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공동위원회 > 미국-소련 공동위원회 <미국>-<소련> 공동위원회 > 미소공동위원회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과거의 [반탁](https://wiki.g15e.com/pages/%EC%8B%A0%ED%83%81%20%ED%86%B5%EC%B9%98%20%EB%B0%98%EB%8C%80%20%EC%9A%B4%EB%8F%99.txt) 행위를 문제 삼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모스크바 삼국 외상 회의](https://wiki.g15e.com/pages/%EB%AA%A8%EC%8A%A4%ED%81%AC%EB%B0%94%20%EC%82%BC%EA%B5%AD%20%EC%99%B8%EC%83%81%20%ED%9A%8C%EC%9D%98.txt)의 결정을 지지하고 미소공동위원회에 협력하는 세력은 임시정부 수립 시 협의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라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김규식>, <여운형>, <백남운> 등 중도파는 먼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반탁 운동은 추후에 하자고 <김구>, <조소양>, <김창숙> 등을 설득했으나 이들은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또 <소련>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한 <박헌영> 등의 <공산주의> 세력은 반탁 운동에 참가한 세력의 임시정부 가담을 배제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 > 입장 차이로 무기한 휴회에 들어갔던 미소공동위원회는 <1947년 5월 12일>에 재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자 <미국>은 같은 해 9월, 한반도 문제를 자국이 주도하는 <유엔>에 상정해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미소공동위원회의 휴회를 제안합니다. 이후 10월 21일, 소련 대표단이 철수함으로써 마침내 미소공동위원회는 최종 결렬되었고, 한반도 문제를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할 기회는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 > 미소공동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무산된 이유 중 하나는 임시정부에 참여할 정당과 사회단체의 범위를 놓고 여러 정치 세력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무렵 <미소 냉전>이 극심해지면서 미국의 외교 전략이 방향을 튼 것도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동유럽이 빠르게 공산화되자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을 발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경제 부흥을 지원해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p33, [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https://wiki.g15e.com/pages/%EC%84%A0%EA%B1%B0%EB%A1%9C%20%EC%9D%BD%EB%8A%94%20%ED%95%9C%EA%B5%AD%20%EC%A0%95%EC%B9%98%EC%82%AC.txt)