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객관성
역사적 사실에 주관성이 관여한다고 하여 역사적 객관성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구성하는 데에서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만일 그것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 모든 객관적인 역사를 배제시키는 것이 되기 쉽다. … (그러나)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달리 할 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산은 객관적으로 전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무한한 형상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해석이 사실들을 확정하는 데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리고 현존하는 어떠한 해석도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이 해석이나 저 해석이나 매한가지이며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객관적인 해석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p44-46, 역사란 무엇인가
객관성이란?
우리가 어느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혹은 이 역사가는 저 역사가보다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일까?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의 사실을 올바르게 입수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가 올바른 사실을 선택한다는, 달리 말하자면 그가 중요성에 관한 올바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 역사가에게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로 인해서 제한되어 있는 시야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 - 이러한 능력은 자신이 그 위치에 어느 정도까지 묶여 있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다시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얼마간 좌우된다 - 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 역사가에게는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전적으로 속박된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가들보다 과거에 대해서 더 심원하고 더 지속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완전한 역사’의 성취가능성에 대한 액턴의 확신을 답습하려는 역사가는 없다. 그러나 일부의 역사가들은 다른 역사가들보다 더 지속적이고 더 완전하며 더 객관적인 역사를 쓰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가진 역사가들이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가는 미래의 이해에 다가설 때에만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다. —p185, 역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