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진화

촘스키 vs. 핑커

노암 촘스키는 자연선택으로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스티븐 핑커는 이에 반대한다.

노암 촘스키는 다윈자연선택 이론으로는 자신이 주장하는 언어기관의 기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많은 독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나는 각각의 부분들이 각기 중요한 기능을 하도록 설계된 눈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하나의 진화적 적응의 결과로 간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상권 p28

내 결론은 확고하다. 이 책에 담긴 모든 논의는 언어본능의 적응복잡성을 뒷받침한다. 그것은 이산조합체계를 갖추어 구조를 생성하는 통사론, 단어를 생성하는 두번째 이산조합체계인 형태론, 넉넉한 정신사전, 개조된 성도, 음운론의 규칙과 구조, 음성인식, 분석 알고리즘, 학습 알고리즘 등과 같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복잡하게 구조화된 신경회로들로서 신체에 실현되고, 시기적절한 유전적 사건이 계속되면서 정착된다. 이 회로들 때문에 특별한 재능, 즉 내뱉는 호흡을 조절함으로써 머리에서 머리로 정확한 구조를 가진 무한수의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이 가능해진다. 이 재능이 재생산에 유용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 무작위로 신경망을 흩뜨리거나 성도를 난도질한다면, 위와 같은 능력을 갖춘 체계는 결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눈과 마찬가지로 언어본능도 다윈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는 완벽한 구조와 상호적응’이라 일컫던 것의 한 예이고, 그런 언어본능에는 자연의 설계자인 자연선택의 확실한 흔적이 찍혀있다. …

큰 두뇌를 갖게 되었다 해도 날치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 처럼 언어가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농구공보다 훨씬 작은 머리를 가진 난쟁이들에게도 언어가 있음을 안다. 또한 … 뇌수종 환자들도 지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정상일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SLI 환자들은 정상적인 크기와 형태를 지닌 두뇌를 가지고 있고 분석처리 능력도 온전하다. 이 모든 증거로 볼 때, 언어 발생의 근원은 두뇌회로의 정확한 배선이지, 상당한 크기나 형태 혹은 뉴런의 꾸러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리학의 무자비한 법칙들이 우리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그 회로를 연결시켜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하권 p212-215

이것이 생물학이다 11장 “진화에서 인류의 자리”에서는 언어, 뇌, 정신의 공진화를 이야기한다.

아이 돌보기, 사냥과 더불어 뇌의 크기 증가에 기여한 주요 요인은 언어의 발달과 이를 통해 가능해진 문화의 형성, 그리고 다음 세대로 문화의 전달이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에 이들 중 두드러진 요인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p374

언어의 진화와 생물의 진화 간의 유사성에 대한 찰스 다윈:

상이한 언어와 개별 종족의 형성 그리고 양자가 점진적인 과정 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신기하게도 병행적이다. … 개별 언어들 속에서 우리는 혈통의 공유에서 비롯된 놀라운 동종성 그리고 유사한 형성과정에서 비롯된 유사성들을 발견한다. … 언어는 유기적 존재들처럼 집단과 하부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리고 언어는 혈통에 따라 자연적으로 혹은 여타 특징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지배적인 언어와 방언들이 넓게 확산되면 다른 언어들은 점차 멸종된다. 종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멸종되면 절대로 …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언어 본능 하권 p30 에서 인용

핑커의 견해:

언어간의 차이는 서로 다른 종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긴 시간에 걸쳐 작용하는 세 가지 과정의 결과물이다. 첫번째 과정은 변이인데, 변종의 경우는 돌연변이이고, 언어의 경우는 언어적 혁신이다. 두번째는 세습이다. 후손들은 변이적 성질에서 선조를 닮는데, 종의 경우는 유전이고, 언어의 경우는 학습능력이다. 세번째 과정은 고립으로서 종의 경우에는 지리, 번식기간, 생식의 해부학적 구조 등에 의한 고립이고, 언어의 경우에는 이주나 사회적 장벽에 의한 고립이다. 두 경우 모두에서 고립된 인구는 독립적인 변이를 축적하고, 그럼으로써 시간의 경과와 함께 분기한다. 따라서 둘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신, 학습, 이주의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 —언어 본능 하권 p30

먼저, 언어가 실제로 표현되기 위해 다른 개인이 있어야 한다면, 최초의 문법 돌연변이는 누구에게 말을 걸었을까? … 자연선택은 각 세대에서 청자가 가장 잘 해독할 수 있는 화자와 화자를 가장 잘 해독할 수 있는 청자를 선호함으로써, 언어 능력을 한 단계씩 끌어올렸을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중간적 문법이 어떤 것이었는가이다. … 아이와 피진어 사용자, 이민자와 관광객, 실어증 환자와 전보문 그리고 신문 표제어의 언어는 효율성과 표현능력에서 다양하며, 동시에 독립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언어체계의 광범위한 연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자연선택 이론이 정확히 요구하는 바이다.

세번째 문제는 언어본능의 진화 과정에서 각 단계는 최근의 단계까지 포함하여 적응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자연선택은 커다란 이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시간은 광대하므로 작은 이득이면 족하다. … 둘째, 현대의 수렵채집인들에게 눈을 돌려보면, 우리의 조상은 어느 마스토돈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외에는 말할 것이 별로 없는 푸념만 하는 동굴인들이 아니었다. 수렵채집인들은 훌륭한 도구제작자인 동시에 생명의 순환, 생태학, 그리고 그들이 의존하는 식물과 동물의 행동에 대해 상세한 지식을 갖춘 뛰어난 아마추어 생물학자들이었다. 언어는 분명 생활방식과 같은 그 무엇인가에 유용했을 것이다. … 셋째,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생존을 위해 협동노동에 의존하고, 정보와 책임을 교환함으로써 동맹을 결성한다. 이것 역시 복잡한 문법을 십분 활용한다. … 진화는 대립자들이 ‘무기경쟁’에 집착할 때 종종 화려한 능력을 생산한다. 인류학자 가운데 일부는 인간 두뇌의 진화가 기술의 숙달과 물리적 환경보다는 사회적 경쟁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지적 무기경쟁에 의해 더욱 강하게 추진된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인류학자들은 부족장들이 대개 재능있는 연설가인 동시에 일부다처가라는 사실에 주목해 왔다. 이것은 언어적 기술이 왜 다윈주의적으로 중요한지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언어 본능 하권 p217-223

William Thorpe의 가설에 대한 노암 촘스키의 비판:

A more explicit discussion of the relation between human language and animal communication systems appears in a recent discussion by the comparative ethologist William Thorpe. … Thorpe does not suggest that human language “evolved” in any strict sense from simpler systems, but he does argue that the characteristic properties of human language can be found in animal communication systems. … The characteristics shared by human and animal language are the properties of being “purposive,” “syntactic,” and “propositional.” Language is purposive “in that there is nearly always in human speech a definite intention of getting something over to somebody else, altering his behaviour, his thoughts, or his general attitude toward a situation.” Human language is “Syntactic” in that an utterance is a performance with an internal organisation, with structure and coherence. It is “propositional” in that it transmits information. In this sense, then, both human language and animal communication are purposive, syntactic, and propositional. …

All this may be true, but it establishes very little, since when we move to the level of abstraction at which human language and animal communication fall together, almost all other behaviour is included as well. Consider walking: Clearly, walking is purposive behaviour, in the most general sense of “purposive.” Walking is also “syntactic” in the sense just defined, as, in fact, Karl Lashley pointed out a long time ago in his important discussion of serial order in behaviour, to which I referred in the first lecture. Furthermore, it can certainly be informative; for example, I can signal my interest in reaching a certain goal by the speed or intensity with which I walk. …

… it is wrong to think of human use of language as characteristically informative, in fact or in intention. Human language can be used to inform or mislead, to clarify one’s own thoughts or to display one’s cleverness, or simply for play. If I speak with no concern for modifying your behaviour or thoughts, I am not using language any less than if I say exactly the same things with such intention. …

There is nothing useful to be said about behaviour or thought at the level of abstraction at which animal and human communication fall together. …

This, I think, is an important point, often overlooked by those who approach human language as a natural, biological phenomenon; in particular, it seems rather pointless, for these reasons, to speculate about the evolution of human language from simpler systems - perhaps as absurd as it would be to speculate about the “evolution” of atoms from clouds of elementary particles. …

As far as we know, possession of human language is associated with a specific type of mental organisation, not simply a higher degree of intelligence. There seems to be no substance to the view that human language is simply a more complex instance of something to be found elsewhere in the animal world. This poses a problem for the biologist, since, if true, it is an example of true “emergence”.

밀러

언어는 진화적 적응이다:

현재의 논쟁은 언어가 적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적응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p521, The mating mind

유인원 언어 논란은 인간 언어의 진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유인원 언어 논란은 애초에 무의미했다. 우리는 이미 침팬지는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사실은 5백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와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조상 역시 말을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언어는 최근 5백만 년 동안 진화했다. 인간의 어떤 적응이 우리와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조상으로부터 우리가 갈라져 나온 이후에 진화했음이 분명하다면, 비비나 비버나 새뿐만 아니라 침팬지에게서 구태여 그 흔적을 찾으려 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 유인원 언어 논란으로 유명해진 침팬지 칸지처럼 매우 영리한 원숭이 몇 마리가 훈련에 의해 시각적 상징을 사용했다는 따위는 인류의 언어 진화를 이해하는 데 곁가지일 뿐이다. —p518-519, The mating mind

촘스키-핑커 논쟁에 대해:

스티븐 핑커는 언어가 생물학적 적응임을 보여주는 특성들을 열거하고 있다. … 이러한 특징들은 언어가 진정한 인간 본능, 즉 마음의 적응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들은 인간의 모든 마음의 적응들에 공통된 특징들이다. 언어, 깊이 지각, 얼굴 알아보기, 성적 끌림, 자전적 기억, 계획적 관계 맺기 등의 능력들은 모두 특화된 기술들로서, 자연적으로 습득되고, 무의식적으로 전개되고, 보편적으로 향유된다. 이런 특징들은 언어가 수행하는 진화상의 기능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언어가 진화한 것임을 보여줄 뿐 왜 진화했는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노암 촘스키의 연구도 똑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부모와의 되먹임이나 정식 교육을 거친다고 해서 언어의 근본적인 통사규칙들을 배울 수는 없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쳤다(see Poverty of the stimulus). 촘스키의 논증은 언어를 학습에 의한 문화적 발명품으로 본 1950년대행동주의 관점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언어가 선천적인 유전된 능력에 따른 것이라는 그의 논증도 언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밝히는데는 유용한 시야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사실, 촘스키는 언어가 다윈주의 과정들을 거쳐 진화했을 가능성을 거부해 왔다. … 촘스키는 심지어 크기가 일정수준 이상 되는 뇌라면 최소한 1천 억 개의 신경세포를 좁은 공간에 밀어 넣어야하므로 일종의 신비로운 진화적 부산물로서 언어 능력이 자동적으로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억측을 내놓기도 했다. —p520-521, The mating mind

언어의 진화를 생물학적 이타주의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

언어의 숨겨진 이익에도 기본적으로 세 가지 옵션이 있으니 바로 혈연관계, 호혜주의, 성선택이 그것들이다. 말하기의 적응도 이익은 혈연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나, 상호이익이 되는 정보교환관계 유지하기나, 혹은 짝 유혹하기에서 나온다. 나는 이 세가지 이익이 모두 중요하다고 확신하며, 따라서 성선택이 인간의 언어를 만든 유일한 선택압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여기서는 인간이 말하는 방식들 가운데 혈연관계와 호혜주의로는 영 아귀가 맞지 않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으니, 이것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

언어를 순수하게 정보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발화자보다 청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 발화자는 이미 전달할 정보의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남과 공유함으로써 새로이 얻을 것이 없다. … 혈연관계와 호혜주의 이론의 기본 골격대로라면, 언어의 주된 이익은 청자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흥미로운 예측을 일으킨다. 즉, 우리는 남의 말은 극도로 귀담아듣고, 자신의 말은 극도로 아끼는 종이 되었어야 한다. 우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경청하는 행위를 이기주의의 극치로 보고, 쉴 새 없이 떠드는 행위를 숭고한 이타주의로 여겨야 한다. 사람들은 엄청난 뇌물을 써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으면서 남의 속 깊은 비밀까지 다 듣는 심리치료사가 되는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의 특징과 다르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아무 집단이나 골라서 관찰해 보라. 그러면 혈연이나 호혜주의 언어이론이 예측하는 행동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말하려고 경쟁하며, 상대가 자기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다. 듣는 척할 때도 사실은 남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다음에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료에게 발언권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번갈아 하기 규칙은 듣는 순서가 아니라 말하는 순서를 정하기 위해 생겼다. …

게다가 혈연이나 호혜주의 이론은 우리의 해부학 구조의 진화 방향을 잘못 짚었다. 만약 말하기가 손해고 듣기가 이익이라면, 정보 이타주의의 비용을 잡아먹는 우리의 발화기관은 억지로 몇 마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웅얼거림이나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의 흔적기관으로 남았어야 마땅하다. 정보 획득의 이익을 거둬들이는 우리의 귀는 동료가 마지못해 내뱉는 모든 값진 지식들을 몽땅 흡수하기 위해 전 방향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보청기로 진화했어야 한다. 이 역시 현실과 정 반대다. 우리의 청각기관은 진화상 정체하여 다른 영장류들의 청각기관과 매우 흡사한 반면, 우리의 발화기관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적응의 짐이 듣기가 아니라 말하기에 지워지 것이다. 우리의 대화 습성과 더불어 이러한 해부학적 증거는 듣기보다 말하기에 커다란 진화상의 이익이 숨겨져 있음을 암시한다. —p527-530, The mating mind

언어의 진화에 있어서의 성선택의 역할:

인간의 구애의 상당 부분은 언어에 의한 구애다. … 언어가 언어구애를 위해 진화했다는 아이디어는 말 잘하기의 성적 보상을 확인함으로써 이타주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일단 언어의 싹이 진화하기 시작하자 성적인 동기를 품은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언어능력을 구애에 써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언어의 복잡성은 고삐 풀린 성선택, 잘 정리된 생각에 기우는 마음의 편향들, 그리고 적응도 지표 효과의 결합을 통해 진화했을 것이다. —p530-534, The mating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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