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 2016-03-12 (modified: 2025-04-17)
자동화에 의한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한 생각.
인간이 기계보다 잘하는게 무엇일지,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안 빼앗길지 고민하는 이유는 인간이 소득을 위해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는 인간이 소득을 위해 노동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느끼기 위한 무언가를 이루고자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한국에서 내가 걱정할 문제인가
시작하기 전에 대체 이게 지금 당장, 내가, 한국에서 걱정할 문제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한국은 알파고를 만들 기술력이 없으니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기술력 부재는 별로 중요치 않다.
첫째, 세계 최고의 기사를 이기는 바둑 알고리즘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인류의 99%를 이기는 알고리즘은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지식 노동도 마찬가지다.
둘째, 알고리즘이 나보다 뛰어나야만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어떤 상품을 화면 상단에 배치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사람이 해왔다. 하지만 100년 전 통계 이론이라도 하나 주워다가 단순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보면 대체로 사람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낸다. 왜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일단 사람과 달리 알고리즘은 24시간 쉬지 않고 그 일만 한다. 게다가 알고리즘은 1분에 한번씩 재배치를 수행할 수 있다.
- 또 다른 이유로는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쉽게 개인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간 작업자는 전체 사용자가 보는 단일한 화면에 대해 상품을 배치하지만 개인화된 알고리즘은 개별 사용자 또는 사용자 군집 별로 화면을 만들고 각각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상품을 배치한다.
기업들이 당장 자동화를 하지 않는 이유는 좋은 알고리즘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저 비효율적 조직구조, 비효율적 의사소통, 비효율적 성과 측정 및 보상, 게으름, 그에 따른 담당자의 무지, 사내정치, 관성, 정부의 엉뚱한 개입 등등 고질적 문제들로 인해 추진이 안되거나 대단히 더디게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리건 빠르건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우리는 적든 크든 걱정 및 대비를 해야한다.
로봇과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면 되는건가
HBR의 한 기사1에서는 로봇과 경쟁이 아니라 협력(정확히는 증강augmentation)할 것을 제안한다. 나도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개인의 고용가능성이 일시적으로 높아지건 말건 간에, 전체 사회 구성원의 고용가능성 평균은 계속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다.
게다가 몇몇 개인들이 로봇을 활용한 증강에 성공하여 비약적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낸다면 그 결과가 더 많은 일자리 감소로 나타나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소비 능력이 (따라서 소비 욕구가) 소수에게 편중되는 상황에서 생산 효율이 급격하게 높아지면 결과적으로 생산을 낮춰야만 할텐데, 이는 곧 추가적인 일자리 감소를 뜻한다. 그 줄어든 일자리 중 일부는 추가적으로 로봇에게 넘어갈테고. 전형적인 양의 피드백 고리다.
기본소득제도
합쳐보면 이렇다.
- 내 일자리를 대체할만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고,
- 특정 개인의 고용가능성이 높건 말건 간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직업을 잃게 된다.
기술 분야에서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기본소득제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2 나도 IT 분야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내가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소득이 아니라 가치를 위한 노동
첫째, 나는 인간이 소득을 위해 노동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되면 이 둘을 어느 정도 분리할 수 있게 된다.
사회안전망이 허술할수록 소득을 위해 일을 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온갖 부작용이 생긴다. 의술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에 사명감을 느끼기 때문에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되려 한다. 정치, 행정, 법조, 기업 등 거의 대부분의 직업이 그러하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에서 오는 개개인의 행동 변화,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얼마나 거대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상상해보자.
소가 있으면 인간이 더 쉽게 밭을 갈 수 있다. 자동차가 있으면 인간이나 말이 움직이지 않아도 물건을 옮길 수 있다. 알고리즘이 있으면 인간이 반복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 기술의 발달은 일관되게 노동과 소득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직 인간의 관념만이 아직 이 둘을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일정 소득이 제공된다면, 사람들이 더 수월하게 노동을 소득으로부터 분리하여 가치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내가 로봇보다 잘하는 일이 무엇이지? 어떻게 해야 고용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 같은 고민의 중요성은 낮아질 것이다. 그 대신 “로봇이 나보다 잘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내가 가치있게 여기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비판 중 하나로 조건없이 누구에게나 소득이 지급되면 사람들이 일을 할 동기가 낮아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건 현재 논의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동기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동안 내적 가치를 위해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소득을 얻기 위해 해왔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부익부 빈익빈 약화
둘째, 순수한 형태의 시장경제는 인간 본성과 호환되지 않는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가장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상속세, 증여세, 자본이득세 등을 늘리고 각종 복지를 강화하는 등 여러 장치를 통해 이를 방어해야 한다. 기본소득도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유익하다.
아, 글의 맥락상 자동화세(automation tax)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테면 자동화로 인해 고용 계약을 해지할 경우 기업에게 세금을 징수하자는 아이디어이다.3 나는 찬성한다. 원래 고용 창출은 기업의 사회적 의무 중 하나였고 이에 따라 지원 정책의 혜택을 받아 왔으니 고용을 줄이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나온 김에 재산의 상속에 대해 조금 부연하자면, 나는 정권이나 금권이나 둘 다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고 본다. 왕권신수설과 그에 따른 권력 세습이 터무니 없다면 마찬가지로 재산의 상속 또한 터무니 없다. 이에 대해서는 재산 상속에 대한 러셀의 견해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