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를 입력하면 한 달 뒤에 결과가 나오는 세상
- 2021-11-23 (modified: 2025-07-17)
검색어를 한 번 넣을 때 1,000만원이 들고 결과는 한 달 뒤에 나오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우화
이 가상의 세상에는 웹 검색을 잘 하기 위한 도구, 방법론, 관련 산업,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 산업별 검색어 편람: 각 분야별 최고의 검색어 전문가들이 선정한 최적의 검색어 십만 건을 엄선하여 매 년 개정판을 낸다. 분야별, 상황별 최적의 검색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사전 형태로 정리. 2022년 판에는 “메타버스” 챕터가 추가되면서 기존 총 10권에서 총 11권으로 개정되었다.
- 검색어 발견 워크샵: 찾고자 하는 정보를 가장 잘 찾을 수 있는 최적의 검색어를 발견하기 위한 아이데이션 워크샵. 보통 1박 2일 정도 진행하며 워크샵 장소는 되도록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공간으로 잡는다.
- 검색어 전문가: 관련 분야의 검색어 전문가에게 우리가 찾고자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어떤 검색어를 넣으면 좋을지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 검색 에이전시: 정보 검색 업무만 대행해주는 전문 대행사가 있다. 검색어를 찾아주는 단계까지만 맡길 수도 있고 검색 결과 화면 분석 단계까지 턴키로 맡길 수도 있다. 검색 결과 화면이 너무나 소중하고 희소하기 때문에 정보 과잉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검색 에이전시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검색 결과 화면에 담긴 모든 링크를 “빠짐없이” 읽고 정리하는 능력이다.
- 검색어 품질 휴리스틱 평가: 우리가 입력하려고 하는 검색어가 과연 적절한지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있다. 하지만 아무나 체크리스트만 쓴다고 효과를 보기는 어렵고 되도록이면 “검색언어학(Search Linguistics)“을 전공하거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가 평가를 수행하는 게 좋다.
- 검색 결과 분석: 1,000만원을 들여 얻어낸 검색 결과 화면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검색 전문가들이 모여서 검색 결과를 깊게 분석하는 “분석 세션”을 진행한다. 검색 분석 결과는 보통 “분석 보고서” 형태 만들어지며 경영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곤 한다.
어느 날, 검색을 1초만에 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해서 이 기술로 돈을 벌겠다는 스타트업이 나타났다. 검색 결과 화면에 광고를 넣는 게 수익 모델이다. 데모데이에서 실수 없이 기술력을 뽑냈지만 전문가 피드백은 부정적이었다.
- “검색을 빠르게 해서 대체 어디에 쓰자는 거죠? 입력할 검색어를 찾는 단계가 병목이지 검색 속도가 병목은 아니지 않나요?”
- “어지간한 기업은 검색을 일년에 한 두 번 밖에 안하는데요, 일년에 한 두 번 쓰는 서비스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요? 그런 사이트에 광고를 누가 하나요?”
- “정보를 찾을 때 보통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지 않나요? 도서관에는 사서가 있어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서비스를 일반인이 쓸 수 있을까요? 검색언어학 전공자가 전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 “검색은 대기업에서나 하는 거고,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검색을 안해요. 시장 규모가 너무 제한적이겠어요.”
교훈
위 데모데이 전문가들의 피드백이 우습게 들리는 이유는 뭘까? 현재 세상의 모든 게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딱 해당 기술만 변한 상황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제약으로 인해 비좁게 정의된 현재의 시장만 바라보면서 해당 시장 안에서의 점유율, 비용 절감 같은 것에 집중하곤 한다. 변화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회가 월등히 큰 경우가 많지만 이런 면들은 좀처럼 보지 못한다.
본인이 전문성을 가진 분야일수록, 전문성이 깊을수록 그런 경향이 있어 보인다. 대부분의 소위 “전문가” 피드백이 이런 식이다. 물론 전문가라서 그러는 경우보다는 전문가 흉내를 내는 문외한이라서 그러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연습
-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과 시간이 0에 수렴한다면 소프트웨어 공학이나 개발 프로세스가 어떻게 변할까? (참고: AI 시대의 소프트웨어 공학)
- 정성 조사를 1초만에 할 수 있다면 정성 조사 분야가 어떻게 변할까?
- 스마트워치에 혈당 측정 기능이 탑재되어 누구나 밥을 먹으면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식문화와 관련 산업이 어떻게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