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결함
- 2025-06-07
능력주의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 기회를 주는 게 좋다는 생각을 말하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첫째, 능력은 보이지 않으니 측정가능한 대리물이 필요한데 이 대리물이 실제 능력을 반영하지 못하면(예: 20년 전 하버드 졸업장) 능력주의의 의미가 퇴색된다. 이준석식 능력주의가 문제인 이유.
- 둘째, 능력을 잘 평가하면 괜찮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능력은 부와 비슷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상류층’일수록 자식도 상류층에 속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더 쉽게 갖출 수 있다. 순수한 능력주의는 과장하자면 왕권신수설(신이 부여한 왕권이 핏줄 타고 이어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능력주위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 기회를 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라고 했는데, “좋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도덕적으로 옳다”는 뜻과 “효율적이다”라는 뜻. 일단 이 둘이 직교라고 가정해보자.
(도덕적으로 부당한 제도가 장기적으로 효율적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사실 이 둘이 직교이긴 어렵다. 내가 공리주의자인 이유는 이걸 믿기 때문이다. “천부인권” 같은 권리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도 “지각이 있는 존재의 관심사를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만으로부터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도덕적으로 옳은가? 일단 출생 환경에 따라 기회가 차등적으로 주어지고 그 차이가 세대가 지남에 따라 점차 강화되는 경향이 있는 제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효율적이기는 한가? 단기적인 효율이 중요한지, 장기적인 효율이 중요한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오직 단기적 효율만 중요하면 능력주의에 몰빵하는 게 좋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장기적 효율을 생각해보면, 해당 집단(예: 국가)은 개발 가능한 인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효율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 (150년 전에 존 스튜어트 밀이 여성의 종속에서 주장한 논리와 같다.)
자본주의가 건강하려면 균형을 잡아주는 피드백 고리(Balancing feedback loop)가 필요하듯(예: 복지), 능력주의도 건강하려면 마찬가지 균형이 필요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탐험을 하지 않고 단기 효율에 몰빵하면 개선이 안된다. (Exploration-exploitation dilemma).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복지제도, 다양성 교육(DEI),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 등은 마땅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 아니라 (인권이나 도덕이라는 가치를 쏙 빼고 보더라도) 장기적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균형 장치이다. “불쌍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제도(시혜주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의사가 되어 수술을 해도 되는걸까?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말이 “누구나 무조건 똑같은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듯, 능력주의에 반대한다는 말은 “능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탐색이 중요하다는 말이지 “탐색만 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탐색의 여지가 적은 분야(예: 심장 외과 수술)에는 여전히 면허 제도 같은 게 있어야 하고 면허가 있는 자가 수술을 해야한다. 다만 균등한 학습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차별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고(AA, DEI), 정당하게 면허를 획득했다면 출신 대학 등에 따른 차별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면허가 있지만 개인 간 실력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면? 이건 능력주의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면허 제도 설계를 개선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