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나무가 아니다
도입
제목의 ‘나무’는 수학적 구조인 트리 구조를 뜻한다. 저자는 이 구조를 또다른 수학적 구조인 반격자semilattice와 대비시킨다.
구조에 대해 더 말하기에 앞서 도시를 두 종류로 구분하며 시작.
- 자연도시natural city: 자연적으로 생겨난 도시
- 인공도시artificial city: 도시 계획 등에 의해 현대에 설계된 도시
저자는 자연도시에는 있던 어떤 핵심적인 재료가 인공도시에는 빠진 느낌이 있다. 고대의 자연도시와 달리 현대의 인공도시에는 삶의 빛깔patina of life이 깃들지 않는다. (‘삶의 빛깔’이란 아마도 이후에 Quality without a name이라고 말하는 개념과 이어지는 것 같다. —ak)
현대의 많은 건축 디자이너들이 자연도시의 겉모양을 흉내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겉모양이 아닌 더 추상적인 질서의 원리(The nature of order?)를 찾는 게 중요하며, 자연도시는 반격자 구조를 가지는 반면 인공도시는 트리 구조를 가진다는 게 본질적 차이이다.
트리와 반격자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함께 작용하며 어떤 기능을 수행한다면 이 요소들의 집합을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예를들어 사거리에 상점이 있고 상점 입구에는 신문가판대가 있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는 행인들은 다른 할 일이 없으므로 신문을 읽거나 구매한다. 이는 신문, 가판대, 행인, 신호등, 횡단보도, 동전, 전기 등의 요소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다.
도시를 설계하는 디자이너에겐 이 중에서도 바뀌지 않는 정적 요소들이 중요한데, 정적 요소들은 시스템에서 전개되는 동적 사건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C.A.는 도시의 정적인 한 부분을 단위unit라고 부른다. 단위를 단위이게 만드는 응집력cohesion은 단위를 구성하는 요소를 묶는 힘과 단위를 포함하는 더 큰 시스템의 동적 응집력에 의해 나타난다.
C.A.는 요소들이 단위를 이루는 재귀적인 방식은 트리와 반격자로 구분하여 대비한다. 예를 들어 다음은 {1,2,3,4,5,6} 총 여섯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 시스템에서 일부 부분집합(하위 요소)을 취한 두 구조의 차이를 보여준다. 첫번째 구조는 반격자, 두번째 구조는 트리이다.
- 반격자 구조에서는 어떤 두 단위가 서로 겹치는 경우 그 겹치는 영역은 언제나 그 자체로 해당 구조에 속한 또하나의 단위가 된다. 예를 들어 {상점,가판대}로 이루어진 단위가 있고 {가판대,신호등,횡단보도}로 이루어진 단위가 있다면 두 단위에 모두 포함되는 교집합 {가판대}도 반드시 단위라는 뜻.
- 트리 구조에서는 어떤 요소가 한 구조에 속하면 다른 요소에 속할 수 없다. (정의상 모든 트리는 반격자에 속하지만 이 글에서는 트리와 트리가 아닌 반격자의 차이를 대비)
20개 요소로 이루어진 트리는 최대 19개의 부분집합을 가질 수 있지만, 반격자는 1백만개 이상의 부분집합을 가질 수 있다. 자연도시는 반격자 구조인 반면 인공도시는 트리 구조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단순하며 이게 바로 자연도시와 인공도시를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이다.
도시의 외관이 유기적으로 생겼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도시를 구성하는 유닛의 부분-전체 관계가 트리 구조인지 반격자 구조인지가 중요하다. 트리 구조에서, 하나의 요소는 오로지 하나의 유닛에 속할 뿐, 그 이외의 방식으로 다른 유닛과 연결될 수 없다.
대학 캠퍼스와 캠퍼스가 아닌 나머지 마을을 명확히 구분짓는 경계라는 개념은 부자연스럽다. 도시와 대학이 함께 자연스럽게 성장한 케임브리지의 경우 물리적 단위들이 서로 겹쳐진 반격자 구조를 띈다.
트리로 설계된 도시는 사람들의 삶을 조각낸다
트리는 자연도시의 실제 구조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디자이너가 도시를 트리로 설계하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반격자 구조의 복잡성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도시의 일부가 인공도시로 대체될때마다 도시는 점점 더 분열dissociate된다. 구조화된 물체가 파괴될 때 그 첫 신호는 극도의 파편화와 내부 요소의 분열로 나타난다. 사회의 분열은 무정부상태이고 개인의 해리(분열)는 조현병의 특성이다.
트리는 복잡한 사고를 인간의 머리에 담을 때 유용하만, 도시는 트리가 아니다. 도시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트리 구조로 설계된 도시는 면도날로 가득찬 그릇과 같고, 이 그릇에 무엇을 담건 조각날 수 밖에 없다. 도시를 트리로 설계하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각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