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역사
E. H. Carr의 견해
나는, 수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또는 수학과 자연과학 영역 내의 상이한 학문분야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그 학문들과 역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 차이 때문에 역사를 - 어쩌면 여타의 이른바 사회과학들까지도 -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논의들을 정중하게 고찰하고 싶다. 그 반론들은 이렇게 요약된다.
- 역사는 오로지 특수한 것만을 다루며,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룬다.
-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다.
-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 역사는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
…
역사가는 언어의 사용 그 자체에 의해서 과학자들처럼 일반화에 관여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은 매우 달랐고, 그렇기에 그 두가지는 모두특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가는 양쪽 모두를 전쟁이라고 부르며, 따라서 오직 현학적인 사람만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 역사가의 진정한 관심은 특수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안에 있는 일반적인 것에 있다. … 역사책의 필자뿐만 아니라 독자도 그 역사가가 관찰한 것을 자기가 익히 알고 있는 또 다른 역사적 맥락에 적용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일반화의 상습적인 실행자라고 할 수 있다. … 일반화가 역사와는 관계 없다고 하는 것은 몰상식한 말이다.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 번성하는 것이다. 엘턴이 Cambridge modern history의 어느 한 권에서 산뜻하게 지적하듯이,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의 수집가와 구별해주는 것은 일반화’이다. …
일반화의 진정한 핵심은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것, 즉 어떤 일련의 사건들에서 이끌어낸 교훈을 다른 일련의 사건들에 적용하고자 한다는 것에 있다. … 인간이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주장은 관찰 가능한 수많은 사실들로 보더라도 옳지 않다. …
중력의 법칙은 저 특정한 사과가 땅에 떨어질 것임을 보증해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 사과를 따서 광주리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지금 말한 것이 그 법칙들은 가치가 없다거나 원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 오늘날의 과학에서는 귀납법이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란 그저 개연성이나 합리적인 신념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욱더 증대하고 있으며, 또한 과학상의 성과들을 오직 특수한 작용에서만 그 타당성이 검증될 수 있는 일반적인 규칙이나 지침으로 간주하려는 생각도 더욱더 강해지고 있다. … 나는 사회과학자와 역사가의 추론이 정확성에서 자연과학자의 그것에 견줄만하다고 주장하거나, 그런 면에서 사회과학자나 역사가가 뒤떨어지는 것은 다만 사회과학이 훨씬 더 후진적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어디로보나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복잡한 자연의 존재물이며, 그래서 당연히 인간의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자연과학자들이 직면하는 어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사회과학자, 역사가, 자연과학자의 목표와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일 뿐이다. …
진지한 천문학자가 된다는 것과 우주를 창조하고 정돈한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멋대로 행성의 경로를 변경시키고, 일식이나 월식을 지연시키려고, 우주의 운동 규칙을 바꾸려고 끼어드는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진지한 역사가라면 역사 전체의 경로를 지시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어떤 신은 믿을 수 있지만, 구약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아말레크 사람을 학살하는데 개입하거나 여호수아의 군대를 위해서 낮시간을 늘림으로써 날짜를 속이는 그런 종류의 신을 믿을 수는 없으며, 혹은 개개의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을 불러낼 수는 없다. …
파스퇴르와 아인슈타인은 사생활에서는 성스럽다고까지 할만큼 모범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불성실한 남편, 잔혹한 아버지, 파렴치한 동료였다고 가정한들, 그들의 역사적 업적이 조금이라도 폄하될 것인가? … 이 말은 개인적인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도덕의 역사는 역사의 정통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가는 자신의 책에 등장하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옆길로 새지 않는다는 뜻이다. …
더 심각한 애매모호함은 공적인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나타난다. (역사가는)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사건이나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 개인에 대해서 도덕적인 유죄를 매우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집단과 사회 전체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 오늘날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개인적인 사악함에 대한 비난을 환영하는 것은 그 비난이 히틀러를 낳는 사회에 대한 역사가의 도덕적 판단을 만족스럽게 대체하기 때문이다. … 개인을 찬양하는 도덕적 판단도 개인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만큼이나 그릇되고해로운 것이 수 있다. 일부 노예소유주가 개인적으로는 고결한 사람들이었다고 인정하는 일은 노예제를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힐난하지 않기 위한 변명으로서 끊임없이 이용되었다. 역사적 사실은 상당한 정도로까지 해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역사적 해섣은 항상 도덕적 판단 - 또는, 더 중립적인 어감의 용어가 좋겠다면, 가치판단 - 을 포함한다. …
역사가 과학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을 요약해보자. 이미 과학이란 용어에는 수많은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이용하는 다양한 지식 분야들이 포괄되어 있으므로, 역사를 과학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역사를 배제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의미심장한 것은 그 베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자기들만의 특별한 동아리에서 역사가들을 배제시키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이 아니라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의 역사의 지위를 옹호하고 싶어하는 역사가들이나 철학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논의는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낡아빠진 구분이 보여주었던 편견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 편견에 따르면 인문학은 지배계급의 폭넓은 교양을 일컫는 것으로, 그리고 과학은 그 계급에게 봉사하는 기술자의 기능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문학(humanities)과 인문적(humane)‘이라는 용어들은 그 자체가 낡은 편견의 유물이다; 게다가 과학과 역사의 대립이라는 것이 영어를 제외한 어떤 언어에서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그 편견이 얼마나 옹졸한 섬나라 근성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역사가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내가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는 그런 주장이 이른바 두 문화 사이의 틈새를 정당화하고 영속화하기 때문이다. 그 틈새 자체가 앞에서 말한 편견의 산물로서, 그 편견은 본래 과거에 속하는 영국사회의 계급구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동일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과 환경에 관한, 다시 말하여 환경에 대한 인간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의 목표도 동일하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지배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물리학자, 지질학자, 심리학자, 역사가의 전제와 방법은 세세한 부분에서는 크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역사가가 더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더욱 충실하게 물리학의 방법을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는 설명해야 할 기본적인 목적과 문제를 제기하고 대답하는 기본적인 방법에서는 똑같아진다. 역사가도 여느 다른 과학자들처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물이다.
—p97-131, —What is history
다윈의 의의:
다윈의 혁명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다윈이 이미 찰스 라이엘에 의해 지질학에서 시작된 것을 완성시키는 가운데 역사를 과학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과학은 더이상 정적이고 초시간적인 어떤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다루는 것이 되었다. 과학에서의 진화는 역사에서의 진보를 확증했고 보완했다. —p90, What is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