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포던스 이야기
디자이너 사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용어 중 하나는 ‘어포던스’다. 하지만 정작 이 용어를 디자인 분야에 처음 소개한 도널드 노먼은 20년이 넘도록 이 용어가 오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보고, 용어를 둘러싼 그동안의 온갖 소동을 추적해봤다.
소동의 역사
1920년대, 게슈탈트 심리학: 요구하는 성질, 초대하는 성질
쿠르트 코프카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원리>에서 사물의 의미나 가치가 마치 색상처럼 보는 순간 지각된다고 말하며, 사물에는 행동을 “요구하는demand 성질”이 있다고 표현한다. (여성을 보는 순간 ‘나를 사랑해줘’가 지각된다는 예시는 부적절해 보인다)
각 존재는 스스로에 대해 말해준다…. 과일은 ‘나를 먹어줘’, 물은 ‘나를 마셔줘’, 천둥은 ‘나를 두려워 해’, 여성은 ‘나를 사랑해줘’라고 말한다…. (각 존재들은) 우리가 그 존재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다.
게슈탈트 학파인 쿠르트 레빈은 “aufforderungscharakter”라는 용어를 고안했는데 이는 영미권에서 “초대하는 성질invitation character”로 번역되었다.
1979년, 제임스 깁슨의 <시지각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 행동 가능성
지각심리학자 제임스 J. 깁슨은 게슈탈트 학파가 고안한 개념에서 파생된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였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어포던스affordance라는 단어를 만들어낸다.
깁슨은 게슈탈트 학파가 제안한 개념과 자신이 제안한 개념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게슈탈트 학파의 개념과 달리) 어포던스는 관찰자의 니즈가 변하더라도 변치 않는다. 관측자는 어포던스를 지각하지 못할 수도 있고, 지각을 했더라도 현재의 니즈가 어떠한지에 따라 관측자가 어포던스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어포던스 그 자체는 불변치invariant이므로 항상 존재한다. —J. J. Gibson,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어포던스라는 단어는 1966년에 처음 쓰였으나, 1979년에 펴낸 책 시지각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깁슨은 어포던스를 이렇게 소개한다.
‘afford’라는 동사는 사전에 있지만 명사 ‘affordance’는 없다. 내가 만든 단어다…. 지표면이 거의 수평이고(기울어지지 않음) 평평하며(위나 아래로 휘어지지 않음) 충분한 너비이고(동물의 크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단단하다면(동물의 무게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 지표면은 동물에게 ‘지지하기support’라는 행동을 제공afford할 수 있다…. 동물은 그 지표면에 설 수 있다stand-on-able. 즉 동물이 네 발 또는 두 발로 설 수 있다. 따라서 동물은 걸을 수 있고walk-on-able, 뛸 수 있다run-over-able. 하지만 물이나 늪의 표면과 달리 이러한 지표면에서는 동물이 가라앉을 수sink-into-able 없다…. 위에서 열거한 네 가지 속성(수평함, 평평함, 넓음, 단단함)은 모두 지표면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속성이다. 하지만 어떤 종의 동물에게 ‘지지하기’라는 어포던스를 제공하는지의 여부는 그 동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어포던스는 물리적인 수단으로 측정될 수 없다.
깁슨의 어포던스 개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 어포던스는 환경에 내제된 속성이 아니라, 행위자(동물이나 사람 등)와 환경 사이의 관계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앉을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는 의자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의자의 모양과 크기가 행위자의 몸집이나 골격과 적절히 일치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 어른과 의자 사이에 존재하는 어포던스가 아이와 의자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개미와 벽 사이에는 “기어오를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가 존재하지만, 인간과 벽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행위자가 어포던스를 지각하건 지각하지 않건 행위자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어포던스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행위자가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더라도, 그 행위자와 의자 사이에는 “앉을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가 항상 존재한다. 또는 행위자가 앉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어포던스는 존재한다.
1988년,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 지각된 그리고 실질적인 속성
그로부터 약 10년 후, 인지심리학자이자 디자이너인 도널드 노먼은 그의 저서 <디자인과 인간 심리>를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어포던스 개념을 소개한다.
노먼(1935년생)은 깁슨(1904년생)을 통해 어포던스 개념을 접했고 이를 나름대로 이해하여 디자인에 응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노먼이 당시에 소개한 의미는 깁슨이 원래 제안했던 의미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노먼은 어포던스를 이렇게 소개한다.
물질과 사물을 연구하는 심리학 분야가 이미 시작되었다. 어포던스에 대한 연구다. 이 분야에 따르면 어포던스라는 용어는 사물의 지각된perceived 그리고 실질적인actual 속성들, 특히 사물이 어떻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속성들을 말한다.
분명 ‘이 분야에 따르면’이라고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먼의 설명은 ‘이 분야’, 즉 깁슨 학파에서 통용되는 개념과 차이가 있었고 이는 앞으로 수십년 간 여러 혼란을 야기한다.
- 깁슨은 어포던스가 물리적 속성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고 이는 깁슨학파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노먼은 어포던스가 “사물의 실질적인 속성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노먼의 설명에 따르면 어포던스가 사물에 내제된 속성처럼 여겨질 소지가 있다. 깁슨에 따르면 사물의 크기, 경도, 평탄함 등은 물리적 속성이지만, 그 결과로 어떤 행위자가 그 사물 위에 설 수 있는지 여부(즉, “설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는 사물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라 사물과 행위자의 관계에 놓인 속성이다.
- 깁슨의 어포던스는 행위자가 해당 어포던스를 지각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노먼은 어포던스가 “지각된 그리고 실질적인 속성”이라고 표현하여, 어포던스의 존재와 어포던스의 지각을 뒤섞어 버렸다.
1998년, 도널드 노먼의 The Invisible Computer: 실제 어포던스와 지각된 어포던스의 구분
노먼은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 The invisible computer를 펴낸다. 원서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컴퓨터”인데 “인간 중심 디자인”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마치 다른 책 같다(국내 출판계에는 원서 제목을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바꾸는 오랜 관행이 있다).
이 책에서 노먼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어포던스 개념을 다시 소개한다.
어포던스는 속성이 아니라 사물과 그 사물에 대하여 어떤 행위를 하는 유기체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relationship이다…. 어포던스라는 용어는 심리학자 제임스 J. 깁슨이 인간의 시지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고안했다. 내 저서 디자인과 인간 심리에서 나는 이 용어를 전용하고appropriated 확장하여extended 디자인 분야에 응용했다. 사물을 디자인함에 있어서, 실제real 어포던스는 지각된perceived 어포던스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 사물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바로 지각된 어포던스다…. 실제 어포던스와 지각된 어포던스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디자인은 이 두가지 모두에 관한 것이지만, 사용성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지각된 어포던스다. 나는 <디자인과 인간 심리>에서 이 점을 충분히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이 용어는 그 사이에 널리 오용되어 왔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디자이너들은 “아이콘 주변에 그림자를 줘서 어포던스를 추가했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오용을 들을 때마다 몸서리가 처진다. J. J. 깁슨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를 또 노려보며 과장된 몸짓으로 보청기를 귀에서 꺼내고는 넌더리나는 표정을 지으며 도로 눕는 상상을 하곤 한다.
노먼에 따르면 토론이 격해지면 깁슨은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나서 보란듯이 보청기를 꺼버리곤 했다고 한다. 깁슨은 1979년에 별세했다. 따라서 아쉽게도 1988년의 저작에 대해 노먼이 깁슨과 직접 의견을 나눌 수는 없었겠다. 아마도 과거에 깁슨과 격렬하게 토론하던 시절을 종종 다시 떠올리는 게 아닐까 싶다.
1999년, 도널드 노먼의 “어포던스, 관습, 디자인”: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어포던스는 무의미
물리적인 제품에서 어포던스와 지각된 어포던스의 구분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문제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다. 다음 해인 1999년, 노먼은 CHI-Web 참여자들이 “버튼에 어포던스를 넣었어” 같은 표현을 써가며 토론하는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다가 결국 이성을 잃고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 바람에 토론이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인터랙션즈Interactions 1999년 5-6월호에 어포던스, 관습, 디자인이라는 글을 게재한다.
<디자인과 인간 심리>에서 소개한 개념은 “지각된 어포던스perceived affordance”다. 이 책의 개정판을 낼 때 “어포던스”라는 단어를 모두 찾아서 “지각된 어포던스”로 바꿀 생각이다…. 어포던스와 지각된 어포던스를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노먼이 컴퓨터 인터페이스라는 맥락에서 실제real 어포던스와 지각된perceived 어포던스를 구분하는 방식은 추가적인 혼란을 야기했다.
스크린 기반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에서 디자이너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지각된 어포던스 뿐이다. 컴퓨터 시스템에는 이미 내재된 물리적 어포던스들이 있다…. 화면의 모든 픽셀을 가리키거나 터치하거나 클릭하거나 쳐다볼 수 있다. 이러한 어포던스 대부분은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관점에서는 거의 아무런 중요성도 가지지 않는다…. 이와 유사하게 화면의 시각적 요소가 “클릭하기라는 어포던스를 가진다”는 식의 주장도 잘못되었다. 물론 그 요소를 클릭할 수야 있겠지만, 거기 뿐 아니라 화면 어디든 클릭할 수 있다. 그 시각적 요소가 사용자로 하여금 어디를 클릭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포던스가 아니라 관습 또는 피드백 등으로 물러야 한다…. “화면에 어포던스를 추가했다”는 식의 표현을 지나치게 자주 듣는다. 하지만 어포던스를 추가한 게 아니라 어떤 행동이 가능한지 알려주는 시각적 힌트를 추가한 것이다. 이는 실제 어포던스도 아니고 지각된 어포던스도 아니다.
노먼에게 있어서 실제 어포던스란 다음과 같다.
- 모니터는 얼굴 근처에 놓인 평평하고 단단한 표면이므로 손가락으로 화면 어딘가를 가리킬 수 있다
- 컴퓨터가 꺼져 있더라도 마우스 버튼은 언제나 누를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 속 버튼에 대해서는 “클릭하기”라는 어포던스가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주장이 뒤섞여 있다.
- 컴퓨터 화면 속 버튼을 클릭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힌트를 어포던스라고 부르면 안된다.
- 물리적 동작이 아닌 컴퓨터 화면 속 버튼의 가상의 동작에 대해서 어포던스라고 부르면 안된다.
무언가를 시작적으로 드러내는 힌트를 어포던스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 속 가상 버튼의 동작에 대해 어포던스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조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깁슨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쉽게도 그는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거나 지각심리학 연구에 컴퓨터 화면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직전인 1979년에 별세했기 때문에,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대해 거의 언급한 바가 없다. 다만 그림, 사진, 영화 등 실제 공간이 아닌 2차원 평면에 담긴 인공적인 화면들에 대한 견해는 상세히 밝혔는데, 이를 통해 노먼의 위와 같은 구분을 깁슨이 어떻게 평가할지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깁슨은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진은 그 자체로 평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무언가에 대한 정보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사진 자체의 평면과 사진 안에 묘사된 평면을 구분할 수 있다…. “그림의 나무가 얼마나 멀리 있는 것 같나요?”라고 물으면 “한 서른 걸음 정도요”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림이 얼마나 멀리 있는 것 같나요?”라고 물으면 “아, 네 걸음 정도요”라고 답할 것이다…. 정보의 이중성duality이 경험의 이중성을 야기한다.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그는 사진 속의 나무를 가상의 사물virtual object로, 르네상스 시대에 발견된 원근법을 인공적 원근법artificial perspective으로 부른다. 사진 속 가상의 사물이 관찰자로 하여금 때론 어떠한 어포던스가 있는 것처럼 속일 수 있겠지만, 관찰자가 고개를 자유롭게 돌릴 수 있고 사진 주변을 걸어다닐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식의 속임수는 작동하지 않는다. 트릭 아트에 속기 위해서는 정확히 정해진 위치에 서서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다. 깁슨은 위치와 머리를 고정시키곤 하는 실험실 환경이 아니라면, 인간이나 동물이 가상의 사물이나 인공적 원근법에 속지 않는다고 말한다(참고: 시각에 대한 깁슨주의적 분류). 언제든 몸과 고개를 움직여서 둘러보고 손으로 만지려고 시도해보면 진짜가 아님을, 즉 그림이나 사진이 암시하는 어포던스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가상의 사물에 대하여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으니까.
이 논의를 컴퓨터 디스플레이로 확장해보면 어떻게 될까?
디스플레이 그 자체는 단단한 평면이지만, 동시에 다른 무언가에 대한 정보를 표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안에는 가상의 버튼이 존재한다. 하지만 깁슨의 관점에서 볼 때 사진과의 결정적 차이는, 이 가상의 버튼이 행위자의 행동에 반응하여 ‘가상의 움직임’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컴퓨터 디스플레이 안에 담긴 버튼은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건 간에 “눌러서 작동시킬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를 지닌다. 눌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시각적 표현(상단에 빛이 있는 상황을 가정한 그림자 표현, 배경의 패널과 물리적으로 분리된 느낌을 주기 위한 진한 테두리 등)은 그러한 어포던스를 드러낸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행위자는 어포던스를 지각한다. 버튼을 누르면 눌린 느낌을 주도록 시각적 표현이 바뀌며 어떠한 동작이 수행된다. 이를 통해 행위자는 자신이 어포던스를 제대로 지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상의 환경에서 버튼은 누를 수 있게 생겼을 뿐 아니라 실제로 눌린다. 어떤 의미에서 화면은 눌리기도 하고(가상의 버튼), 눌리지 않기도 한다(평평하고 단단한 물리적 패널). 깁슨의 표현을 빌자면, 경험의 이중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해석이 깁슨의 관점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깁슨은 유기체가 환경에 놓인 다양한 어포던스들을 찾아내어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시지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지각-행동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는지 단절되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사진이나 영화는 그러한 고리가 단절되어 있고, GUI에는 그러한 고리가 좀 더 연결되어 있다. VR 인터페이스는 Ambulatory vision 등 생태적 지각을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일테.
정리하자면, “물리적 동작이 아닌 컴퓨터 화면 속 버튼의 가상의 동작에 대해서 어포던스라고 부르면 안된다”는 노먼의 주장은 깁슨의 어포던스 개념과 부합하지 않는다.
2008년, 도널드 노먼: 어포던스 말고 기표
다시 약 10년이 흐른다. 2008년에 노먼은 어포던스와 관련하여 두 개의 글을 게재한다.
- Affordances and design
- Signifiers, not affordances
하지만 이 중 첫번째 글은 1999년에 CHI-Web 메일링 리스트에 올린 글을 거의 그대로 다시 게재한 것이라서 앞에서 살펴본 글과 시기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두번째 글에 집중해보자.
되돌아볼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변함에 따라 컴퓨팅 환경은 개인에서 집단으로, 사회로, 문화로 확장되었으며, 이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컴퓨터 기술만큼이나 중요해졌다…. 디자인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인식된 어포던스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난생 처음 보는 상황에서도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알 수 있다. 이는 생소한 사물에 대해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생소한 상황에 대해서도 그럴까? 인간, 사회 집단, 문화에 대해서는 어떤가? 답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여전히 지각된 어포던스, 제약, 개념 모델 등은 유효하다. 하지만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자취trails와 행동behaviors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부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남긴 자취를 통해 어떤 행동을 할지 알아채곤 한다…. “기표signifier”란 일종의 표시인데, 물리적 또는 사회적 세상에 관한 의미있게 해석될 수 있는 신호다. 때론 의도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부산물인 경우도 있으나, 기표는 항상 중요한 정보를 발신한다…. 이제 어포던스 대신 기표라는 말을 쓰자…. 깁슨이 정의한 어포던스는 (행위자에게) 지각되거나 알려져야할 필요가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이다. 내가 1988년에 이 용어를 디자인 분야에 도입할 당시에 설명한 개념은 지각된 어포던스였다. 그 뒤로 이 용어는 한편으로는 널리 쓰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널리 오용되었다…. 존재하는 어포던스 중 지각된 부분은 기표다…. 세상의 디자이너들에게: 어포던스는 그만 잊고 기표를 쓰자.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혼란은 점점 커져가고, 사람들은 여전히 “어포던스”를 각자 나름의 의미로 마구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노먼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이번에는 “어포던스” 대신 쓸 수 있는 새로운 용어로 “기표signifier”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위 글에는 크게 두 가지 제안이 담겨 있다.
- 첫째, 기존에 오용되어 왔던 용어인 어포던스는 원래의 의미대로 쓰고, 그 대신 기표라는 용어를 쓰자는 제안
- 둘째, 사물에 대한 디자인에 맞춰져 있던 초점을 확장하여 집단, 사회, 문화로 확장될 수 있는 원칙을 생각해보자는 제안
어포던스 대신 기표를 쓰자는 제안은 얼마나 널리 수용되었을까? 내가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현재, 아쉽게도 약 13년이 지났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어포던스를 나름의 다양한 의미로 쓰고 있다. “버튼에 어포던스를 추가했다”는 식의 오용 사례가 가장 흔했던 것 같다. 기표라는 말이 노먼이 제안한 용례로 사용되는 것을 적어도 나는 아직 현실에서 들어보지 못했다.
두번째 제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해볼 수 있을까? 의미있는 제안이며 깁슨의 연구와도 잘 연결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깁슨 역시 환경과 어포던스 개념을 정의할 때 다른 동물과 사람을 고려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야 말로 환경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포던스 개념을 설명하며 깁슨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풍부하고 정교한 어포던스들은 다른 동물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공된다…. 이들은 다른 평범한 사물과 다르며, 유아들은 식물이나 다른 사물을 동물이나 인간과 구분하는 법을 즉각적으로 배운다…. 행동은 행동을 유발한다. 심리학과 사회과학 전반은 이러한 기본적 사실을 정교하게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성적인 행위, 양육 행위, 싸우는 행위, 협동하는 행위, 경제적 행위, 정치적 행위, 이 모든 행위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제시하는지afford, 또는 이를 어떻게 오인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2013년, 도널드 노먼: 어포던스와 지각된 어포던스와 기표의 차이를 요약 및 정리
2013년은 디자인과 인간 심리의 25주년 기념 개정증보판이 나온 해다. 거의 새로 쓴 책처럼 구성, 내용, 예시들이 싹 바뀌었다. 과거 판본을 읽은 사람이라도 다시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에서는 그는 어포던스, 지각된 어포던스, 기표를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 어포던스는 사람과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작용의 가능성들. 지각할 수 있는 어포던스와 그렇지 않은 어포던스가 있을 수 있다.
- 지각된 어포던스는 종종 기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간혹 잘못 지각된 어포던스도 있을 수 있으므로) 모호한 경우도 있다.
- 기표는 무언가를 발신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어떤 동작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기표는 반드시 지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기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디자이너들이 ‘어포던스’ 대신 ‘기표’라는 용어를 써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가상의 대화까지 넣어두었다.
- 디자이너: 사람들이 애플리케이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멘토: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 디자이너: 화면에서 추천하는 식당 목록을 보여주는데요, 다른 추천 목록을 보려면 왼쪽이라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면 됩니다. 특정 식당에 대해 위로 스와이프를 하면 메뉴가 나오고 아래로 스와이프를 하면 친구들이 이미 그 식당에 있는지 여부를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식당 목록은 잘 찾는 것 같은데요, 메뉴를 보거나 친구들을 찾는 기능은 잘 못 쓰는 것 같습니다.
- 멘토: 왜 그럴거라고 생각하세요?
- 디자이너: 잘 모르겠어요. 어포던스를 추가해볼까요? 화살표랑 레이블을 넣으면 어떨까요.
- 멘토: 그렇게 하면 좋겠네요. 그런데 왜 그걸 어포던스라고 부르세요? 어포던스는 이미 있는 게 아닌가요?
- 디자이너: 아, 그렇겠네요. 그런데 어포던스가 잘 드러나질 않아요.
- 멘토: 그렇습니다. 어포던스에 대한 신호를 추가해야겠어요.
- 디자이너: 네 맞아요. 근데 제가 방금 한 말이 그 뜻 아니었나요?
- 멘토: 그렇지 않습니다. 화살표랑 레이블은 아무런 행동 가능성도 추가하지 않는 신호일 뿐인데 그걸 어포던스라고 불렀어요. 기표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 디자이너: 아, 알겠습니다. 그럼 디자이너들은 대체 왜 어포던스에 대해 신경을 쓰는건가요? 기표에 더 집중을 하면 좋겠습니다.
- 멘토: 현명한 말씀이십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디자인의 핵심이지요.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기표이고요.
- 디자이너: 아. 이제 제가 뭘 햇갈렸는지 알겠습니다. 신호를 보내는 것은 바로 기표로군요. 이제 모든 게 명확해졌습니다.
- 멘토: 깊은 통찰이란 언제나 그런 겁니다. 일단 이해하고 나면 명확해지지요.
2015년, 윌리엄 M. 메이스: 깁슨주의 관점에서 노먼의 기여를 평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깁슨은 1979년에 별세했다. 하지만 그의 저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듯 하다. 2015년에는 다른 쟁쟁한 책들과 함께 “Classic Edition”이라는 컬랙션으로 재출간이 되었는데, 이 판본의 소개글을 쓴 윌리엄 M. 메이스 교수는 노먼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1979년에 깁슨의 책이 출간된 후), 어포던스라는 개념은, 인터넷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바이럴’하게 퍼져 나갔다. 이 현상은 대체로 인터랙션 디자인 분야에 영향력이 있었던 도널드 노먼 덕이다. 노먼은 어포던스의 의미를 약간 왜곡somewhat skewed했지만, 그와 그의 동료들이 이를 다시 정정하고, 깁슨의 기여를 명시하는 한편 원래의 의미로부터 파생된 여러 용례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William M. Mace,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Classic Edition
점잖은 표현이지만 뭔가 마음 속에 담아둔 말이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포던스 개념을 둘라싼 오랜 소란의 뒤에는 보다 깊은 철학적 차이가 높여 있다.
깁슨의 생태주의 접근과 노먼의 고전적 인지주의
깁슨은 대체 왜 노먼과 토론하다 말고 보청기를 꺼버렸을까? 노먼의 표현에 따르면 “내적 표상”, “정보 처리(information processing)” 같은 말을 꺼내기만 하면 표정이 일그러졌다고 한다.
깁슨은 고전적 인지주의를 비판했다. 어포던스라는 개념도 고전적 인지주의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노먼은 고전적 인지주의자다. 고전적 인지주의를 비판하며 제안한 개념이, 고전적 인지주의자의 해석을 통해 유명세를 타며 왜곡되어 전세계로 전파되었으니 깁슨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묘한 기분이었을 것 같다.
이 두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실용적인 사례와 함께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마치며
깁슨이 제안한 어포던스 개념을 노먼이 초기에 잘못 소개하면서 오랜 소동이 시작되었다. 노먼은 소동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어포던스라는 용어는 원래 깁슨이 주장한 의미로 쓸 것을 당부하며, 기표라는 용어를 새로 제안했다. 하지만 ‘원래 깁슨이 주장한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혼란이 야기된다. 애초에 어포던스라는 개념은 생태주의 관점의 용어이지만 노먼은 생태주의를 수용하지 않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노먼은 어포던스는 원래 깁슨의 뜻대로 돌려놓고 디자이너들은 기표라는 개념에 더 집중하길 바랐으니 이 바람에 따라 짧게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어포던스란?
- 행위자와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행동 가능성possibility of action. 굳이 번역하자면 행동유발성 보다는 행동가능성. 행위자란 동물, 사람 등을 이른다. 환경에는 다른 행위자도 포함되며, 이들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지각의 대상이다. 노먼이 후기에 제안한 “사회적 기표” 개념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 환경에 내제된 속성이 아니라, 행위자와 환경 사이의 관계에 존재. 예를 들어 “앉을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는 의자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의자의 모양과 크기가 행위자의 몸집이나 골격과 적절히 일치하는 경우에만 존재한다. 어른과 의자 사이에 존재하는 어포던스가 아이와 의자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개미과 벽 사이에는 “기어오를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가 존재하지만, 인간과 벽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행위자가 어포던스를 지각하건 지각하지 않건 행위자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어포던스는 존재. 예를 들어 행위자가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더라도, 그 행위자와 의자 사이에는 “앉을 수 있음”이라는 어포던스가 항상 존재한다. 또는 행위자가 앉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어포던스는 존재한다.
- 어포던스를 넣었다? 없던 행동 가능성이 새로 추가된 경우에만 ‘어포던스를 넣었다’고 표현하면 될텐데, 보통은 그냥 ‘기능을 추가했다’고 말하면 되니까 굳이 ‘어포던스를 넣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기표란?
- 기표는 무언가를 발신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어떤 동작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기표는 반드시 지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기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 기표는 의도적으로 설계될 수도 있고, 따론 우연하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길에는 자연스럽게 지각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는데 이것 또한 기표다.
- 사용자에게 드러내야할 어포던스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기표를 잘 디자인하여 추가한다. 평소 ‘어포던스를 넣었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 우리는 그동안 기표를 넣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버튼에 어포던스를 넣었어요’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나?
- 친한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 ‘기표’라고 정정해주자.
-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괜히 기분이 상할 수 있으니 듣는 사람이 알아서 ‘기표’라고 바꿔서 이해하다. 내가 말할 때는 최대한 명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되, 상대방이 하는 말은 좀 느슨하더라도 최대한 잘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