us…. We are subject to motives that we do not necessarily understand…. Some of them … are adaptations that lie deeper than reason. Others … arise from reason itself…. At both levels … the capacity for sacrifice arises.


혁명적 사회주의가 범한 오류는 ‘정치 질서’를 경제나 계획의 문제처럼 다룬 데 있다고 지적. 이와 대조적으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며, 사회를 ‘죽은 이, 살아있는 이,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연대’로서 설명. 즉, 우리가 물려받은 것을 함부로 소비해서는 안 되고,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물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

Burke saw society as an association of the dead, the living and the unborn. Its binding principle is not contract, but something more akin to love.


버크가 프랑스 혁명가들을 비판한 핵심은 과거 세대가 남겨놓은 학교·교회·병원 등 공익을 위해 저축된 자산을 현세대의 임의적 목적을 위해 탕진했다는 점. 이는 결국 미래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파괴로 이어짐. 저자는 이후 다른 혁명들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고 말함.

Through their contempt for the intentions and emotions of those who had laid things by, revolutions have systematically destroyed the stock of social capital….


사회적 질서는 ‘위에서 주어진 목표’를 위해 개인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족·학교·직장·지역사회 등 일상적 인간관계 속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돼야 함. 강력한 중앙 정부가 모든 걸 지휘하면, 개인의 책임 의식은 사라지고, 결국 서로에게 무관심해져 버릴 수 있음.

When society is organized from above … accountability rapidly disappears from the political order, and from society too.


전통을 단순히 오래된 관습으로 치부하면 안 되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형성된 해결책으로 봐야 함. 전통은 왜 그런지 명확하게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실제로 구성원들이 협조하고 살아가는 데 핵심적 지식이 되기 때문. 에드먼드 버크가 말한 ‘편견(prejudice)’은 근거 없는 오류가 아니라, 이전 세대가 실제로 터득해온 ‘이유 있는 편향’으로 봐야 함. 즉, 개인이 가진 논리적 추론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사회가 축적해온 경험과 지혜(전통)는 훨씬 방대하다는 것.

In discussing tradition, we are not discussing arbitrary rules and conventions. We are discussing answers that have been discovered to enduring questions…. Though the stock of reason in each individual is small, there is an accumulation of reason in society that we question and reject at our peril.

저자는 전통을 문화적 진화 과정에서 얻어진 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진화적 시간 지연으로 인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보수주의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통’을 고수하느라 진화적 시간 지연 문제를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지나친 진보주의는 이상적 합리성만 추구하다가 생태적 합리성을 훼손할 수 있다. 저자는 후자를 비판하지만 전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정치철학의 고전적 전통(홉스, 존 로크, 존 롤스 등)은 ‘사회계약’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설명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빠졌다고 지적. 그건 바로 “이미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we)이 있다”는 전제 조건이 사회계약 자체보다 앞선다는 것. 또 미래 세대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계약 이상의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

The social contract requires a relation of membership…. We can make sense of the social contract only on the assumption of some such pre-contractual ‘we’.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미국 건국 당시 원주민은 왜 ‘우리’에 들어가지 못했나?


저자는 이러한 ‘소속감과 연대감’을 “oikophilia(집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로 부르며, 인간이 이걸 통해 공동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거나 자원을 아낄 동기가 생긴다고 주장. 공동체를 단지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장처럼 여긴다면, 환경 파괴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고 지적.

Human beings, in their settled condition, are animated by oikophilia: the love of the oikos … that is what conservatism is about.

하지면 현대 사회에서 사익 극대화에 매몰되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이들은 정작 왜 보수주의자들인지? 왜 트럼프와 머스크는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나? 왜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있나?


이에 반해 사회를 ‘목적 지향적’(enterprise association)으로만 이해하면, 그 목적이 사라지는 순간 한꺼번에 붕괴되는 위험이 있다고 비판. 오크숏(Michael Oakeshott)의 개념을 인용. ‘시민적 결사(civil association)’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서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기업형 결사(enterprise association)’는 특정 목표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다 보니 목표가 사라지거나 달성되지 않으면 함께 붕괴된다는 것.

The work of the secret police was to control and if possible prevent free association, so that society would be entirely atomized by suspicion and fear…. People discovered, in their personal lives, that civil society is not goal-directed.


거대 담론(예: “진보”, “성장”, “평등” 등)으로 사회를 위에서 통제하려고 들면, 각 공동체가 본래 지니던 고유의 목적이 훼손됨. 예컨대,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학교 교육을 과도하게 개혁하면, 본래의 ‘지식 전달’ 기능이 훼손되고 오히려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사례가 있음.

When pursued for its own sake, however, knowledge ceases to be common property…. We should not be surprised, therefore, at the educational decline … since the egalitarian agenda was imposed on the schools.

당장의 결과를 극대화하는 전략과 당장의 결과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미래의 결과가 좋아질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 사이에서의 고민이 필요한데(Exploration-exploitation dilemma), 위 주장은 당장의 결과를 극대화하는 관점에 치우친 느낌이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보수주의의 가치(미래 세대와의 연결성을 생각하기)에 반한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가 이주, 혼종 문화, 상업화 등으로 인해 ‘정착(settlement)’이 어려워졌다고 말함. 그러나 “보수주의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소속돼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도 그 틀 안에서 유지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

How, in a world of fungible relationships, ubiquitous commercialization, rapid migration … can conservatives draw the line at the things that should not be changed?

남들이 잘 “정착”해서 살던 지역에 무력으로 침범하여 식민지로 삼고 국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설정하고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놓고선, “정착”을 운운한다. 소위 ‘급격한 이주’ 문제의 근본 원인은 누구에게 있나?


엔트로피 법칙처럼 결국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보수주의는 무의미하지 않다. 당장 지킬 수 있는 걸 최대한 지키고, ‘가능한 한 늦추는 것(delay is life)’이 우리의 현실적 의무라는 것. ‘지키려는 태도’ 자체가 인간 사회를 좀 더 오랫동안 윤택하게 한다고 주장.

The transience of human goods does not make conservatism futile, any more than medicine is futile, simply because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 ‘delay is life’.


이 장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보수주의란 애착의 철학”이라는 점. 세상은 계속 변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것들–예컨대 신뢰, 책임, 전통, 소속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변화는 늦추고 걸러내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 저자는 앞으로 이 ‘애착의 철학’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겠다고 시사.

Conservatism is the philosophy of attachment … we must study the ways in which we can retain them … so that our lives are still lived in a spirit of goodwill and gratitude.

Chapter 3. The Truth in Nationalism

프랑스 혁명 당시 대두된 ‘국민(nation)’ 개념이 어떻게 개인의 충성 대상이 되고, 이후 유럽에서 ‘국민국가’가 근대 정치질서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살핌.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국가는 민족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구성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확산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유럽 지식인과 정치계 일부에서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전쟁을 유발한다는 인식이 커졌고, 이를 넘어서는 초국가적(초국민국가적) 통합체로서 유럽연합이 탄생.

저자는 국가는 종교나 인종이 아닌 공유된 ‘영토’와 ‘역사’로부터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속해 있다”는 1인칭 복수의 정치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며, 바로 이 ‘국민국가’가 세속적 법(territorial jurisdiction)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 즉, 시민들이 서로 “이웃(neighbour)”로서 협력하고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단위가 국가.

종교적 법(shar‘iah 등)은 신적 권위를 기반으로 영속성과 절대성을 표방하지만, 동시에 사회 변화를 탄력적으로 수용하기 어렵고, 일단 ‘신의 뜻’으로 간주되면 개정 자체가 곤란해짐. 이에 비해 세속법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므로 사회 변화에 맞춰 수정,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그 결과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견 차이를 존중하고 타협하는 절차가 마련되며, 이는 곧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초가 됨.

유럽연합을 예로 들면, 조약(treaty)으로 구성된 초국가적 기구는 국민의 직접적 동의나 ‘공동체 의식’ 없이 작동하므로 정당성 위기에 놓인다고 진단. 반면 미국은 연방제 수립 이후 “새로운 국민”으로 통합됨으로써 연합이 아닌 ‘국민국가’가 되었고, 여기서는 영토와 공통 언어를 기반으로 한 법체계가 수립되었다고 설명. 이처럼 국가는 개인의 소속감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공유된 토대(shared home)’로서 작동한다는 것이 핵심.

저자는 “국민국가”는 그 자체가 새로운 종교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어 과열되면 위험하지만, 온건한 형태의 국가 정체성은 오히려 민주주의와 자유의 전제조건임을 역설하고, 서구 내부의 ‘문화적 자기부정(culture of repudiation)’이 민족 정체성을 약화시켜 초래되는 정치적 공백을 지적. 동시에 이슬람주의(특히 신정정치)와 달리 서구 전통은 개인과 자유의 영역을 중시하는 세속적(탈종교적) 질서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에 대한 충성이 모든 정치적 권위의 핵심이 됨. 나폴레옹 전쟁으로 ‘국민’ 개념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다양한 민족 및 언어 집단이 충돌했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국가주의가 전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됨.

The nation is prior to everything. It is the source of everything. Its will is always legal … its will is always the supreme law….

By the time that peace was established after 1945, with Germany in ruins and the nation states of Eastern Europe firmly under Soviet control, a kind of consensus was emerging among the new political class – the class that was tasked with the reconstruction of the defeated nations. According to this consensus, Europe had been torn apart by nationalism, and the future of the continent could be guaranteed only if the national loyalties that had caused so much belligerence were quietly and discreetly replaced by something else. Just what that something else was to be is another question, and the question was buried so deeply in the process of European integration that it is no longer possible to answer it.


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국적 기구인 유럽연합이 탄생.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국민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합의를 얻지 못했고, 이후의 과정을 통해 그 정당성 문제가 드러남.

By the time that peace was established after 1945, with Germany in ruins and the nation states of Eastern Europe firmly under Soviet control, a kind of consensus was emerging… According to this consensus, Europe had been torn apart by nationalism, … replaced by something else.


저자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국가주의’와 ‘시민의 일상 속에서 자리 잡은 온건한 국민의식’을 구별. 전자는 종교를 대체하는 일종의 절대적 숭배나 구원의 약속, 후자는 역사와 영토를 함께하는 사람들 간의 연대감에 더 가까움.

It occupies the space vacated by religion… it does exercise it; any procedure is adequate, and its will is always the supreme law. … But it is not the idea of the nation as this features in the ordinary day-to-day life of the European people.


민족(국민) 정체성이 자유, 특히 표현의 자유와 같은 중요한 권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됨. 종교적 권위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다른 생각을 공적으로 표출하기 어렵지만, 서구 전통에서는 세속적 법과 시민사회의 존재가 개인의 자유를 지켜줌. 법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이며, 지역공동체의 합의로 성립된 것이기에 신성불가침한 종교적 율법과 다름.

In states founded on religious, rather than secular, obedience, freedom of conscience is a scarce and threatened asset… we manage our affairs in this world by passing our own laws, and that these laws are man-made, secular, and if possible neutral….

저자는 2장에서 “전통의 수호”를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말했지만 여기에서는 종교과 달리 세속법은 “바뀔 수 있기에”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보수주의를 합리적/일관적으로 옹호하려면 어떤 가치를 얼마나 오랜 세월 수호할 것인지를 정하는 기준이 필요할 것으로 보임. 결국 진보주의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바꾸고, 이슬람 국가는 너무 많은 것을 느리게 바꿔서 문제라는 말이 아닌지.


가족 내에서는 의견 차이가 있어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상호 의존적 유대가 있기 때문에 갈등을 조정할 수 있음.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주장이 보장되려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확인해주는 공통의 정체성이 필요하고, 종교가 아닌 영역에서 그것을 제공하는 게 바로 국민국가.

Opposition, disagreement, … all presuppose a shared identity… That is why democracies need a national rather than a religious or an ethnic ‘we’…. The nation state, as we now conceive it, is the by-product of human neighbourliness… shaped by an ‘invisible hand’ from the countless agreements between people who speak the same language….

역시나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2차 세계대전 후 EU는 초국가적 통합으로 평화를 이루려 했지만, 조약(treaty)만으로는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우리’를 구축하기 어렵다고 지적.

The Union is founded in a treaty, and treaties derive their authority from the entities that sign them. Those entities are the nation states of Europe … The Union … suffers from a permanent crisis of legitimacy.


미국은 연방 체제를 만들면서 새로운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 성공. 사람들을 ‘인종·종교적 정체성’이 아닌 ‘공동의 땅에 사는 이웃’으로 묶어내, 영토 기반의 세속법을 정착시킴.

Under the American settlement, people were to treat each other, first and foremost, as neighbours… Their loyalty to the political order grew from the obligations of neighbourliness….


서구 지식계에서는 서구의 역사와 전통을 해체 및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로 인해 국가 정체성 자체가 부정적으로 다뤄지기도 한다는 문제를 지적. 하지만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건하고 자발적인 형태의 애국심과 국민 정체성이 유지되어야 함.

Take any aspect of the Western inheritance of which our ancestors were proud, and you will find university courses devoted to deconstructing it.


저자는 일방적인 국가주의는 위험하나, 국민국가라는 틀은 현대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는 데 핵심임을 역설. 이를 통해 합의와 타협, 그리고 개인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작동한다는 것.

Anybody who understands what is at stake … will, I believe, come to see that the nation is one of the things that we must keep.

Chapter 4. The Truth in Socialism

Chapter 5. The Truth in Capitalism

Chapter 6. The Truth in Liberalism

Chapter 7. The Truth in Multiculturalism

Chapter 8. The Truth in Environmentalism

Chapter 9. The Truth in Internationalism

Chapter 10. The Truth in Conservatism

Chapter 11. Realms of Value

Chapter 12. Practical Matters

Chapter 13. 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 but Admitting L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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