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셉티브 패턴의 역사

디셉티브 패턴 또는 다크패턴이란 “사용자의 자율성, 의사결정, 선택에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디셉티브 패턴의 역사 및 관련 논의를 정리해보았다.

다크 패턴? 디셉티브 패턴?

2010년에 처음 제안된 용어는 원래 ‘다크 패턴dark patterns’이었는데 ‘다크dark’를 부정적 의미로 쓰는 건 포용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지적에 따라, 이후에 ‘디셉티브 패턴deceptive patterns’, ‘대미징 패턴damaging patterns’ 등의 대안이 제안되었다. 다크 패턴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했던 해리 브리그널은 다크 패턴 대신 디셉티브 패턴으로 부르길 권하고 있다.

다만 법률적으로 ‘디셉티브’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예: 미국 공정거래위원회는 기만deception과 조작manipulation을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좀 더 정확히 말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deceptive and/or manipulative patterns”라고 쓰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브리그널의 제안에 따라 ‘디셉티브 패턴’이라고 쓰겠다.

정의

디셉티브 패턴은 해리 브리그널이 2010년에 Dark Patterns: dirty tricks designers use to make people do stuff라는 글을 쓰면서 처음 제안했다.

보통 우리는 나쁜 디자인이 게으름, 실수, 미숙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디자인 패턴을 안티패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나쁜 디자인 패턴도 존재한다. 사용자를 속여서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디테일에 꼼꼼하게 신경을 쓴 디자인들이 있다. 이는 디자인의 어두운 측면인데 아직 이런 종류의 패턴을 부르는 말이 없으니 다크 패턴이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Normally we think of bad design as consisting of laziness, mistakes, or school-boy errors. We refer to these sorts of design patterns as Antipatterns. However, there’s another kind of bad design pattern, one that’s been crafted with great attention to detail, and a solid understanding of human psychology, to trick users into do things they wouldn’t otherwise have done. This is the dark side of design, and since these kind of design patterns don’t have a name, I’m proposing we start calling them Dark Patterns.

디자인 패턴이란 좋은 디자인을 돕는 재사용 가능한 해법 모음을 말한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제안한 개념인 패턴 언어에서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도시 및 건축 설계 분야에서 쓰이다가 소프트웨어 설계 및 인터페이스 디자인 분야로 확장되었다.

안티 패턴은 디자인 패턴과 반대되는 뜻으로, 자주 반복되는 나쁜 해법 모음을 말한다. 안티 패턴은 게으름, 실수, 미숙함 등의 결과라면 디셉티브 패턴은 의도적이라는 점에서 구분이 된다.

확산

브리그널의 2010년 첫 제안 이후, 각종 사례/판례/관련 글을 모아둔 공식 사이트가 만들어졌으며, 2023년에 그동안의 논의를 모아서 같은 이름의 책 디셉티브 패턴: 기술 기업들이 당신을 통제하려고 쓰는 술수들이 출판됐다.

역사

웹사이트에 나열된 패턴들을 비롯하여 현재 디셉티브 패턴에 대한 논의들은 주로 사용자의 눈에 드러나는 표면, 즉 UI에 치중된 면이 있다. 하지만 비윤리적 디자인은 추천 알고리즘처럼 사용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뒷면에도 숨어 있고, 소셜 미디어에 연결된 다른 사람을 활용하는 사회공학적 방법처럼 더 교묘한 형태로도 존재한다.

관련 논의와 역사를 조금 폭넓게 살펴보자.

1970년. 인간-컴퓨터 인터랙션의 태동기

1974년,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센터에 응용정보처리심리학(AIP; Applied Information Processing Psychology Project)라는 작은 그룹이 만들어진다. 이 그룹의 성과는 훗날 HCI 분야의 바이블로 불리게 되는 1983년 저서 The psychology of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다.

프로젝트 그룹의 주된 관심사는 처리할 과업이 주어져 있는 상황에서 해당 과업을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일에 있었다. 심리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인간의 동기, 욕구, 정서, 설득 등과 같은 주제는 논외였다. 당시 HCI 연구자들은 인간의 뇌를 정보처리 기계로 간주하는 관점인 정보처리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 동기 및 개인성 등의 문제는 논외이다. 응용심리학에 이러한 주제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현존하는 관련 지식들을 어떻게 잘 통합하면 좋을지 명확하지 않다.

… motivational and personality issues are not included. Again, there is hardly any doubt of the desirability of including them in an applied psychology, but it is unclear how to integrate the relevant existing knowledge of these topics.

—Chapter 1, The psychology of human-computer interaction

이러한 이유에서, HCI의 태동기에는 관련 논의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전통적인 정보처리이론에서 벗어난 HCI 연구는 199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미학-사용성 효과aesthetic-usability effect에 대한 연구는 1995년에 발표되었고, 도널드 노먼의 이모셔널 디자인은 2003년에 출간된다.

1997년. 캡톨로지Captology

기존까지의 디자인이 사용자가 하려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이었다면, 사용자로 하여금 디자이너가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설득하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B. J. 포그의 제안으로 열린 CHI 1997 Captology SIG(Special Interest Group)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앞에서 말한 전통적인 정보처리이론에서 벗어난 관점이다.

포그가 제안한 캡톨로지(captology)는 “컴퓨터를 활용한 설득 기술Computer as a Persuasive Technology”의 줄임말이다.

캡톨로지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HCI 이론을 더 풍성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터랙티브 기술을 더 잘 디자인하도록 이끌 수 있다. 특히 사용자가 스스로에게 더 이로운 행동을 하도록 설득하는 방향의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

An understanding of captology would not only enrich HCI theory about how humans interact with computers, but it would also lead to better design of interactive technologies, especially those that have the task of persuading users to change in beneficial ways.

위 제안에 따르면 포그는 캡톨로지가 선한 의도로 쓰이길 기대했던 것 같다.

이듬해인 1998년, 그는 Persuasive Computers: Perspectives and Research Direction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컴퓨터가 도구tool, 매체media, 사회적 행위자social actor 등 세 가지 기능을 한다고 분석하고 이를 “Functional Triad”라고 이름 지었다. 세가지 측면 각각에는 서로 다른 설득적 어포던스가 존재한다.

  • 도구 측면의 설득적 어포던스: 시간/노력/비용 등 장벽을 줄여주기, 자아효능감을 높여주기,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 제공, 멘탈 모델 바꾸기
  • 매체 측면의 설득적 어포던스: 직접적인 학습/통찰/시각화 등을 제공,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를 도움, 경험과 감각을 통한 동기 부여
  • 사회적 행위자 측면의 설득적 어포던스: 사회 규범을 수립, 사회 규범을 회상케 함, 사회적 지지 또는 제재 역할을 제공

포그가 기대했던 캡톨로지의 ‘선한’ 활용 사례는 아래와 같다.

  • 개인: 사람들이 더 책임있는 성관계를 하도록(피임 등) 교육하기
  • 가족: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서 가족 구성원이 더 화목해지게 만들기
  • 조직: 원격 근무 시스템을 개발하여 직원의 만족도를 높이고 직장에 더 오래 다닐 수 있도록 하기
  • 커뮤니티: 차량 공유를 장려하여 교통 문제를 완화하고 대기 오염을 줄이기

물론 포그가 순진하게 캡톨로지의 순기능만 생각했던 건 아니다.

… 설득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의 윤리적 함의를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설득 컴퓨팅 윤리에 대한 연구는 가치있고 중요하다.

… those who study persuasive technologies should have a sound understanding of the ethical implications of this field. A subfield on the ethics of persuasive computing is a worthy and important endeavor.

그는 이미 슬롯 머신에 컴퓨터를 접목하여 더 중독적인 도박 경험을 제공하기, 컴퓨터로 직원의 웹 활동을 감시하기 등 악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참고로 슬롯 머신에 대한 우려는 당시 기준으로도 ‘예언’이 아니라 한참 전부터 실현되고 있었다. 행동 중독을 유도하기 위한 카지노 산업에서의 오랜 노력에 대해서는 Natasha Dow Schüll의 2012년 저서 Addiction by design에서 정말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읽어보길 권한다. 도박 산업은 디셉티브 패턴과 중독적 디자인의 최전선이다.

1998년에 그는 스탠퍼드 설득 기술 연구소Persuasive Technology Lab을 설립하고 연구를 이어간다.

2002년. “컴퓨터를 활용하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포그는 2002년에 설득 기술: 컴퓨터를 활용하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를 출간한다. 그가 캡톨로지의 비윤리적 활용 가능성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 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9장 “설득 기술의 윤리학The Ethics of Persuasive Technology”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9장은 가상의 악용 사례를 열거하며 시작하는데 아래 사례들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 아이들이 플레이하는 게임을 통해 강제로 개인 정보를 점진적으로 수집하기 (디셉티브 패턴 중 Forced Action에 해당)
  • 원래 사려고 했던 상품에 비해 더 비싼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고 필요한 정보를 감추기 (디셉티브 패턴 중 Nagging, Comparison Prevention 등에 해당)
  • 정보를 교묘하게 감추고 위험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기 (디셉티브 패턴 중 Trick Wording에 해당)

책의 추천사를 쓴 필립 짐바르도 교수 역시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수차례 언급하고 있다. (포그는 짐바르도의 수업 조교였다)

(캡톨로지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비윤리적인 행위자들이 이윤 또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기술을 활용하는 문제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 … 컴퓨터가 우리의 건강과 웰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권을 빼앗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전문가와 일반 시민 모두가 이해한다면, 이 기술을 선한 일에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기술의 악한 측면에 대해 경계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We would be slow to take necessary steps against unwanted persuasion by unethical agencies using this new technology for profit or political advantage. … If all of us, professionals and citizens alike, comprehend how computers can be used to persuade us to take control over the decisions affecting our health and well being, we can harness this power for the good it can impart, while sounding alarms against the dark side of this force of persuasive influence.

아쉽게도 위 우려들 또한 모두 현실이 되었다. 참고로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설계의 비윤리성으로 인해 오랜 비난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짐바르도 본인이 실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작을 한 점이 뒤늦게 밝혀진 바 있다.

2007년. 페이스북 플랫폼과 대규모 인간-대-인간 설득Mass Interpersonal Persuasion

2007년, 페이스북은 자사의 플랫폼을 서드파티 개발자들에게 개방했다. 당시에는 (마치 지금의 앱스토어처럼) 사용자들이 만든 앱이나 게임을 페이스북에 등록할 수 있었다.

포그는 페이스북 플랫폼 개방 직후에 캡톨로지를 활용하여 페이스북 앱을 만드는 강의를 열었고, 학생들이 만든 앱이 고작 10주만에 1,6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는 놀라운 성과를 낸다. 당시 페이스북 사용자는 약 6,000만명이었으니 전체 사용자의 25% 가량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설득 기술이 소셜 미디어와 만났을 때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초기 사례였다.

포그는 이 사례를 정리하여 2008년에 대규모 인간-대-인간 설득Mass Interpersonal Persuasion: An Early View of a New Phenomenon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그가 제시한 MIP의 여섯가지 요소는 여전히 유효하다.

  • 설득적 경험: 태도나 행동을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험의 존재
  • 자동화된 구조: 설득 경험을 구축하는 (자동화된) 디지털 기술의 존재
  • 사회적 분배: 설득 경험 지인 관계를 통해 공유/전파될 것
  • 짧은 주기: 설득 경험이 지인을 통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을 것
  • 거대한 소셜 그래프: 사회적 관계 및 구조화된 상호작용을 통해 수백만명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소셜 그래프의 존재
  • 측정된 효과: 설득 경험의 결과를 다른 사용자 및 제작자가 관찰할 수 있을 것

위 원칙들은 초기에 다양한 캐주얼 소셜 게임에 적용되기 시작한다. 핵심적인 게임 메카닉은 똑같은데 겉모습만 바꾼 게임들을 공장처럼 찍어내는 회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악명 높았던(?) Zynga도 2007년에 설립되었다. 포그가 제안한 MIP의 여섯가지 메커니즘은 캐주얼 게임 뿐 아니라 게임화를 적용한 앱과 서비스 등에도 적용되기 시작했고, 그로스해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포그는 순진하게도 MIP가 설득 권력의 탈-집중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한 세기는 매스미디어가 대중 설득의 주요 채널이었다. … 이들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매스미디어를 이용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지형이 바뀌었다. MIP 덕분에 대중 설득에 필요한 권력이 점차 탈-집중화될 것으로 본다. 탈-집중화의 초기 증거로, 블로그와 온라인 비디오 등으로 일반 개인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Over the past century, mass media has been the primary channel for persuasion. … They used mass media largely to achieve their own goals. Now, the landscape is changing. I believe the power to persuade will continue to become less centralized, thanks to MIP. For early evidence of decentralization, we can see how much impact ordinary individuals have had with blogs and online videos.

하지만 이 예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돌이켜보면 이 전망은 한 가지 잘못된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 자체는 중립적인 공간이며 플랫폼 제공자는 MIP를 활용하지 않으리라는 암묵적 가정이 문제다. 21세기에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20세기 매스미디어의 권력을 빼앗아 오고 있을 뿐, 탈-집중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례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Threads 등을 소유하고 있는 메타는 집중화된 설득 권력을 20년 째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2007년.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설득과 아이폰

포그는 2007년 1월에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적시(just-in-time) 개입 방법을 제안하는 책 모바일 설득을 펴낸다. 이 책은 2002년에 저서(Persuasive Technology)의 8장 “이동성과 연결성을 이용하여 설득력을 증대시키기Increasing Persuasion through Mobility and Connectivity”에 담긴 내용을 다듬고 확장하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2007년 1월 9일)에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드디어 포그가 꿈꾸던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춰진다.

  •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 컴퓨터를 이용한 설득 기술 (Captology)
  •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플랫품: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한 대규모 인간-대-인간 설득 기술 (Mass Interpersonal Persuasion)
  • 스마트폰 대중화: 모바일 디바이스를 활용한 적시 개입 (Mobile Persuasion)

2009년. 포그 행동 모델

2009년에는 (지금은 유명해진) 포그 행동 모델(Fogg behavior model) “B=MAP”를 소개한 논문인 설득 디자인을 위한 행동 모델A Behavior Model for Persuasive Design을 발표한다.

포그의 연구 관심사가 설득 기술에서 행동 설계behavior design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연구소 이름도 나중에 행동 설계 연구소Behavior Design Lab로 바뀌게 된다.

이후에는 Tiny Habits 같은 대중서를 내기도 하고(2019) 대중 강연을 다니고 있다. 물론 실리콘벨리의 창업자 또는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포그 행동 모델 및 캡톨로지에 대한 유료 강연을 꾸준히 열고 있기도 하다.

2020년.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와 인간적인 기술을 위한 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

B. J. 포그의 캡톨로지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 중 한 명인 트리스탄 해리스는 구글에 입사하지만 설득 기술이 비윤리적으로 활용되는 걸 보며 회의를 느껴 구글을 퇴사하고 내부고발자가 된다. 해리스는 아자 래스킨과 함께 인간적인 기술을 위한 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를 설립한다. “인간적인humane”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아자 래스킨의 아버지이자 애플의 맥킨토시 프로젝트 제안자였던 제프 래스킨의 인간적인 인터페이스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번역서 제목은 “인간 중심 인터페이스”이다.

아자 래스킨은 무한 스크롤 UI를 처음으로 고안한 디자이너인데, 자신의 발명이 의도치 않게 수많은 인간들을 중독으로 이끌었다고 말하며 유감을 표한 바 있다. 래스킨과 달리 포그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캡톨로지나 MIP 등의 연구에 대해 후회하는 발언을 한 바가 없으며 과거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해리스와 래스킨은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와 AI 딜레마 등을 제작하여 거대 기술 기업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을 악용하여 대중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같은 주제로 Your undivided attention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B. J. 포그가 실리콘벨리에 끼친 영향

설득 기술 및 행동 설계에 대한 포그의 연구들은 실리콘벨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왔는데, 영향받은 제자들을 일부 꼽아보면 이렇다.

  • Tristan Harris (인간적인 기술 센터 공동창업자, 전 구글 디자인 윤리 연구원)
  • Cristina Cordova (전 스트라이프의 비즈니스 리드, 전 노션 플랫폼&파트너십 리더, 현 라이너 COO)
  • Mike Krieger (인스타그램 공동설립자)
  • Akshay Kothari (노션 공통창업자 및 현 COO)
  • Dana Sittler (현 넷플릭스 유럽 프로덕트 리더,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지먼트팀 리더)
  • Dean Eckles (전 트위터 컨설턴트, 전 페이스북 데이터사이언스팀 연구원)
  • Nina Kim Schultz (전 구글 엔지니어링 리서치 리드 및 매니저)
  • Othman Laraki (컬러 지노믹스 공동창업자 및 현 CEO, 전 트위터 제품관리 부사장, 전 핀터레스트 어드바이저)

1984년. 설득의 심리학Influence

이제 과거로 가보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책 설득의 심리학은 포그의 캡톨로지, 잠시 후에 설명할 내스의 CASA 패러다임, 그리고 브리그널의 디셉티브 패턴에 중요한 영향을 준 저작이다.

치알디니는 이 책에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6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 상호성reciprocity: 먼저 호의를 베푼 후에 제안을 하면 이를 거절하기 어려워 진다.
  • 일관성consistency: 사람들은 일관된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벼운 질문들로 긍정적 답을 유도한 후 본래 원하는 바를 제안하면 부정적 답을 하기 어려워 진다.
  •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모호성이나 불확실성이 큰 경우에 더욱 그렇다.
  • 권위authority: 사람들은 권위 또는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학위 등)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 좋아함liking: 사람들은 칭찬을 잘 해주거나, 외모가 출중하거나, 재미있거나 등 좋아하는 이의 제안을 더 잘 수락하는 경향이 있다.
  • 희소성scarcity: 사람들은 희소한 걸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널리 쓰이는 디셉티브 패턴들은 치알디니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설명한 개념들을 활용하고 있다.

설득에 대한 연구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초창기부터 다양하게 악용되었다. 대표적으로는 해커 케빈 미트닉의 속임수의 예술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책에서 미트닉은 설득 기술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사람을 속이고 시스템에 침투하는 방법을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이라고 이름으로 소개한다.

1994년. 카사 패러다임CASA paradigm

다시 1990년대로 돌아가보자.

클리포드 내스의 CASA 패러다임은 이 시기에 탄생했다. CASA란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컴퓨터Computer As a Social Actor를 줄인 말이다(또는 “컴퓨터는 사회적 행위자다Computers Are Social Actors”의 줄임말로 쓰기도 한다). 참고로 내스는 캡톨로지를 제안한 B. J. 포그의 지도교수였다.

내스는 1993년 논문 “의인화, 에이전시, 에토포에아Anthropomorphism, agency, and ethopoeia”에서 컴퓨터 인터페이스가 최소한의 ‘사회적 단서social cue’만 제공하는 경우에도 사용자들은 컴퓨터를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통해 사용자가 컴퓨터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의인화하는 경향 자체에 대해서는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 첫째, 내스 이전에는 의인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정교하고 복잡한 사회적 단서가 필요할 것이라고 가정했으나 내스는 최소한의 단서만으로도 의인화를 유도할 수 있음을 밝혔다.
  • 둘째, 내스 이전에는 사용자의 무지 또는 심리적 오류로 인해 의인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으나 내스는 컴퓨터에 익숙한 사용자들도(즉, 컴퓨터에 ‘자아’가 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의인화를 한다는 점을 밝혔다.

1993년 의인화 논문 이후, 내스는 포그와 함께 카사 패러다임에 대한 몇몇 후속 연구를 함께 했다. 특히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제안한 “상호성reciprocity” 개념을 컴퓨터-인간 인터랙션에서도 유도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 연구들은 캡톨로지와 MIP 등 포그의 이후 연구에서 중요한 초석으로 쓰인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인간이 ‘온도조절장치’과 같은 일부 인공물에 대해서도 종종 ‘지향적 입장intentional stance’ 또는 ‘지향적 전략intentional strategy’을 취하곤 하며 이 전략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내스보다 10년 이상 앞서 발표한 바 있는데(1981, True believers - The intentional strategy and why it works), 내스가 당시에 데닛의 이론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2008년. 넛지Nudge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해 IT 또는 HCI 분야에서만 관심을 가질리는 없다. 행동경제학 분야에도 관련 논의가 있는데, 2008년에 출판된 넛지가 대표적이다. 환경을 적절히 설계하여 인간의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 소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소개하고 있다.

2008년 초판본에 소개된 넛지들은 인간의 행동을 “이로운” 방향으로 유도하는 전략들이었다면, 2021년 “마지막” 개정판(다시는 개정판을 내지 않겠다는 저자들의 염원을 담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에는 슬럿지라는 개념을 추가로 소개하고 있다. 슬럿지란 “인간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 어렵도록 방해하는 것들”을 뜻한다. 정확한 정의는 아래와 같다.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에서) 본인에게 더 이로운 결과를 얻는 행동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선택 설계의 모든 요소들을 지칭 any aspect of choice architecture consisting of friction that makes it harder for people to obtain an outcome that will make them better off (by their own lights).

예를 들어 코비드-19 검사를 받고 싶은데 수십 페이지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면 이는 슬럿지다. 저자들은 몇몇 디셉티브 패턴(다크 패턴)은 슬럿지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말한다(다만, 위 슬럿지 사례는 다크 패턴이라기보다 안티 패턴에 가깝다).

몇몇 다크패턴은 슬럿지의 정의에 부합한다.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지 않기 매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Some dark patterns count as sludge; they impose a lot of friction if people want to avoid certain charges.

참고로, 넛지 마지막 개정판에서는 디셉티브 패턴의 원래 정의(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자들이 의도와 무관하게 특정 행동을 하게 끔 유도하도록 정밀하게 설계된 인터페이스; 2010년)에 기반해서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2023년에 출판된 디셉티브 패턴 책의 정의(사용자의 자율성, 의사결정, 선택에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인터페이스; 2023년)는 좀 더 슬럿지의 정의와 유사해졌다.

관련 주제들

다양한 관련 주제들이 있는데 추후에 조금씩 더 적어볼 생각이다.

기타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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