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대하여
종교:
만일 인류가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면, 생물 종은 신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우연과 환경의 필연에 의해 창조될 것이다. 신은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쿼크와 전자 껍질의 기원으로서 여전히 탐구될 수는 있으나, 종의 기원으로서는 아니다. —p24
분야와 반분야. 사회생물학이란?
대다수 생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발전은 세포생물학과 생화학, 즉 분야와 반분야로부터 나온 다양한 관점과 기술의 경쟁을 통해 촉진되어 온 것이다. 그러한 상호 경쟁은 과학적 유물론의 승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것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아주 풍성하게 해 왔고, 과학 이전 문화의 그 어떠한 심상보다 더 강렬한 문학 소재들을 창조해 왔다.
나는 우리가 위와 같은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생물학과 사회과학을 통합시켜, 결국은 서구 지성이 이룩한 두 문화가 마침내 통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p34-35
린네:
1758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가 학술적인 분류법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동물학자들은 동물 약 100만 종의 목록을 작성하여, 각각에 학명을 부여하고, 학술지에 그들의 특징을 발표하여 전 세계 여러 박물관 안에 그들이 놓일 작은 공간도 마련했다. … 학자들은 특정 서식지를 집중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하여, 전세계 동물종의 수를 300만에서 1,000만 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박물학자인 Howard Evans가 자신의 책 제목에 썼듯이, 생물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행성에 사는> 생명을 연구하는 학문인 것이다. —p41-42
사회생물학의 연구 대상:
이 수많은 동물종 가운데 수천 종은 고도의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그중 내가 동물 사회성 진화의 세 정점이라고 부르는, 산호와 이끼벌레 등의 군체 형성 무척추동물, 개미/말벌/꿀벌/흰개미 등의 사회성 곤충, 그리고 사회성을 지닌 어류/조류/포유동물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원리에 관한 체계적 연구라고 정의되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된다. —p42
인간 본성과 유전자:
인간 본성의 일반 형질들은, 다른 모든 종들의 형질이라는 거대한 배경 앞에 놓고 보면 유한하며 특이해 보인다. 그러나 더 많은 증거들은 수많은 상투적인 형태의 인간 행동들이 인발 진화론에서 예측한 대로 포유동물의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영장류의 특징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인 사회 생활과 정신적 특성을 볼 때 ,침팬지는 이전에는 비교 자체가 부적당하다고 여겼던 영역들에서도 인간과 거의 같은 등급에 놓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인간과 가깝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 토대 위에 있다는 가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행동이 근연 관계에 있는 종들과 공유하고 있는 일부 유전자와 인간 종 고유의 유전자로 조직된다는 가설과 일치한다. —p63
인류가 갖는 생물학적 통일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원인이 현재까지 살아 있고, 이들이 침팬지와 인간의 중간 수준의 지능을 지니고 있고, 유전적으로는 침팬지와 인간 양쪽과 영구적으로 격리되어 있으며, 언어 및 고도의 이성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약간 뒤쳐진 상태에서 진화하고 있다고 했을 때, 우리가 품게 될 윤리적 혐오감을 상상해보라.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의무를 질 것인가? 신학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혹은 그들에게서 억압된 계급의 궁극적인 형태를 볼지도 모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떠한가? … 나아가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을 상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인간보다 정신적으로 더 우월한 종, 말하자면 호모 슈퍼부스(Homo superbus)와 공존한다고 했을 때, 미미한 자매종인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도덕적 문제로 간주되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상상해보라. —p86
종교의 생태학:
(종교가) 점점 더 정교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류학과 역사학은 초보적인 종교일수록 순수한 세속적 보상 - 긴 수명, 기름진 땅과 풍족한 식량, 재앙의 회피, 적의 정복 - 을 위해 초자연적 존재를 추구한다는 막스 베버의 결론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 더 발전된 종교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분파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때 일종의 문화적 다윈주의가 작용하기도 한다. 신자들을 규합하는 분파는 성장하고 그렇지 못한 분파는 사라진다. 따라서 종교도 성직자들의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다른 제도들과 다르지 않다. 이 인구 통계학적 이득은 집단 전체에 귀속되어야 하므로, 그것은 일부는 이타주의를 통해서 그리고 일부는 착취를 통해서, 말하자면 어떤 분파가 타분파들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음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아니면 그 이익이 구성원 모두의 적합성을 총체적으로 증가시키는 쪽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결과 사회 용어상으로 더 억압적인 종교와 더 자비로운 종교의 구분이 생긴다.
생태학에는 “최대 경쟁은 요구 사항이 동일한 종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가우스 법칙이 있다. 비슷한 의미에서 종교가 거의 베풀지 않는 형태의 이타주의가 있는데, 그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이다. 종교끼리의 적대감은 사회가 붕괴될 때 강화된다. 종교는 경제적 착취라는 목적에 종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복자의 종교는 칼이 되고, 피 정복자의 종교는 방패가 된다. —p242-243
무당과 사제의 자기 기만은 자신들의 연기를 완성시키며, 신자들에게 행해지는 기만을 강화시킨다.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